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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7. 2024

#31 이상한 소문

[소설] 원곡동 쌩닭집-31화-그림자들 ②이상한 소문

다음 날, 신화백화점의 사내 게시판에 새로운 대표이사의 선출과 관련된 인사팀의 내부 문서가 올라왔다. 국내 1위 신화백화점의 실질적인 오너가 된 지안은 부임 첫날, 강남에 있는 백화점에 지시를 내렸다.


그날, 셔터문이 내려간 강남 신화 백화점 2층 여성복 코너와 명품매장 안에서 지안 혼자 여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며칠 후,


신화백화점 강남지점의 1층 명품화장품 코너에서 일하고 있는 선미 씨가 두리번거리더니 주변에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같이 일하는 윤아 씨에게 슬며시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자기 소문 들었어?”

“네? 무슨 소문이요?”     

“귀신 소문 말이야.”     

“아.. 그거요. 다 근거 없는 헛소문이에요. 이제 여름이 곧 다가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방송국에서 납량특집, 뭐 그런 거 하기 전에 시청률 끌어올린다고 드라마 내용이랑 비슷한 귀신 소문 퍼트리잖아요.”     


매장을 정리하던 윤아 씨가 웃으면서 말하자 선미 씨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근거가 없다니, 2층 옷을 파는 매장에 소문이 좌악 났는데.”     

“어떤 소문이요?”     

“이번에 새로 백화점 대표로 온 그 사람 말이야.”     

“아.. 신화그룹 마 회장의 막내 딸 말씀하시는 거죠? 부럽다. 나도 그런 아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고 나발이고 그 여자 그림자가 안 보인대.”     

“네? 그림자가 안 보인다고요?”     



윤아 씨가 깜짝 놀라면서 선미 씨를 쳐다봤다. 잠시 생각한 윤아 씨는 말했다.  


“아! 혹시 여기가 조명이 많은 백화점 안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렇게 보면 조명의 빛끼리 반사가 되어서 언니와 제 그림자도 잘 안 보이는데요?”


가판대 위의 매니큐어와 화장품들을 정리하던 윤아 씨가 바닥을 보면서 말하자 천장에 달린 수많은 조명들의 간섭 때문인지 윤아 씨의 그림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안 보인다고 귀신이라면, 여기 있는 저도 그럼 뭐 귀신이게요?”     

“그런가... 어제 직접 본 2층 직원들이 그러더라고.”     

“아... 귀신이라도 좋으니 나도 그런 아빠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     

“얘는 지금 무슨 소리야.”     

“우리 아빠는 저 어릴 적에 가족 다 버리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었거든요. 누구는 눈 떠보니 아빠가 대기업 재벌가 회장님인 거잖아요. 신화백화점은 네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요. 진짜 부럽다.”     

“그러게. 누구는 그런 핏줄 받아서 하루아침에 백화점 대표 되고, 우리는 하루종일 이렇게 백화점에서 손님들 회장품이나 발라주고. 대체 그 사람 팔자가 얼마나 좋길래 그렇게 된 건지. 어머, 저기 매니저 온다. 일하는 척 하자.”     


선미가 갑자기 윤아에게서 떨어지더니 가판대 쪽으로 가서 급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니저는 선미 씨 쪽으로 오더니 크게 이야기했다.     


“지금 무슨 잡담들을 하는 거야? 오늘 저녁도 8시에 백화점 문 닫은 후, 1시간 동안 새로 부임하신 대표님 오셔서 쇼핑하는 거 들었지? 오늘은 1층 화장품 매장에서 쇼핑하신다 하니까 신경 좀 쓰라고.”     

“아니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퇴근 후 1시간 더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시간 외 수당도 안 챙겨주면서.”  


선미 씨가 매니저에게 툴툴대면서 말하자 매니저가 선미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낸들 알겠어? 억울하면 자기도 누구처럼 마 회장님을 아빠로 만들던가. 아, 그리고 새로 부임한 대표가 색소성건피증인가 하는 병이 있어서 햇볕이나 불빛을 강하게 쬐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마 오후 8시에 백화점 불빛을 어둡게 할 거니까 다들 너무 놀라지 말고.”     


매니저는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오후 8시 영업시간 이후 1시간 추가 영업을 하는 것과 불빛이 어두워지는 것에 대해서 1층의 직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    

 

오후 7시 30분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나온 후, 8시에 백화점의 모든 문을 닫은 직후였다. 백화점 안의 등이 대부분 꺼지더니 겨우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어둠이 뒤덮였다. 선미 씨가 어두워진 백화점 1층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니 웬 등을 이렇게 어둡게 끄는 거야.”     

“언니, 그새 까먹었구나. 아까 매니저님이 그랬잖아요, 새로 온 대표가 색소성건피증인가 하는 병이 있어서 햇볕이나 불빛을 강하게 쬐면 안 된다면서요.”     

“맞다. 아니 근데 그러면 집에서 커튼치고 인터넷 쇼핑이나 할 것이지. 퇴근시간 이후에 나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말이야. 하여간 있는 것들은 똑같다니깐.”

 

***     


같은 시각, 검은 롤스로이스가 신화백화점 강남점에 도착하더니 지하 주차장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갔다. 지하 1층 VIP 주차구역에 주차한 롤스로이스의 앞 조수석 문이 열리고 김실장이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강남 지점장이 차에서 내린 김실장을 향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든 고객들이 백화점을 나간 것을 확인했겠지?”     

“네, 모두 확인했습니다.”     

“백화점 조명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조명은 낮췄습니다.”     


이어서 운전석에서 거대한 몸집의 또다른 두억시니가 인간처럼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채 내려서 김실장의 옆에 섰다. 어림잡아도 키가 2m가 넘어보이는, 누가 봐도 위압감을 느끼는 남성 모습 두억시니의 붉은 얼굴과 거대한 몸집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 직원이 옆의 직원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박....저 운전수 생김새가 마치 오래된 석탑 같아."


오래된 석탑같이 생겼다는 남성형 두억시니가 차의 뒷문을 열자, 화려한 명품옷을 입은 지안이 내렸다. 신화백화점 경영진들이 지안을 향해 90도로 인사하자 지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죄송해요. 제가 색소성건피증이 있어서 햇빛이나 불빛에 민감하거든요.”     

“별말씀을요. 강남점에 오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신화백화점 강남점을 맡고 있는 이석호라고 합니다. 대표님, 여기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강남 지점장 이석호는 지안에게 1층을 안내하기 위해서 회전문 옆에서 지안을 보면서 말했다. 지안과 김실장, 그리고 두억시니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     


어두컴컴한 1층 매장을 한참 둘러본 지안은 명품화장품 코너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선미와 윤아 씨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서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하나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대표님, 이쪽으로 오세요. 어떤 색상을 선호하세요?”     

“하나 추천해 주세요.”    

 

메이크업을 하는 의자에 앉은 지안은 윤아 씨 앞에 앉아서 왼손을 내밀었다. 윤아 씨는 옆에 있던 새 립스틱과 매니큐어 박스를 꺼내 지안에게 보여줬다.


“이 색상이 가장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다른 색상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색이 예쁘네요. 저에게 발라주실 수 있으시죠?“

“아.. 이 색으로 바로 하시려고요? 그러면 먼저 색상 테스트를 해 보겠습니다.”     


윤아 씨는 뒤를 돌아서 서랍에서 같은 색상의 테스트용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찾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테스트 안 하셔도 돼요, 제가 귀찮게 해 드렸는데 그냥 바로 새 거를 꺼내서 발라주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윤아는 황급히 새 박스를 뜯어서 립스틱을 꺼내 지안에게 발라주기 시작했다.


“대표님 피부가 정말 하얗고 좋으세요.”     

“이거 병이에요. 색소성건피증이라서 햇볕 쬐면 안 되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쪽 피부가 부러운걸요? 훨씬 건강해 보이고.”     


립스틱을 바른 지안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매니큐어도 같이 부탁드릴게요. 괜찮으시죠?”     

“네 알겠습니다.”     



윤아 씨는 새 매니큐어 박스를 뜯은 후 지안의 손을 잡고 손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마치고 매니큐어 붓으로 칠하는 그 순간, 지안의 눈에는 가판대 위에 비치는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림자는 윤아 씨의 손만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허억     


매니큐어 붓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윤아 씨는 놀란 나머지 매니큐어 붓을 지안의 검지 손톱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로 휙 그었다. 붉은색의 매니큐어가 지안의 손에 선명하게 그어졌다.  윤아씨가 들고 있던 매니큐어 통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새빨간 매니큐어가 백화점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선미 씨가 놀라면서 황급히 뛰어왔다. 그리고는 지안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서..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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