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33화-그림자들 ④환영(幻影, illusion)
“수열지옥(獸裂地獄)과 귀괴지옥(鬼怪地獄)은 우리가 다스리는 새로운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럼. 지금 있는 열개의 지옥과 시왕님들은요?“
“그 쓸모 없는 열개의 지옥과 시왕들은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참을 지안의 눈을 보던 마 회장은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세계에서 다스리고 있는 신화그룹과 함께 새로운 지옥을 다스리게 될 것이고, 우리 딸이 언젠가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오빠와 언니들은...”
“너희 오빠라 하는 인간들은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 하등한 놈들이다. 오로지 너만이, 나 마왕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네 위 세 명의 언니들은 이 아비를 배신하고 석가모니에게 갔지만...”
마 회장은 자신을 배신하고 석가모니에게 가서 출가를 한 세 딸들이 생각났는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그날은 2,500년 전 불멸기원(佛滅紀元) 즉,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며칠 전이었다.
마라 파피야스, 악마의 지배자 마왕(魔王)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어 깨달음을 얻을 경우 자신의 힘이 약화될 것을 알고 있었다. 열반을 막기 위해서 그동안 자신의 직속 악마들인 18만 마구니 부대를 이용해서 육체적인 협박을 하고, 창조할 수 있는 모든 욕망의 세계를 인간인 석가모니에게 보여주면서 유혹했지만 석가모니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석가모니는 모든 것을 깨달은 미소를 지으면서 마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어떤 협박과 유혹도 소용이 없네....... 동생."
그동안 수많은 육제적, 정신적 괴로움을 준 자기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석가모니의 말에 잠깐 눈동자가 흔들렸던 마라 파피야스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마왕은 절세미녀인 자신의 세 딸 땅하(Taṇhā, 渴愛), 아라띠(Aratī, 嫌惡), 라가(Ragā, 貪慾)를 불렀다. 그녀들은 아빠인 마왕을 향해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지 못하도록 저희의 몸과 모든 것을 이용해서 방해하겠습니다.”
마왕의 세 딸들은 보리수나무로 걸어가면서 32가지 교태로 석가모니를 유혹했다. 석가모니를 유혹하는 춤을 추면서 셋째 중 막내 라가가 말했다.
“청춘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아요. 석가 당신은 젊고 아름답군요. 우리들의 이 예쁜 자태를 보세요. 자, 함께 놀지 않겠어요? 좌선을 해서 깨닫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에요.”
젊은 석가모니는 부드러운 말씨로 답변했다.
“육체의 쾌락에는 고뇌가 따릅니다. 저는 오래전에 그러한 고뇌를 초월해 버렸습니다. 이 도리를 알지 못해 세상 사람들은 욕정에 빠져 있군요. 저는 이제 절대적인 정신의 자유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하늘을 지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저를 당신, 마왕의 세 딸들이 옭아매 둘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석가모니의 목소리를 들은 마왕의 세 딸들은 추던 춤을 멈췄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품은 석가모니의 눈을 본 그녀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경의를 표하고 손에 들었던 꽃을 바친 후, 아빠인 마라 파피야스에게 돌아가서 이야기했다.
“내일 다시 와서 유혹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왕은 자신의 세 딸 모두가 석가모니에게 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마왕은 지난밤에 세 딸 모두 자신을 배반하고 석가모니에게 가서 제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분노에 휩싸였다.
며칠 후,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었고 천지를 창조한 옥황상제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의 뒤에는 불교에 귀의한 마왕의 세 딸들이 머리를 깍고 비구니가 되어 나란히 서 있었다.
***
다음 날 정오,
해가 중천에 뜨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신화백화점 강남점 1층 주차장에 열 명 정도가 넘는 백화점 임직원들이 모여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검은 롤스로이스가 주차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VIP 구역에 주차를 한 롤스로이스의 운전석에서 두억시니가 먼저 내린 후, 차의 뒷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롤스로이스의 열린 뒷문에서 명품 샤넬 원피스에 에르메스 버킨블루 핸드백, 반짝거리는 지미추 하이힐을 신은 지안이 내리더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임직원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임직원들의 시선은 주차장 바닥에 비치는 그녀의 그림자로 향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주차장 바닥으로 지안의 완벽한 아니, 보통의 인간들과 같은 그림자가 보였다.
지안은 강남지점장 앞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는 강남 지점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점장님, 왜 그리 주차장 바닥을 뚫어지게 보고 계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닙니다. 대표님,”
“얼마 전에 제가 그림자가 없는 귀신이라는 소문을 들어서요. 지점장님도 제 그림자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요즘 세상에 귀신이 있겠습니까?”
“그렇죠?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겠어요, 여기가 지옥도 아니고.”
지안은 강남지점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안의 그림자가 지점장을 천천히 덮치더니 지점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기 시작했다. 지점장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수많은 지옥의 짐승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보다 더 큰 개와 멧돼지, 뱀 모양의 수많은 짐승들은 그를 향해 괴성을 지르고 있었고, 아래위로 치솟은 날카로운 송곳니에서는 찐득하고 검은 진액들이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짐승들이 순식간에 지점장에게 달려들어서 그의 목과 팔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짐승들에 의해서 뜯겨 나가는데도 지점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지연의 그림자가 천천히 지점장을 벗어나자 지점장 앞의 환영이 사라졌다. 지점장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아무 말 못 하고 자신의 팔과 다리를 더듬었다. 지점장의 손등에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상처가 보이더니 어느새 사라졌다.
지안이 지점장을 보면서 활짝 웃으면서 물었다.
“지점장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 아닙니다. 대표님.”
지안은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백화점 임직원들 앞을 천천히 걸어갔다. 지연이 걸어가면서 생긴 검은 그림자가 임직원들을 한 명씩 덮치자, 고통스러운지 임직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지나가자 그들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다. 지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1층 화장품 매장 둘러보고 갈게요. 따라오지 않으셔도 돼요. 일 보세요.”
지안과 두억시니가 주차장의 회전문을 통해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1층 화장품 코너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안의 뒤에 보이는 그림자가 순간 두 개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지만 주차장에 있는 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1층 화장품 매장에서 선미와 이야기를 하던 윤아 씨는 멀리서 걸어오는 지안을 발견했다. 윤아 씨와 눈이 마주친 지안은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 저에게 매니큐어 너무 잘해주셔서 또 왔어요.”
지안은 천천히 윤아 씨를 향해 걸어갔다. 지안의 하이힐에서 나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백화점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소리로 윤아 씨에게 다가왔다. 선미 씨와 윤아 씨는 덜덜 떨면서 백화점 바닥의 그림자를 쳐다봤다. 지안의 그림자가 점점 거대해지면서 다가오더니 윤아 씨 앞에서 멈췄다. 윤아 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표님, 여기 앉으세요. 오늘은 제가 해드릴게요.”
매장 매니저인 선미는 덜덜 떠는 윤아를 본 후, 지안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지안은 못 들었는지 안 들은 척하는 건지, 바로 윤아 앞으로 와서 윤아의 눈을 바라봤다. 지안의 거대한 그림자가 윤아 씨의 상반신을 덮치는 순간 지안의 눈앞에는 백화점 매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방이 칠흑같이 검은 방에 윤아 씨가 하얀 속옷만 입고 홀로 서 있었다. 윤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윤아 씨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을 고통스럽게 움켜쥐었다.
헉. 헉.
그 순간이었다.
윤아 씨의 가슴 한가운데서 남성과 여성의 손들이 서서히 나오더니 총 10개의 손들이 윤아 씨의 얼굴과 팔다리를 마치 지네가 기어가듯이 만지기 시작했다.
헉. 헉.
겁에 질린 윤아 씨는 아무 말을 못 하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손을 바라봤다. 그 순간 자신의 얼굴을 만지던 가녀린 여성의 손이 윤아 씨 얼굴 앞에서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입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입속에서 기다란 혀가 나오기 시작했다. 10개의 손에서 나온 기다란 혓바닥은 진득진득한 체액을 흘리면서 손과 함께 윤아 씨의 온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이번에는 배에서 나온 두 개의 손이 윤아 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윤아 씨는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왜요? 싫어요?”
그 순간 모든 환영이 사라지고 윤아 씨의 앞에는 지안의 웃는 얼굴이 크게 보였다. 윤아 씨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색상은 그때 그 색상으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윤아 씨는 덜덜 떨면서 서랍에서 그날과 같은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찾아 지안 앞으로 돌아왔다. 윤아 씨 앞에 앉은 지안은 이번에는 거울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림자가 안 보이면 거울에도 안 보인다던데, 어디 한번 거울도 같이 봐 볼까요?”
윤아 씨는 천천히 자신의 앞에 앉은 지안을 비추고 있는 작은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윤아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이 귀 끝까지 찢어진 하얀 소복을 입을 여자가 있었다. 거울 속 여자의 눈과 코는 보이지 않았고 거대한 입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검은 혀만 보였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덜덜 떨고 있는 윤아 씨 뒤로 매장 매니저 선미가 급하게 달려오더니 말했다.
“대표님. 피부 너무 고우시다. 얘가 대표님 보고 떨어서 그러는데 제가 해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예쁘신 대표님 보고 왜 떠는 거야, 내가 할게. 저쪽으로 가 있어.”
“네 매니저님이 해주세요, 그럼.”
지안은 선미 매니저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윤아 씨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윤아와 지안, 그리고 선미 매니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매니큐어와 립스틱을 모두 바른 지안이 막 뜯은 새 상품을 선미 매니저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때처럼 너무 예쁘게 잘 되었네요. 이거는 선물로 드릴게요. 다음에 또 봬요.”
“어머 감사합니다. 대표님, 너는 거기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대표님에게 인사해. 그때 그렇게 좋은 선물을 받았으면 인사를 해야지. 사람이 이렇게 경우가 없어서야 되겠어?”
선미 매니저가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윤아를 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윤아 씨는 식은땀을 흘리고 덜덜 떨면서 아무 말 없이 지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유, 괜찮아요, 직원들에게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다들 소중한 우리 신화 백화점의 가족이잖아요. 저 먼저 갈게요. 다음에 또 봬요.”
“어머, 어쩜. 대표님께서는 이렇게 심성도 고우실까.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지선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억시니 팀장과 함께 백화점을 나섰다. 윤아 씨를 덮쳤던 거대한 지안의 그림자는 서서히 작아지더니 지안과 함께 백화점을 빠져나갔다. 선미가 윤아 씨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대표님 그림자까지 예쁘신데 대체 왜 그런 소문이 퍼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