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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Apr 27. 2023

진달래가 피던날 어머니의 가르침


이른 봄 철길을 따라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차례대로 피었다.


노란 개나리가 지고 진달래의 분홍 꽃잎이 온산을 덮을 때쯤, 어머니는 자식들을 앞세우고 철둑길로 올라섰다. 기차가 끊긴 지 오래된 철둑길에서 어머니는 자식들과 걷는 걸 좋아하셨다.


특히 연분홍 진달래가 피는 봄에는 빼놓지 않으셨다. 연분홍 진달래를 꺾어 어머니 머리에, 우리 형제들이  서로 꽂아 주려고 경쟁을 벌이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의 머리에는 온통 연분홍 진달래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꽃이 남기라도 하면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 주고, 철둑 길을 걸으며, 어머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기들이 울음을 멈춘다는 곶감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등에서부터,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순애보적 이야기도 담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이야기의 테마도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이었고


오리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호랑이 시집가던 날처럼.  계절과 우리의 성장속도에 맞춘 이야기를 어머니는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그 많은 이야기가 어머니의 어디에서 나올까? 궁금해진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




" 엄마 이야기가 재미있어? "

" 응!!"  


"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지!!"


" 그럼 배 좀 보여줘. 아직도 뱃속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어?"


" 아니, 너희들이 나올 때마다 가지고 나와서 이젠 없어 "


" 정말 우리가 나올 때마다 가지고 나왔어? "


 " 그럼!! 한번 볼래? "


" 아니, 다음 동생이 나올 때까지 안 볼래 "


그 많은 이야기 중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들려준 이야기 있다.


그것은 " 양지 곰과 응지 곰"이었다.


겨우내 추웠던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철둑길에 앉아  어머니는


 " 양지 곰이 얼어 죽게? 응지 곰이 얼어 죽게?"


라며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 모두는 " 응지 곰!!" 하고 대답했다.


 " 왜 응지 곰이 얼어 죽어?"

" 응달이 춥잖아!!"

" 아니란다. 양지 곰이 얼어 죽는단다. "

 " 따뜻한 양지쪽에서 왜 얼어 죽어?"

" 따뜻한 양지쪽에 있으니 얼어 죽지!!"


양지쪽 곰이 왜 얼어 죽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 양지쪽 곰은 따뜻하니까, 나와 돌아다니다가 꽃샘추위에 얼어 죽어 "


그다음 해 어머니는 또 예의 그 질문을  하셨다.


 학습의 효과가 있었던 탓에 우린 모두 " 양지 곰!!" 하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아닌데!!"

 " 엄마가 작년 진달래 피던 날 저기 양지쪽에 앉아서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이야!!"

 " 그래도 응지 곰이야"


어머니는 순 거짓말쟁이라며, 이젠 어머니의 말을 절대 안 믿을 거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 응지 곰은 앞산에는 태양이 비추니까, 날이 따듯한 줄 알고 나왔다가 얼어 죽어!!


 " 엥? 그럼 양지 곰은 안 죽어? "


 " 양지 곰은 앞산이 응달이니까 아직 춥구나 하고 생각하고 안 나오니까 안 죽지!!"



어느 해는 양지 곰이 죽고, 어느 해는 응지 곰이 추위에 얼어 죽었다.


어머니의 설명을 매년 들어도 우린 여전히 곰이 한 해는 응지 곰이 죽고, 한 해는 양지 곰이 죽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형제자매가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될 때쯤 어머니는 다시 그  응지 곰 양지 곰 이야기로 다시 질문을 던졌고


여전히 헛갈려하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 응지 곰이 죽기도 하고,
 양지 곰이 죽기도 하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그때그때 판단을 잘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



라며 말씀해 주셨고 그 이야기를  끝으로, 매년 곰 사망사건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후 우리는 성장을 하였고,  어머니의 이야기 배는 홀쭉해졌다.  그와 동시에 동생들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우리 8남매는 각자의 위치에서 응지 곰이 죽을 때는 양지 곰을  생각하고, 양지 곰이 죽을 때는 응지 곰을 생각하며, 잘 살아 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이라는게 배운데로 되는것인가.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는 흔들리고,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그래도 어머니의 그 말씀은 여전히 내 머릿속 남아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정표가 되어 준다.


해도  봄이 되고  길가에  분홍꽃이 지천으로 피었고, 난 그 꽃을 통해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의 가르침의 의미를 찾으려고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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