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을 짜라-10-
인문학이 각광받는 시대다. 인문학이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세상이 점차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그동안 배고픈 학문이라고 여겨지던 대학의 철학 강좌가 2008년도 초부터 수강생들의 증가와 더불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의사 ․ 변호사 ․ 작가 ․ 투자은행가 등 다양한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기초교육으로서 철학을 선택한다. 여기에는 사회가 점차 복잡 다단화 되어감에 따라 단편적인 실용지식보다는 작문, 분석, 해석, 비판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데 있다. 아울러 시대가 그런 소양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철학이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인문학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다. 2011년 3월 그는 아이패드 2를 발표시 대형 화면에 리버럴 아츠(교양과목)와 테크놀로지의 교차로 표지판을 띄우고 “교양과목과 결합한 기술이야말로 우리 가슴을 노래하게 한다”고 말했다. 현대 대학 커리큘럼 중 교양과목에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어학을 포함하는데, 우리는 좁게 인문학으로 축소하여 받아들인 셈이다. 어찌됐든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융합한 잡스의 창조력이 애플 성공의 밑거름인 건 확실하다.
필자가 처음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계기는 독일 철학자 클라우스 휄트의 『지중해 철학』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김상근 박사의 『아레테의 힘 인문학으로 창조하라』라는 책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의 �파이데이아�(Paideia)에서 찾는다. 세계 최초의 대학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아테네 리더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었다. 이후 죽어가는 인문 정신을 살린 사람은 로마의 키케로였다. 그는 3세기부터 지중해 연안 대부분 지역에서 전파된 그리스 교양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후마니타스�라는 개념을 통해 로마 사회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했었다. 키케로는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문학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인문학을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로 명명했다. 이런 이름은 중세 스콜라철학의 교조주의와 폐쇄성에 도전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페트라르카를 포함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다시 키케로의 인문학을 재발견하고, 신학에서 벗어난 인간의 학문이라 하여 인문학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EBS 인문학 강좌에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인문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정의하셨다. 한마디로 인문학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학문�. 그렇다고 인간만 읽는다고 읽혀지는 건 아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관계 속에서 그려진다. 이 무늬는 나무의 나이테가 같아서 폭이 좁으면 모진 풍파가 시간을, 성긴 무늬가 있다면 평안한 시간을 거친 증거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따져보면 모든 종교나 철학이 통찰했듯이, 고통의 시간이 더욱 많다. 그 힘든 시간에 보이는 환경에 흔들릴 게 아니라 내면에 다져진 탁월함으로 고통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게 인문학 정신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과 10년 동안의 항해의 위험을 겪었다. 전쟁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대에 항해는 전쟁 이상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 번 더 기도하라고 했다. 전쟁과 항해 속에서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딛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왔어도 오디세우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고난의 순간들을 오디세우스는 피하지 않고 승리하였다.
이처럼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온다. 그 문제마저 해결하고 이젠 문제 없겠지 싶으면 전혀 다른 문제가 스멀스멀 기어온다. 삶의 승패는 그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다려 있다고 스캇 펙 박사는 말한다. 문제의 직면과 해결은 성장을 가져온다. 만약 다가오는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하면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성장은 없고 퇴보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노이로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깊은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이 인문학 정신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백절불굴의 인문학 정신을 로마의 철학자요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모르 파티�(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라 표현하였다. 스캇 펙은 현실에 충실한 것을 “우리 삶이 건실하게 되고 정신의 성장을 이루게 하는 세 번째 방법”으로 꼽는다. 그는 “우리가 세계의 현실을 보다 명확히 볼수록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보다 나은 준비를 갖추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17~18세기 프랑스 상류 사회의 사교 모임으로 있었던 살롱 문화에서는 정작 인문학 정신은 결여되어 있다. 설령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깊은 지식이 오간다 하여도 참된 인문학 정신은 되살아 날 수 없다.
살롱 문화가 아무리 과거 치열한 종교전쟁을 거친 후에 생겨난 치유의 문화였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와 내장 없이 가죽만 남은 박제일 뿐이다. 이렇듯 인문학을 단순히 학(學)으로 정의내릴 때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차라리�문사철�이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문사철(文史哲), 정확히는 사철문(史哲文)은 삶의�진선미(眞善美)�를 나타낸다. 이는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 진선미의 삶�을 사는 인문학적 성찰의 기본 정신을 더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김상근 박사는 『인문학으로 창조하라』에서는 진선미의 인문학을 세 단계로 분류한다. 진의 세계를 다루었던 호메로스의 인문학은 개인의 성찰을 다루었다. 스캇 펙에 따르면 성찰은 진실에 충실한 삶에 이르는 첫 번째 단계이다. �세상을 알려면 우리는 세상을 잘 살펴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상을 살펴보고 있는 자신을 살펴야만 한다.�고 그는 말한다. 선의 세계를 다룬 키케로의 인문학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윤리적 문제를 다뤘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미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남기게 되는 삶의 무늬, 아름다움의 흔적을 추구하였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이다. 예술은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의 커리큘럼이기도 하다. 인문학 코스에 예술을 보는 법이 들어간 이유를 얼 쇼리스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예술을 공부하는 목적은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이 물리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 대신에, 손가락 페인팅이나 정해진 도안에 따라 바구니를 만드는 것과 같이 실제로 제작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술가에게는 창작 행위가 성찰을 의마하지만, 아마추어에게는 그런 행위가 단지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꽃을 그리거나 진흙 모형을 만드는 것이 치료 행위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활동들은 성찰할 시간을 대체해버린다. 또한 그런 활동을 하는 데 시간을 들이게 되면 성찰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스일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클레멘트의 코스의 목적이 성찰적 사고를 장려하는 데 있으므로, ‘행하기’가 아닌 ‘보는 법 배우기’에 중점을 둬야 한다. 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2007, p302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하는, ‘인문학’을 뜻하는 ‘후마니타스’라는 개념은 인간을 가리키는 라틴어 ‘호모homo'에서 파생되었고 ’인간성‘을 의미한다.
‘후마니타스’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사람은 기원전 1세기의 키케로였다. 그는 3세기부터 지중해 연안 대부분 지역에서 전파된 그리스 교양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스인들은 후마니타스를 야만 즉, babaritas에 반대되는 교양, 교육, 학식, 학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성과 인간다움을 소유한 사람이란 곧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학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만이 야만에서 벗어난 ‘사람다운 사람’(homo humanus)이 될 수 있으므로 교양이야말로 인간의 덕성과 수월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고대에서 적극적으로 찬양받던 후마니타스가 중세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된 것은 중세의 후마니타스는 인간보다 우월한 신성(divinatis)과 반대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대 미국에서는 존 듀이를 포함한 일부 학자들의 인본주의 운동이 인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했다. 존 헨리 뉴만의 그리스와 라틴 고전 연구 과정도 20초 미국에서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그렇게 외면 받던 인문학이 현대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에서는 그동안 배고픈 학문이라고 여겨지던 대학의 철학 강좌가 2008년도 초부터 수강생들의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의사 ․ 변호사 ․ 작가 ․ 투자은행가 등 다양한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기초교육으로서 철학을 선택하였다. 여기에는 사회가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단편적인 실용지식보다는 작문, 분석, 해석, 비판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데 있다. 아울러 시대가 그런 소양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철학이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학문이라는 인신에서 비롯되었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는 인문학을 커리큘럼으로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출판계에서는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자기계발서 저자들까지도 인문학 열풍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공 병호 작가의 『고전 강독』이나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같은 책이 그런 예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었다. 이렇듯 인문학의 얼굴을 한 자기계발서나 교양 수준의 인문학 서적이 증가세를 보였다.
이런 양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와 흡사하다. ‘후마니타스’라는 용어는 로마인들이 교양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파이데이아를 라틴어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후마니타스를 야만 즉, ‘바바리타스’에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성과 인간다움을 소유한 사람이란 곧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학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만이 야만에서 벗어난 ‘사람다운 사람’(homo humanus)이 될 수 있으므로 교양이야말로 인간의 덕성과 수월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2008년 4월 7일 월요일 중앙일보 p16
중앙 선데이, 2012년 10월 7일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있다’」
클라우스 헬트, 이강서 역, 『지중해 철학』, 효형출판, 2007
오형국, 『기독교학적 학문적 체계 성립을 위한 기독교 인문주의 전통의 연구』, 한국학술정보(주), 2008
마크 C. 헨리, 강유원 외 편역, 『인문학 스터디』, 2009
2008년 4월 7일 월요일 중앙일보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