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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Mar 23. 2022

두 번째 10살

손녀딸과 나이 터울은 50살이다. 손녀와 터울을 빼고 나면 10살, 우린 동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10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서툴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심과 궁금증이 많은 10살. 늘 기운이 넘치는 10살, 봄기운이 가득한 10살... 그런 나이 10살이 되기로 했다. 두 번째 10살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손녀와 함께 같은 나이가 되어 , 손녀가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손녀의 호기심처럼 나도 모두 세상을 처음인 것처럼 궁금증으로 바라보아야겠다. 무엇보다 쓰지 않았던 일기를 써야겠다.




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마루에 앉아 오늘은 무엇을 할까? 마당 끝만 바라보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나는 3살이 되던 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원인은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뛰다가 넘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고, 동네 사람들은 소아마비라고 도 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치료는 민간요법이나, 의료봉사온 대학생들을 찾아가는것이 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7살이 되면서부터 점차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에 부속병원이 생겼고, 6개월간 입원하였다. 그렇지만 병원에서도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 후 차도가 없자, 병원에서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다. 겁에 질린 나는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울기만 했다. " 내 자식 병신을 만들어도 내가 만든다"며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깁스를 한 나를 들쳐 없고 집으로 돌아왔고, 몇 개월 후 손수 깁스를 풀어 주었다. 


1년 동안의 치료를 위해 초등학교는 9살에 입학하였다.


해마다 3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머니는, 나를 업고 학교를 방문하였다.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에게   "  뛰면 안 되니까 체육시간만큼은 참여하지 않게 해 달라, 교실 내에서도 넘어지면 안 된다" 라며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의 부탁대로 선생님은 체육시간에는 나를 참여시키지 않았고, 교실 내에서는 얌전히 앉아 있는 날이 많게 되었다. 


체육시간이나 휴식시간이면  난 늘 내 자리에 앉아 봄빛이 완연한 운동장을 내다보며,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친구들은 그룹을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기도 했고, 해당 그네를 서로 밀어주며, 놀았다.


어쩌다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운동장에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앉은자리에서 돌이나 나무 작대기를 이용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땅바닥을 도화지로, 나무 작대기를 크레용 삼아 그린 그림의 주된 내용은 사람이었고, 항상 서있는 모습이었다. 혼자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들이 내 주위로 달려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공기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모려 오는 낌새라도 있으면 미쳐 완성되지 못한 (다리를 미쳐 그려 넣지 못한) 그림을 얼른 지워 버렸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그림의 주제는 주로 과일이었고, 사과, 복숭아, 고야, 집 주변에는 과일나무 열매들이었다. 집 주위의 열매 나무들은 돌보는 사람이 없었어 열매는 하나같이 볼품이 없었고, 벌레 먹은 것들었다. 그나마 그것도 과일이 익기도 전에 이미 동네 아이들 차지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어머니는 동생들 몰래 모양도 예쁘고, 껍질이 윤이 나는 사과를 허리춤에서 꺼내 내게 주었다. 어린 동생들을 제쳐 놓고 예쁘고 맛있는 사과를 받은 내가 의아하게 어머니를 쳐다보자 "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너만큼은 성한 것을 먹어야 한다"며 말씀하셨다. 


다리가 성하지 못한 나와 흠이 있는 과일을 동일시 여겨 마음 아파 하 신 것 같았다.  그탓에 그림의 주제는 늘 나와 과일이었다.




두번째 열살의 첫날은 첫번째 10살을 소환해 보았다. 지금의 나는 걷는것도 끄떡없다. 마음껏 가고 싶은곳을 가야겠다. 그리고 그날의 감정과 느낌을 일기에 남겨야 겠다. 화사한 봄날처럼 희망 가득한 두번째 열살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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