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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9. 2024

#15 석이형과 순희 씨

[소설] 원곡동 쌩닭집-15화-템플스테이 ④석이형과 순희 씨

나는 아저씨를 보면서 물었다.      


“저, 아저씨,”

“응? 왜?”

“이곳 스님하고 잘하시는 사이세요?”

“우리 석이형?”

“석이형이요? 이름 독특하시네요. 보통 스님들은 그런 이름 잘 안 쓰시지 않나요? 법정, 법륜 이런 이름을 쓰시는데 석이라는 법명은 처음 들어서요.”

“그냥 내가 편해서 그렇게 부르는 거야, 석이형이 그 이름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면 저 스님의 법명은 어떻게 되세요?”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석이형이 다른 사람 법명을 많이 지어줬어도 정작 자신의 법명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네? 나도 본명만 알고 법명은 못 들어봤다.”     


나는 따듯한 곡차를 호로록 마시면서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방금 나가신 노스님 본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고타마 싯다르타.”     


***     


우리는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돌려 거대한 황금빛의 부처님 불상을 쳐다봤다.



“고타마가 성이고 싯다르타가 이름이라네. 다른 말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도 부르지. 석가모니는 산스크리트어 '샤캬무니'를 음역한 것으로 내가 태어난 인근에 사는 샤캬족(석가)의 성자를 의미한다네.”     


스님이 다시 쟁반에 구운 가래떡과 조청을 가지고 각황전 안으로 들어오시면서 말했다. 아저씨를 뺀 우리 모두가 놀라서 모두 방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와 길동은 가래떡이 있는 쟁반을 들고 있는 스님을 향해 삼배를 하면서 말씀하셨다.     

 

“미처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노스님은 할아버지와 길동이 삼배를 다 하실 때까지 기다리셨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같이 따라서 하라고 손짓하였다. 나는 엉거주춤하면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괜찮네.”     


노스님은 내 옆으로 오시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이 자네는 이미 늦었네.”     


내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내 모습을 보신 노스님은 껄껄거리고 웃으면서 나의 검은 왼손을 잡아주셨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신 스님은 눈을 뜨시면서 말씀하셨다.  

    

“이놈이 애비를 닮아서 순진한 면이 좀 있구나.”

“알고 보면 애가 좀 심약해요.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제가 걱정이 앞선다니까요.”

“준아. 너의 이 왼손을 자랑스러워하거라. 네 부모님이 물려주신 귀한 왼손이다.”     


노스님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였다. 아저씨가 일어나서 스님의 쟁반을 받은 후, 양반다리를 한 채 자리에 앉아서 따끈하게 구운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작은 형수님이 만든 가래떡과 조청은 여전히 맛있네. 어? 뭐 하세요? 어서 와서 같이 드세요.”   

  

아저씨는 할아버지와 길동을 향해 손짓했다. 우리는 쟁반에 빙 둘러앉아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할아버지 옆에 앉으셨다. 할아버지는 당황하셔서 떡을 드시지도 못하고 노스님의 눈을 바라봤다. 스님은 할아버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가? 그토록 원했던 눈을 뜨니, 세상이 달라 보이시던가?”

“어리석은 이놈이 마음의 눈이 아닌,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몸의 눈을 떴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니, 세상 만물은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일세.”

“아닙니다. 고작 이 눈 하나 떠보겠다고 요괴들과 작당하여 제 소중한 딸을 공양미 삼백 석에 팔아버린 저의 죄는, 지금처럼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요. 저는 그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받고 있습니다.”     


노스님과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고 놀란 나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내 귀에 귓속말로 작게 이야기를 하였다.      


“아. 너 몰랐구나 저 할아버지가 심봉사야. 뺑덕어멈이 심봉사를 꼬드긴 요괴였지.”

“심청전에 나오는 심봉사요? 그럼 심청은요?”

“우리 작은 형수님? 용왕님 하고 결혼하셔서 살고 계시지. 내가 오늘 모시고 왔어. 작은 형수님이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이 가래떡과 조청을 만들어주셨어.”     


***     


그 후로 노스님과 할아버지는 우리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한참이나 대화를 하셨다. 두 분의 대화는 십 분 정도 이어졌고, 이윽고 할아버지가 노스님에게 이야기하셨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석가모니 님,”

“그럼... 내가 그대로 자네의 뜻을 잘 전달해 주겠네.”     


두 분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아저씨는 문밖을 향해서 크게 이야기하셨다.      


“작은 형수님,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오세요.”     


각황전 문이 열리더니 고운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우리와 같이 가래떡을 먹고 있는 노스님을 보시고는 삼배를 하셨다. 스님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딸의 등장에 놀라셨는지 움직이지 않고 아무 말도 못 하셨다.      


“두 분이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는군요, 자, 우리는 이만 나가볼까?”     


노스님이 가래떡을 우물거리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주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겨 놓고 우리는 모두 각황사를 나왔다. 아저씨가 손을 흔들면서 혼자 바쁘게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이준, 나 먼저 가게로 돌아간다.”

“오늘 템플스테이 같이 하시고 내일 아주머님이랑 같이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나 바빠. 석이형, 다음에 또 봐요,”     


노스님은 아저씨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나와 길동을 보고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후 시작하는 온라인 즉문즉설 방송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먼저 가보겠네. 심심하면 촬영하는데 와서 봐도 되고. 아참, 일주일간 여기서 템플스테이 한다고 했지? 편하게 쉬고 내일 다시 보세나.”  


노스님은 대웅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스님은 뒤를 돌아보더니 내 옆으로 오셔서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셨다.      


“혹시 나에게 뭐 전해주라 한 게 있지 않았나?”

“아, 맞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메고 있는 가방에서 아저씨가 보냉팩에 싸준 닭과 돼지, 소고기를 꺼내서 스님에게 전달해 드렸다. 스님은 내가 준 보냉팩을 자신의 넓은 옷소매에 스윽 넣으시더니 윙크를 하신 후,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대웅전 쪽으로 걸어가시며 말했다.      


“30분 후에 온라인 즉문즉설 방송 시작하네. 심심하면 이준과 길동이도 강의실로 와서 한 번 들어보던가. 들어본 사람들이 내 방송이 재미있다고 하더라고.”     


***     



오늘 설법 강의가 진행되는 대강의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주지스님이 들어오시면서 웃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아니, 너튜븐가 뭔가로 다들 집에서 그대로 실시간으로 다 볼 수 있는데 이 먼 곳까지 대체 왜 꾸역꾸역 오신 거예요? 기름값 아깝게.”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지스님의 설법강의가 시작되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스님이 즉답으로 답변을 하시기 시작했다.   

 

“자 다음 분.”     


강의를 보조하는 스님이 이번에는 마이크를 순희 씨에게 건네줬다. 순희 씨는 심호흡을 한 후 마이크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순희’라고 합니다. ”

“못 보던 얼굴인데 이곳 원곡동에 온 지 얼마나 되었어요?”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두 달 해보니 어떻습니까? 내 이름을 사칭했던 그 요괴 놈에게 복수하는 건 할만합디까?”    

 

주지스님의 질문에 놀랐는지 순희 씨는 언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여기 이곳에 모인 사람들 다 처지가 당신과 같아. 당신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아. 그러니 마음속에 있는 거 다 말해. 어디 가서 나 석가모니한테 이렇게 상담받아보겠어? 나 꽤 유명하고 비싼 몸이야. 여기 이 강의실에서 나가면 나한테 말 붙이기 힘들다니까. 당신 오늘 운 좋은 거야.”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순희 씨는 마이크를 들고 흐느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 용기 내라고 사람들이 박수 쳐주잖아. 이 얼마나 상담하기 좋은 분위기야. 내가 솔루션 일단 하나 줄게.”     


주지스님은 흐느끼고 있는 순희씨를 보면서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순희야. 나 석가모니, 석이 오빠야. 나한테 오빠 ~ 한번 해봐.”     


사람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흐느끼던 순희 씨도 놀랬는지 울음을 멈추고 눈이 똥그래진 채 주지스님을 바라봤다.      


“순희야. 나한테 석이 오빠 ~ 한번 해보라니까?.”     


순희 씨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석.. 이... 오... 빠..”     

“안 들려. 거기 저 뒤에 있는, 이준과 길동이, 이분이 지금 뭐라고 하는지 들려?”     

“안 들립니다!”     

“저 뒤에는 안 들린다잖아. 더 크게 해 봐. 누가 안 잡아먹어.”      

“석이.. 오,, 빠!”

“한번 더! 저 뒤에까지 들리게 “석이오빠, 나 고민 있어요!” 해봐.”   

   

순희 씨는 용기를 내서 크게 이야기했다.      


“석이 오빠, 나 고민 있어요.”

“그래? 고민이 뭔데? 이 석이 오빠에게 이야기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


청중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순희 씨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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