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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8. 2024

#12 심봉사라 불리는 사람

[소설] 원곡동 쌩닭집-12화-템플스테이 ①내 이름은...

[약 1개월 전, 원곡 요괴교도소 폭파사고 당일]     


쾅!! 쿠웅!!   

  

원곡동에 위치한 요괴 교도소 여기저기서 커다란 폭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교도소 직원들은 커다란 폭발 소리를 듣고 당황한 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전원이 모두 나갔는지 교도소의 문이 모두 열리기 시작했다.


교도소에 갇혀 있던 수많은 요괴와 귀신들은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일부는 다리 혹은 허리 아래가 잘린 채 감옥에 갇혀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요괴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교도소의 문이 열린 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신음소리를 내면서 교도소 안을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수많은 요괴와 귀신들을 묶어 놓은 수갑들이 차례대로 풀리더니 바닥으로 우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억     


자신들을 묶어 놓은 수갑이 풀리자, 지하 교도소에서 요괴와 귀신들이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놈이 교도소 직원을 순식간에 제압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교도소의 지하 1층에는 커다랗고 붉은 웜홀이 보였다. 수갑이 풀린 요괴와 귀신들은 눈에 보이는 붉은 웜홀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붉은 웜홀 안에서 검붉은 그림자들이 나오더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지가 잘린 요괴들 옆으로 움직였다.


그그그그극

끼에에에엑


검붉은 그림자들은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요괴들의 입속으로 스며 들어갔고, 잠시 후 요괴들의 몸에서 잘린 손발이 검붉게 재생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검붉은 손발이 재생된 요괴들은 자신의 몸을 살펴본 후, 일어나서 웜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20살 남짓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수갑이 풀린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봤다. 침을 크게 꿀꺽 삼킨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요괴들을 따라 도망가려는데 누군가 손목을 잡았다. 청년의 손을 잡은 그 손은 동일한 낡은 죄수복을 입고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시 몸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이쪽으로.”     


할아버지는 청년의 손을 잡고 교도소 구석의 작은 방 쪽으로 뛰어갔다. 할아버지와 청년이 뛰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수많은 요괴와 귀신들이 교도소 바깥의 붉은 웜홀로 탈출하고 있었다. 그들의 잘렸던 손과 발은 검붉은 그림자로 인해서 재생된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교도소 구석에 위치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청소 도구들이 가득했다.     


***     


청년은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보면서 말했다.     

 

“이곳 교도소에 온 이상,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지금 밖은 무슨 상황인 걸까요?”

“나도 모르겠네. 여기 요괴감옥에 온 지 600년이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네.”     


할아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은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말했다.      


“아, 내 이름은 심자 학자 규자, 심학규일세.”     

“할아버님 존함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요?”     


청년이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내 이름을 보다는 내 별명이나 내 딸의 이름을 더 많이 들었을 걸세.”

“그렇다면 영감님 따님 성함이?”

“내 딸 이름은 청이일세. 심청.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심봉사라 불렀었지.”     

태화서관이 발행한 <심청전>의 겉표지.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     


“영감님이 심청전에 나오는 그 심봉사 할아버지세요?”     


청년이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심청전이 진짜 있었던 일이었군요. 그동안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여기 오신 지 600년 정도 되셨다고 하셨죠?”     


심봉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요괴감옥은 일반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닌데, 영감님은 무슨 죄로 들어오신 건가요? 이제 만기가 얼마나 남으신 건가요? 눈은 이제 잘 보이시는 거죠?”     

“눈은 이제 잘 보인다네. 나는 내 눈 하나 뜨겠다고 하나뿐인 딸 청이를 공양미 삼백 석에 요괴와 공모해서 청나라 상인에게 팔아먹은 죄를 지었지. 몸이 아닌 마음의 눈을 떴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해서 이렇게 벌을 받고 있다네.”    

 

놀란 청년은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요괴와 공모를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심청이를, 공양미 삼백 석에 팔라고 꼬드긴 뺑덕어멈과 상단 수장이 바로 요괴였네.”     

“그렇군요. 그래도 눈을 뜨니 좋지 않으세요?”

“눈을 뜨니 못 볼 꼴을 더 보게 되었다네. 지금처럼 말일세.”     

 

심학규는 덤덤한 표정으로 청년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곧 600년 요괴감옥 형이 끝난다네. 지금 도망가는 건 나에게는 손해지. 그나저나 지금 보니 나갈 사람들은 저기 보이는 붉은 원 안으로 거의 다 도망간 듯한데, 우리도 이제 슬슬 바깥으로 나가볼까? 아 참, 자네 이름은 뭔가?”     

“저는 길동이고, 성은 홍가입니다. 아직 200년 정도 형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길동으로 불러주십시오.”     

“나도 홍길동이 소설에나 등장하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먼.”    

 

문을 열고 나간 심학규와 길동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교도소가 있었다. 교도소의 직원들도 모두 피신을 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는 요괴들의 잘린 손발들에서 나오는 거무죽죽한 피들이 굳기 시작해서 찐득거렸다.      



***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요괴 교도소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곳에 남은 심학규와 길동은 식당에 남은 음식들과 가끔 내리는 빗물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군요.”      


길동은 주먹밥 하나를 쪼개면서 노인에게 나눠 주며 말했다.   

   

“뭐.. 안 먹어도 여기서는 죽지 않으니, 먹으나 마나 마찬가지지만, 이놈의 흰쌀밥은 6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먹을만하군,”     


심학규는 길동이 나눠준 주먹밥 한 뭉치를 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길동 자네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이 곳 요괴감옥으로 왔는가?“

“저는 요괴들과 함께 활빈당이라는 불법 단체를 만들고 나라를 어지럽힌 벌로 이곳 요괴 교도소로 왔습니다.”

“요괴들과 불법 단체를 만들고 나라를 어지럽히다니.. 자네도 이곳 원곡동 요괴감옥으로 올만 했구먼. 지금은 그 죄를 인정하고 이곳에서 벌 받고 있는 것을 억울해하지는 않는 거지?”     


길동은 고개를 들어 노인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우리들은 그런 마음이 있으면 돼.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 말이야. 그런데 내 하나 궁금한 게 있다네.”

“말씀하십시오.”

“원래 자네 구름 타고 도술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국립영상자료원


“한 때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괴차사들에게 잡히고 이곳에 들어올 때 저의 모든 도술능력을 교도소장님이 영원히 봉인하셨습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곳에 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길동이 일어서더니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영감님, 이제 사태가 좀 진정된 듯합니다.”     


둘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원곡동 교도소 지하 1층, 요괴 교도소를 둘러본 이준의 눈에는 창살과 육중한 철문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교도소가 보였다. 이준은 [1 교도소] 사무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이곳 요괴 교도소도 우리 인간 세상의 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군요,”

“인간이든 요괴든 귀신이든, 벌을 받는 곳의 겉모습은 대부분 같지.”     

"그럼 저 안은?"


육중한 철문의 안은 뭔가 다른 것들이 있는지, 사무장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이준의 눈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할아버지와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사무장은 할아버지를 보면서 말했다.      


“자네 두 명 말고는 다 우리 교도소를 탈옥한 건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장은 두 명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영감탱이야 뭐.. 만기가 얼마 안 남았다 쳐도, 자네는 왜 도망가지 않았지?”    

 

청년은 사무장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는 죄를 받아야 하는 기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제 형은 아직 200년이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말을 하고 있군. 야 이대리!”  

   

사무장은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면서 물었다.      


“네?”

“우리 [1 교도소] 정상화되려면 얼마나 걸리지?”

“오늘부터 밤새 복구한다면 약 1주일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그래? 음.... 1주일 동안은 [1 교도소]에 아무도 가둘 수 없다고 보고한 거지?”

“네? 무슨 말씀이신지.”

“1주일 뒤에나 우리 [1 교도소] 정상 가동된다며?”

“어.. 그렇.. 습니다.”

“그러면 여기 두 명은 잠시 휴가를 줘도 되겠네?”

“네? 어.... 여기 말고 아래층에 있는 [2 교도소]는 정상 운영 중인데요?”

“아니... 애가 또 말길을 못 알아먹네. 야! 이대리.”

“네?”

“1주일 뒤부터 우리 요괴 [1 교도소] 정상 운영된다며?”

“그렇죠...”     


사무장은 핸드폰을 이대리에게 들이밀었다.      


“지금 [2 교도소]에 가 있는 잡아들인 요괴와 귀신들만 해도 바글바글한데 애네 둘까지 또 가면 [2 교도소] 사무장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그러면 지금 이 전화기로 네가 [2 교도소] 사무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부탁해 보던가.”     

“[2 교도소] 사무장님에게 제가 전화를 하라고요?”     


이대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2 교도소] 사무장이랑 통화하기 너도 싫지? 그러면 너, 얘네들이랑 같은 방 쓰면서 살래? 딱 보니 몇 년간 제대로 씻지도 않아서 벼룩이며 빈대며 장난 아니구먼.”     


이대리는 당황한 듯, 노인과 청년을 쳐다봤다. 그들이 입고 있는 낡고 지저분한 옷에서는 시커먼 구정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뭐.. 정 그렇다면 너희들은 이대리 집에서... 일주일간”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1주일 휴가를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네가 나에게 부탁한 거다. 얘네들 1주일 휴가 주라고.”

“네?”

“됐고, 어이 거기 두 명, 오늘부터 1주일간 특별휴가 줄 테니.. 거기 너.”     


사무장은 이준을 보면서 말했다.      


“네?”     

“여기 ‘원곡 요괴 교도소’는 다 봤지? 그러면 집에 가는 길에 얘네 두 명 원곡사에 좀 데려다줘. 얘네들 1주일간 받아줄 곳은 지금으로서는 거기밖에 없다.”     

“원곡사요? 안산 원곡동에 있는 큰 절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원곡사, 내가 거기 주지스님에게는 잘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까. 그냥 데려다만 줘. 어이, 거기 길동! 1주일 뒤 잡으러 안 갈 테니까, 당신 발로 알아서 할아범 데리고 교도소로 돌아와. 나 너 믿는다?”     


당황한 청년은 커다란 눈으로 사무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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