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 서일필, 윤석렬, 검찰 그리고 포정 이야기

전문가 아니어도 괜찮아-1-

by 간서치 N 전기수

청와대 윤도한 국민수석이 검찰의 조국 수사 결과에 대해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고사성어에 빗댄 것에 말이 많다.

"태산이 떠나갈 듯이 요동하게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마리 뿐이었다"는 뜻인데,

댓글에는 청와대가 그런 논평을 내는 게 온당치 않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 수석이 인용한 고사를 듣고 떠오르는 다른 고사가 있었다.

바로 장자 내편 중 제 3편 양생주에는 포정이라는 백정의 이야기였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그 손을 놀리는 것이나 어깨로 받치는 것이나 발로 딛는 것이나 무릎을 굽히는 모양이나 쓱쓱 칼질하는 품이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따라서 그 행동이 상림의 춤에 맞고 경수의 장단에도 맞았다. 그래서 문혜군은 이렇게 말했다. '참 잘 한다. 재주가 여기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포정이 칼을 놓고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서 그것은 기술에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 후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에는 저는 영감으로써 대할 뿐 눈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곧 감관은 멈춰버리고 영감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 몸뚱이 조직의 자연적인 이치를 따라서 뼈와 살이 붙어 있는 틈을 젖히는 것이나 뼈마디에 있는 큰 구멍에 칼을 집어넣는 것이나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라 갈라져 나갑니다. 그래서 그 기술은 뼈와 살이 합친 곳에서는 칼이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물며 큰 뼈에 부딪치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흔히 검찰을 칼에 비유한다. 그건 검찰이 가진 권력 때문이다. 검찰이 가진 기소권과 수사권이라는 칼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서는 뼈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크고 많았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치고는 칼의 쓰임이 거칠고 투박하였다.


그 부딪침은 잦은 구속영장 신청과 기각, 수사 내용의 언론 유출이라는 잡음으로 흘러나왔다.

이번 검찰 인사에 대한 추미애 법무 장관의 발표에도 그와 같은 불협화음이 작용했음을 넌지시 비쳤다.


박홍순 작가의 [헌법의 발견]이라는 책에서는 한국 수사의 구속영장 남발에 대한 일침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다르다. 영장실질심사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율은 지나치게 높고 구속 공판 사건이 양산되고 있다.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사실상 무시된다. 구치소 등 구금 시설에서 행해지는 미결수에 대한 처우도 유엔 기준에 상당히 미달된다. 구속 상태에서의 검찰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사복착용이 보장되지 않고, 키피, 차, 음료수, 담배 등 기호품에 대한 권리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신체의 자유와 무죄 추정의 권리 보장이라는 헌법 규정이 무색할 정도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가 국가에 의해 무시되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검찰 총장이 바뀌었어도 검찰의 수사 행정에는 변화가 없다. 각주구검의 모습이다. 도리어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줄여나가며 시대에 발맞춰 가는 모습이다.

물론 검찰의 심정은 이해한다. 현 정권의 살아있는 실세요, 전 법무장관과 그 일가의 구속은 검찰의 수사 당위성을 한층 높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했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었다. 윤 수석의 말에 일부 공감이 되는 이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조 전 법무장관을 심판한 듯하다. 그러하 헌법은 무죄추정 원칙을 말하고 있다.

검찰은 누차 "수사로 말하겠다"고 했다. 진실은 법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 때까지 지켜 보는 사람들은 제3자로써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 06화인간의 도구화-철학이 필요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