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32화-그림자들 ③태자귀 (太子鬼)
지안은 아래에 비치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윤아 씨의 손과 매니큐어 붓,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의 손에 그려진 매니큐어 자국만 선명하게 보였다. 그 어디에도 지안의 손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백화점의 바닥을 봐도 지안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안은 황급히 손을 들어 빼고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윤아를 바라봤다. 윤아 씨는 덜덜 떨고 있었다. 한참 동안 윤아를 내려다 본 지안이 평정심을 되찾고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뜯은 립스틱과 매니큐어는 안 주셔도 돼요. 그쪽이 가지세요.”
지안은 뒤에 서 있는 신화백화점 강남 지점장을 바라봤다. 지점장이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지점장은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네, 그럼 수고해 주세요.”
지안은 자리를 일어서서 백화점 지하 1층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김실장과 두억시니, 그리고 강남 지점장도 그 뒤를 따라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선미 씨가 덜덜 떨고 있는 윤아를 보면서 말했다.
“어머, 있는 애들은 다 성질 더러운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네. 새로 온 대표라는 애 보기보다 착한데? 윤아야, 너 지금 얼마나 큰 실수 했는지 알긴 아는 거야? 그런데도 이 명품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그냥 주다니, 너 오늘 계 탔다. 이거 정품 30만 원 정도 하는 건데.”
선미 씨는 덜덜 떨고 있는 윤아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애, 너 지금 정신 어디다 판 거야? 애! 애! 윤아야!”
윤아 씨의 얼굴과 손이 여전히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선미 씨는 윤아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저 대표라는 사람 얼굴을 보니 이런 일로 너 자르거나 해코지를 할 사람은 아닌 거 같아. 이제 대표가 갔으니 우리도 빨리 정리하고 퇴근해야지.”
“언니..........”
윤아는 멍한 표정으로 선미 씨를 쳐다봤다.
“아니, 애는 왜 이래, 귀신 본 거 마냥.”
“없어요.”
“뭐래, 뭐가 없어,”
“없었어요.”
“대체 뭐가 없다는 거야.”
“대표님의 그림자가요.”
선미 씨도 깜짝 놀란 눈으로 윤아를 바라봤다.
***
그날 저녁 백화점 직원들의 카톡 단톡방으로 새로 취임한 대표이사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A) 소문 들었어?
(B) 무슨 소문이요?
(A) 새로 온 대표이사 알지?
(B) 그럼요, 우리 백화점 직원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빠 잘 만나서 백화점 대표가 된 지안인가 뭔가라고 한 애 말하시는 거잖아요. 새파랗게 어리더만, 우리 딸보다 어려보이던데.
(A) 오늘 강남점에 대표가 왔는데 그림자가 없대.
(B) 에이 설마요.
(A) 아니야. 처음에는 주차장에서 일하는 박 씨 아저씨가 이야기해서 말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B) 그런데요?
(A) 1층 화장품 매장 직원인 윤아 씨가 오늘 봤대.
(B) 화장품 코너의 윤아 씨요? 그렇다면 신뢰가 가네요. 근데 어떻게 봤대요?
(A) 대표이사 손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데 대표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더래
(B) 헐 대박. 소문이 진짜인가 봐요.
(A) 그런가... 새로 온 지안인가 하는 대표이사가 진짜 귀신인가?
(B) 아휴.. 무서워서 이제 회사 어떻게 다녀요.
신화그룹 총괄 비서실장인 김실장은 그룹 본사의 마 회장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마 회장과 지안이 같이 앉아 붉은 히비스커스 차를 마시고 있었다. 김실장은 핸드폰을 열어서 단톡방에서 돌아다니는 메시지를 보여줬다. 마 회장은 김실장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김실장의 눈에 마왕 왼손의 하얀 장갑이 보였다.
“이건 뭐지?”
“지금 백화점에 돌아다니고 있는 소문입니다. 지안 님의 그림자가 없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백화점 임원들도 이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 달라고 공식 요청이 들어와서, 저희 그룹 비서실에서 통제를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놀란 지안이 벌떡 일어나서 김실장의 핸드폰에서 카톡 내용을 읽은 후, 마 회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전 어떻게 해요?”
마 회장이 김실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김실장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마 회장은 딸 지안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너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줘야지. 잠시만 기다리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 그전에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집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저는 아빠만 믿어요.”
***
잠시 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 회장은 검은 웜홀을 만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웜홀은 원곡동에 위치한 전래동화 어린이월드로 이어졌다. 얼마 전 사고로 인해서 임시 휴장이 들어간 어린이 월드로 들어간 마 회장은 태고의 어둠이 태어난 동굴로 향했다. 잠시 후, 수열대왕(獸裂大王)과 귀괴대왕(鬼怪大王)이라고 적힌 묘비에 검은 왼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비추면서 마 회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 사랑스러운 두 딸, 이제 세상 구경을 나가봐야지?”
그 순간 묘비 아래에서 어린아이의 그림자 두 개가 머리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리만 보이던 작은 그림자 두 개는 묘비 밖으로 서서히 걸어 나왔다. 마 회장은 동굴 바닥의 어린아이 그림자를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동굴 안에서 답답했지? 우리 막내딸들."
잠시 후 마회장은 태자귀(太子鬼)가 된 바리공주의 마지막 두 딸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검은 웜홀 안으로 사라졌다.
***
그날 저녁 집에서 혼자 기다리던 지안은 바닥을 바라봤다. 환한 불빛에 그림자가 비쳐야 하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안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거실 바닥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래서야 내가 이 곳에서 인간처럼 살 수 있을까?”
띵동
“도착하셨습니다.”
현관문이 열리자 마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일은 잘 해결되었나요?”
“이 아비가 누구냐. 여기 인사하거라.”
마 회장은 검은 왼손으로 바닥에 보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황한 지안은 마 회장의 눈을 바라봤다.
“네? 누구를 보라는 건지?”
그 순간 마 회장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3개로 분리되었다. 그림자 하나는 마 회장과 같은 크기의 그림자였고, 다른 두 개의 그림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이즈였다. 놀란 지안이 마 회장과 그림자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봤다. 마 회장은 그림자를 보면서 크게 말했다.
“막내 수열(獸裂)과 귀괴(鬼怪)가 지안이의 새로운 그림자가 되어 줄 것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언니 지안의 그림자가 되어서 복종해야 할 것이다.”
마 회장이 그림자를 향해 왼손으로 손짓하자, 두 아이의 그림자가 합쳐지더니 하나의 그림자로 변했다, 그리고 합쳐진 그림자는 서서히 바닥에서 움직이더니 지안이 서 있는 다리의 끝에 섰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추고는 완벽하게 지안의 행동을 따라 하는 그림자가 되어서 지안이 움직일 때마다 완벽하게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완벽한 그림자가 생긴 것을 본 지안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마 회장을 보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아빠.”
“그림자 둘은 이제 앞으로 우리 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수열(獸裂)과 귀괴(鬼怪), 두 개의 그림자로 너를 무시하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끝이 없는 무한한 공포를 심어주거라.”
“제가 어떻게?”
마 회장은 깜짝 놀란 지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잠시 눈을 감고 그 힘을 느껴보렴.”
지안은 마 회장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지안의 눈에는 수많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짐승들에 의해서 사지가 찢기는 사람들과, 요괴와 귀신들에 둘러싸여서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뜬 지안의 이마에는 땀들이 맺혀 있었다. 마 회장은 지안의 이마에 생긴 땀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네가 방금 보고 온 그곳은 만들어지지 못한 11번째와 12번째 지옥인 수열지옥(獸裂地獄)과 귀괴지옥(鬼怪地獄)이다. 이제 그 두 지옥은.."
마 회장은 지안의 두 눈을 바라봤다.
참고>태자귀 (太子鬼)
죽은 어린 아이나, 자의적인 낙태, 유산으로 인해 죽은 태아의 영혼을 의미하나, 원래는 옛날 영아 사망률 1등 공신인 병마(특히 천연두)와 영양실조로 죽은 아기 혼령들을 말한다. 태자귀(太子鬼), 태자귀(胎子鬼), 동자신(童子神), 탱자귀(撑子神)로도 부르며, 무당에게 실린 것을 태주(太主), 명도(明圖)라고 부른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