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쉼은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다. 쉬는 날이거나 힘든 날이면 으레 핸드폰만 들고 바다로 간다.
한겨울의 바다는 파도도 높고 바람도 많이 분다. 하지만 탁 트인 바다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밀려오는 파도는 왜 눈보다 더 할까... 파도는 왜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인지... 파도는 왜 일정하게 치지 않고 매번 다르게 밀려왔다 밀려갈까.
내가 살아온 삶을 비교해봐도 파도와 같다. 늘 일정치 않고, 어떤 때는 부드럽게, 또 어떤 때는 다 삼켜버리는.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방파제를 후려 칠 때는 파도와 함께 쓸려가는 것이 아닌가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하지만 파도가 거세게 칠 때 더 짜릿함을 느낀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면 온갖 걱정이 다 사라진다. 바다를 보면 돌아가신 늘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주고, 엄마도 생각난다.
어릴 때 바다는 반찬을 넣어두는 저장고였다. 파래를 따다 무치고, 미역을 말려 이웃집에서 아기를 낳으면 선물로 주고, 홍합을 따서 삶고 남은 국물에 국수를 넣어 말아먹으면 꿀맛이었다. 홍합 껍데기는 모아 소꿉장난할 때 그릇으로 썼다.
횡재하는 날도 있었다. 커다란 문어가 해변가로 나오는 경우였다. 문어가 해변가로 밀려나 오는 날은 지난밤 외할머니가 엄마의 꿈에 등장하는 날이었다. 엄마는 문어를 건져 올렸고, 문어는 온몸을 비비 틀며 엄마의 팔을 칭 칭동여 맸다. 그럼 우린 문어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저장고에 반찬이 없을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엄마랑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따라 우리도 밀려갔다 밀려왔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기도 하고, 파도가 거세게 밀려올 때는 미쳐 피하지 못해 넘어지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바다를 바라보면 내가 엄마가 되었는데도 어린애가 된다. 나도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을 했던 곳도 바다이다.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 바다에 나가면 늘 엄마가 거기 있다.
쉼이 필요할 땐 바다에 가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여도 좋다. 그리고 내 어릴 때 추억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난 쉼이 필요할 때 바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