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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Mar 31. 2022

두근두근 그림책

1985년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두고 커다란 소포가 배달되었다. 



깊은 산골에서 사람 구경하는 것은 하루에 한 번 윗동네로 올라가는 우체부 아저씨를 볼 때뿐이었다. 매일 오르내리는 우체부 아저씨를 바라보거나,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시간을 점치기도 하고, 올리도 없는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은 우리 집에 뭐라도 배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날도 오토바이 소리에 담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부릉거리리며 달리던 오토바이가 집 앞 도로에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닌가? 혹시 정말 우리 집에 뭐라도 배달되는 것이 아닐까? 기대를 하면서 우체부 아저씨의 행동을 살피게 되었다.


매일 지나치기만 하던 우체부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우고 뒷좌석에서 커다란 뭉치의 네모난 박스를 들고 우리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무엇일까? 우리 집에 누가 저렇게 커다란 물건을 보냈을까? 아니야. 잘못 배달된 것일 수도 있어!!


아저씨가 징검다리를 건너 집 앞마당으로 들어설 때까지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 친정 엄마가 아이 선물을 보냈구나. 그럼 그렇지. 아무리 내가 부모님 허락도 없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모른 척할 수 없겠지.. 역시 엄마가 아이의 선물을 보냈을 거야. 역시 엄마는 엄마군아.. 


상상하는 사이에 우체부 아저씨는 마당으로 들어와 마루에 묵직한 소포를 올려놓았다.


아저씨가 수취인으로 나의 이름을 확인하자 가슴은 더 두근거렸다. 정말 나에게도 소식이라는 것이 오는구나!! 그런데 무엇일까? 누가 보냈을까? 


아저씨는  수취인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돌아 나갔다. 대문을 향해 나가는 아저씨의 뒤에서 서서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대문 밖을 나서는 아저씨를 확인 후 재빠르게 마루로 올라와 누가 보냈는지  주소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친정집 주소가 아니었다. 주소는 양구였고 끄트머리에 사서함 몇 호라고 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사서함? 누굴까? 


아뿔싸!!  남편이 근무하는 부대였다. 울퉁불퉁한 포장지 사이에 남편이 이름이 있었다. 남편이? 그런데 무엇일까? 


포장지를 뜯자 나온 것은 자동차, 동물, 과일, 채소 등 4가지 주제로 된 그림책이었다. 그림의 크기가 페이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으로 크리스마스이브면 백일이 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군대 간 남편이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램책을 보낸 것이었다.

  

군생활 겨우 3개월째인데, 무슨 돈이 있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이에게 보냈을까? 아무리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가 백일이 된다고 해도 말이지.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 방향으로 몸을 틀 때부터 두근두근거렸던 마음은 소포의 발신인을 확인한 후부터는  그리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움은 잠자는 아이 옆으로 다가가게 만들었고, 아이 곁에 선물을 놓아두고는 한참을 훌쩍였다.


매년 크리스마스면 산타를 기다리고, 실망을 하고, 다시 기다리고, 실망하고, 세월이 무려 21년이었다. 비롯 아이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지만, 남편에게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그것도 군대 간 남편으로부터.


생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그림책은 기쁨이라기보다 그리움이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이 아이를 혼자서라도 잘 키워 내야지 하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책을 선물 받은 이후  아이에게 매일매일 그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가 오늘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놀라움으로 나를 즐겁게 했고, 아이의 키가 얼마나 컸고 등등, 아이의 성장과정 중 나타나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들려주었지만 사실은 남편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림책을 계기로 군대가 남편에게 보고 하듯 그날그날 일어난 일을 아이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였을까.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말을 금세 배우기 시작했고, 아빠가 군대에 제대할 즈음에는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림책은 표준말로 쓰여 있어고, 읽어주는 나도 표준말로 읽어 주었는데, 아이가 쓰는 말은 모두 촌스러운 시골 말이었다. 게다가 억양은 내가 들어도 이건 아니지 할 정도 심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는 책에 나온 그대로 읽어 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어른 말을 흉내 내고, 촌스러운 말을 아주 그럴듯하게 썼다. 책에서 들려주는 언어와 실생활의 언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도서관을 가든, 책방을 가든 맨 먼저 가는 곳이 그림책이 있는 어린이 도서 코서다. 어린이 코너에 있으면 아직도 그때의 두근거림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이 도서 코너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 그때 그림 책값이 내 병사 월급 3개월치라고!!"라고 하며 산통을 깬다. 그래도 다시 방문할 때는 언제나 그 자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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