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구화-철학이 필요한 시간

간서치의 전기수 이야기-13-

by 간서치 N 전기수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쟁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우디 앨런처럼 천문학적으로 먼 거리에서 삶을 관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다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standpoint'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둑게 서 있을 만한 단단한 토대를 제공하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런 생각은 안타깝게도 상당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도구화'라고 불리는 사회 흐름 아래서 말이지요. 도구화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이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하는 현상을 일걷습니다." 13


"오늘날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삶의 의미화는 상당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행복이란 '주관적 안녕감'이나 '자아실현' 같은 심리학 개념을 토대로 한 주관주의적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의 기본 입장 중 하나는 의미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 삶을 지탱하는 실존적 관점이라 부르겠습니다." 35


"우리는 자아발달 과정에서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오직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반성적 자아를 기릅니다. 갓 태어나 말도 못하는 작은 인간이 칸트가 말한 존엄을 지닌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등 무수히 많은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116


"반성적 관계로서의 자기 개념이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다는 깨달음은 중요합니다. 여기에 자기 관계의 도덕적인 중요성을 강조한 테일러의 의견까지 결합하면, 우리는 자아의 도구화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방패를 얻을 ㅅ 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의미에서 자기는 물건이 아니며, 결코 두구나 상품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에 가격을 매겨서는 안 됩니다. 자기는 오직 존엄성을 갖지. 가격을 갖지 않습니다. 자기를, 그러니까 우리를 구성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것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이러한 반성적 자기 관계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도덕성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요." 123


"오늘날 많은 사람이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산소마스크로 숨을 쉬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를 마음 챙김이나 자기계발이라 부르지요. 하지만 정작 조종석에 조종사가 앉아 있기는 한지, 또는 있다 해도 모두 기절한 건 아닌지에 대해서는 절대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계발하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우리가 속한 더 큰 구조나 그 구조의 발전 자체를 위협하는 더 큰 사회적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174


"우리가 늘 충동을 좇아 살아간다면 삶이 망가질 겁니다. 물론 그와 정반대로 아무런 충동도 없고, 행동도 안 하면서, 생각만 계속해서도 곤란하지요. 키르케고르 역시 끊임없는 성찰이 '성찰병'을 낳는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성찰은 이런 겁니다. 충동에 휘둘리거나 단지 순간에만 집중해서 살게 될 때, 우리를 잠깐 멈춰 세우고 생각하는 성찰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의무에 대한 성찰입니다. 이러한 성찰은 또한 우리가 성찰병에 걸리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212


"우리는 상호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만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자율성도 가질 수 있지요.(중략)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 가능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끔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고 돌볼 책임이지요. 이 문제는 자유와 책임이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출발점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면 의무를 실행할 책임도 없겠지요. 칸트의 말처럼 '해야 한다' 속에는 '할 수 있다'가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215


"(전략) 자아 실현을 추구하느라 자아 형성은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아실현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믿음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유란 애초부터 우리가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공동체 안에서, 지혜롭고 헌신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자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입니다." 217


"<필멸성이 우리 삶을 형성한다. 삶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며,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가 죽어간다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죽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아직은 절대 아니다.> 이게 바로 죽음의 역설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의미나 가치를 가질 수 없지만, 동시에 죽음 자체는 바로 그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위협합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할 겁니다." 227


"이성과 진보에 대한 현대성의 믿음은 유토피아 사회라는 전체주의의 꿈으로 너무 쉽게 변질되었고, 이런 꿈을 좇기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었던 것이지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현대성과 계몽주의는 세상을 탈신비화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은 인류를 지배하던 종교나 신화 같은 것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싱에 그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키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배자의 지위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우리 행동을 올바르게 인도할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든 것을 수단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243


"무엇이 우리가 딛고 설 만한 삶의 관점인지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양성은 언제나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점점 주관성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거나(심리학화), 수단과 시장만 철저히 중시하며, 그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섣불리 결론짓는(도구화) 태도입니다. 두 경우 모두 인간이 공동체적인 존재라는 것과 우리에게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합니다. 하나는 개인의 소망과 욕망을 실현하는 일에만, 다른 하나는 성과를 최적화하라는 사회의 요구에만 집중하지요." 246


"우리는 삶의 의미를 순전히 도구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은 좋지만, 그런 삶이 곧 의미 있는 삶은 아니지요. 도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은 내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행복이나 건강을 위해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게 그냥 좋은 것이기에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로서는 고대 그리스의 형제보다는 더 오래 살기를 당연히 바라겠지만요." 258



심리학자가 쓴 철학서. 각박한 현대화 속에 점차 도구화 되어 가는 인간의 현실을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의 사고를 빌어 진단하고 그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오직 한 가지 해결책은 "인간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심리학이나 자기계발서 속의 홍수 속에 그저 인간을 결핍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도구적인 인간화 하는 게 아니라, 어린 아이든, 성인이든, 노인이든, "인간의 존엄함" 속에서 가치를 회복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씁쓸한 현실이 있다. 인간의 도구화는 마지막 보루여야 할 교회에서조차 나타날 때가 있다는 점이다. 헌금을 내는 중장년층에 비해 그렇지 못한 어린이, 청소년, 청년은 교회 안에서조차 소외를 경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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