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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9. 2024

#14 원곡사 가는길

[소설] 원곡동 쌩닭집-14화-템플스테이 ③원곡사 가는 길

우리가 탄 차량은 어느덧 원곡동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후 걸어서 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식당 입구에서 할아버지는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저 그런데 이준.”

“네.”

“우리가 이 몰골로 식당을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데, 냄새가 심해서 민폐일 것 같아. 몸을 먼저 정갈하게 씻은 후 밥을 먹으면 안 될까?”

“아, 그렇게 하실까요?”     


우리는 목욕탕으로 방향을 돌려 다시 길을 걸어갔다. 원곡 목욕탕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를 본 사장님도 활짝 웃으면서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사장님의 얼굴은 마치 개구리 같은 귀여운 얼굴이었다. 며칠 전 같이 목욕탕에 온 아저씨가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았으면, 사장님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얇은 물갈퀴와 그 위의 파란색 고무와 같은 손목이 초록색의 장갑인 줄 알았을 것이다. 



사장님은 우렁찬 목소리로 목욕탕이 떠나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들 와, 여기 수건하고 새 옷 준비했어. 몸에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 다들 찬밥 더운밥 가릴 땐 아니잖아?”     

우리는 목욕탕으로 들어가기 전에 탈의실에서 옷을 벗었다. 할아버지와 청년의 깡마른 몸은 고단했던 감옥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청년은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검은 나의 왼손을 보고는 놀랐지만 이내 아무것도 아닌 척했다.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크게 이야기했다.      


“여기 물 진짜 좋아요. 비누로 대충 씻으신 후 우리 얼른 탕으로 들어가요!”     



목욕을 마친 우리는 사장님이 주신 새 속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은 무언가 한가득 들고 따라 나오시면서 말했다.      


“요 바나나 우유도 먹고 가야 진정한 목욕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심 씨 할아버지는 달콤하고 시원한 바나나 우유맛이 처음이셨는지 한 모금 드시고는 눈이 똥그래지셨다. 길동이라는 청년도 바나나우유 하나를 게 눈 감추듯 들이키자 목욕탕 아저씨는 웃으면서 길동의 두 손에 두 개의 바나나 우유를 쥐어 주셨다. 우리는 바나나 우유를 들고 빨대로 먹으면서 식당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그렇게 맛있는 닭볶음탕은 처음이었다. 주문한 닭볶음탕과 쌈을 싸 먹을 수 있는 각종 야채들이 산처럼 가득 차려졌다. 방금 지은 하얀 고봉밥은 물론 간장게장을 비롯한 각종 밑반찬들도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만큼 식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산처럼 쌓인 음식을 본 길동은 갑자기 정신을 잃은 듯, 채 썰지 않은 김밥 두 줄을 양손에 움켜쥐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치가 보였는지 씹는 것을 멈추고는 식당 사장님을 쳐다봤다. 식당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총각, 천천히 먹어. 그래야 많이 먹지.”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님도 천천히 많이 드세요. 오늘 밤새서 드셔도 남을 만큼 있어요.”    

 

아줌마는 조리실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닭볶음탕 만찬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장님은 커다란 사이다잔과 소주를 들고 자리로 오셨다.      


“이렇게 즐거운 날 이게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약 두 시간에 걸친 닭볶음탕 만찬을 끝내고 우리는 소줏집을 나왔다.      


“주모, 잘 먹고 가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맛있는 닭볶음탕은 처음일세.”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는 이모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원곡 쌩닭집으로 향했다.    

 

 ***     


“다녀왔습니다.”

“어, 왔구나.”     


고기를 다듬으시던 아저씨가 선물용 포장박스에 각종 고기들을 넉넉히 담은 후 보냉팩에 넣어서 나에게 주시며 말했다.    

  

“아까 사무장이 전화 줘서 다 들었다. 이 두 분 원곡사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그리고 가는 김에 너도 일주일 정도 지내고 다음 주에 와. 훈련받느라 고단했던 몸과 마음도 그곳에서 좀 추스르고 오는 게 어떨까?”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이따 봐, 나도 원곡사에 잠시 갈 일이 있어.”

“아. 아저씨도 오후에 원곡사에 오시는구나. 알겠습니다.”     


우리는 쌩닭집을 나와서 차를 타고 원곡사로 향했다. 우리가 탄 차는 한참을 달린 후, 정령산맥 입구에 위치한 원곡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원곡사 뒤로는 끝없는 정령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원곡사를 들어가는 기다란 길 왼쪽에는 깊고 맑은 호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호수 한가운데는 가끔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뛰어오른 후, 풍덩 소리를 내면서 다시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덧 차량은 원곡사 1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찌나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거대한 주차장은 5 주차장까지 이어져 있었고, 모든 주차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차한 차로 이미 만차인 상태였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한참 떨어진 원곡사 입구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    

 

원곡사는 정령산맥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유유히 흐르고, 우람한 정령산맥의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니 또 다른 작은 계곡이 이어졌고 작은 돌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 위에 비친 다리와 정자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우리 모두 고개를 들어 빙 둘러보고는 절 주변의 절경에 감탄했다. 길동은 건너온 작은 돌다리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심 씨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여기는 마치 오래전 방문했던 지리산 화엄사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원곡사가 먼저 지어진 후, 544년에 내가 화엄사에 가서 원곡사의 건축설계 양식을 그대로 전수해 주었지.”     


옆에서 빗자루를 이용해서 마당을 쓸고 계시던 한 노스님이 길동을 보면서 말했다. 할아버지는 스님을 보더니 합장을 하면서 인사를 하셨다. 우리도 합장을 해서 스님에게 인사를 하였다. 스님은 우리를 보면서 안내를 시작하셨다.      


“어서들 오게나. 안 그래도 아침에 교도소 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네. 이쪽 불이문을 통해서 다들 사찰로 들어가세나.”     


우리는 스님의 안내를 따라 불이문을 통해서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사찰 안에는 수많은 석등과 3층 사자석탑, 오 층 석탑과 같은 석탑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석탑의 끝에 저 멀리 웅대한 두 개의 목조 건물이 보였다.      


“저곳이 각황전과 대웅전이라네. 먼저 각황전으로 들어가세나. 다들 피곤할 텐데 우선 따듯한 곡차 한잔 내 드리겠네.”     


스님은 우리를 각황전으로 안내했다. 각황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다보불 등 3 여래(三如來)와 보현/문수/관음/지적의 4 보살(四菩薩)을 봉안하고 있었다. 반배를 하면서 각황전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석가모니불 앞에서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절을 하였다.      


내 옆에서 절을 하던 길동이 석가모니불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스님을 번갈아 바라본 후,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저 스님하고 여기 가운데 있는 불상하고 똑같이 생긴 거 같지 않아요?.”

“머리 깎으면 다 똑같이 보입니다. 들리시겠어요.”     


나는 발로 길동의 발을 툭 치면서 조용히 말했다.


“곡차 한 잔씩 하시게.”     


스님은 나무 쟁반에 따듯한 곡차가 담긴 잔을 들고 오시면서 석가모니불 앞에 상을 놓고 털퍼덕 바닥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면서 손을 뻗어 근처에 있던 방석을 끌고 오시더니 우리 앞에 하나씩 나눠주셨다.      


“저.. 스님, 여기는 곡차를 마셔도 되는 곳인지요? 석가모니 님 바로 앞인지라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길동은 뒤에 있는 석가모니불을 바라본 후, 조심스럽게 스님에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껄껄거리시면서 웃기 시작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크게 웃으시는 스님의 얼굴을 바라봤다.     


***     


그때 닫혀있던 각황전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석이형, 오래간만입니다.”

“어, 오래간만에 왔네? 여기 와서 앉아. 다들 아는 사이지?”

“그럼요 그럼요. 우리 다들 친해요.”     


마치 오래전부터 아시는 사이처럼 반갑게 스님과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한 아저씨는 스님이 방금 앉으셨던 황금빛 방석에 철퍼덕 앉으면서 말했다.      


“이 곡차랑 조청 찍은 구운 가래떡이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제가 저기 속세에서 가지고 온 가래떡, 동자스님들 드시라고 방금 줬어요.”

“잘했어. 그러면 내가 구운 가래떡 준비해서 조청이랑 해서 다시 옴세.”     


스님은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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