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35화-그림자들 ⑥컨퍼런스콜
논밭과 산길을 한참 달린 가마 도깨비는 어느덧 원곡동 골목으로 들어왔다. 원곡동 거리를 걸어가던 사람들과 요괴들이 혼자 움직이면서 앞에 달린 커다란 입으로 말을 하는 가마 도깨비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가마 도깨비는 앞에 누군가가 보일 때마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가마 지나갑니다. 옆으로 좀 비켜주세요.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가마 도깨비는 원곡동 노인회관 앞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춘 가마 도깨비가 네 개의 다리를 풀어서 가마 안에 탄 삼신이 내리기 편하게 만든 후, 큰 입으로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할매 도착했습니다.”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왔어.”
“전 여기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 보시고 주차장으로 오세요. 할매”
“응, 이따가 봐.”
삼신이 가마의 문을 열자, 구미호가 반갑게 맞이했다. 삼신할매가 가마에서 내린 것을 확인한 가마 도깨비는 일어서더니 주차장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삼신은 환하게 웃으면서 구미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잠시 후, 컨퍼런스콜 진행 예정입니다.”
삼신은 바닥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하얗고 풍성한 아홉 개의 꼬리가 있는 구미호를 따라 노인회관 으로 향했다.
***
노인회관 테이블 위에는 컨퍼런스콜을 위한 장비가 놓여 있었다. 삼신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원곡 요괴 교도소 소장이자 철물점 할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삼신할매가 안정적으로 일을 해 준 덕분에 이곳 원곡동에서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 그곳의 도깨비들과는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
“모두 다 전임 삼신할매와 여기 원곡동에 계시는 분들께서 잘 도와주셔서 가능한 것이지요.”
“무슨, 다 도깨비들에 대한 삼신할매의 통솔력이 뛰어난 덕분이지. 일단 다 모였으니, 컨퍼런스콜을 시작해 보자고.”
***
삼신할매는 컨퍼런스콜로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삼신의 말을 모두 들은 철물점 할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아이들이 예정보다 한 달 정도 빠르게 인간도 아닌 요괴로 변해서 돌아온다는 건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일인데.”
철물점 할머니는 집무실에 있는 컨퍼런스콜 전화기를 보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난데, 요괴 차사팀 거기 있나?”
“네. 방금 두 분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면서 저희도 명부와 조회를 해 보았습니다.”
“조회 결과는?”
“실제 사망해야 하는 시점보다 1개월 정도 빠르게 아이들이 요괴로 변해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의 넋이 사라졌습니다.”
“요괴 차사팀은 이번 일을 어떻게 보고 있지?”
“좀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1개월 뒤에 죽을 아이들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삼신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요괴 차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이 몇 명이 조금 빨리 온다고 해서 저희 요괴 차사들이 움직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루 한 명이라 하셨는데 그 정도면 큰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음. 요괴 차사들이 끼어들만한 문제는 아니다?”
“사실 그 반대로, 최근 인간들의 의학기술 발달로, 주어진 수명보다 조금 더 사는 인간들과 요괴들도 종종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20세기 이후에 우리 요괴차사들이 고생을 한 것도 있고요. 넋이 사라진 개수도 데이터 오차범위 안입니다.”
“그렇지, 요괴 차사들 말도 일리 있어.”
“그리고..”
“그리고 뭐?”
“삼신할매가 결정하는 인간과 요괴의 수명이, 예전에는 우리 요괴 차사들의 명부록과 100% 정확하게 맞았는데, 최근 들어 오차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자네는 지금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철물점 할머니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하다 싶으실 수 있겠지만.... 전임 삼신할매가 은퇴하시고 새로 부임하신 삼신할매가 그곳에서 일하는 도깨비들에 대한 통솔력이 좀 떨어지시는 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뭐? 자네 지금 삼신할매에 대한 월권인 거 알지? 한 번만 더 언급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요괴 차사팀장에게 버럭 화를 낸 철물점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면서 삼신할매의 얼굴을 바라봤다. 삼신도 심각한 표정으로 철물점 할머니를 바라봤다.
“잠시만.”
철물점 할머니는 이번에는 스피커폰으로 회의실 밖에 있는 비서에게 이야기했다.
“어, 난데. 도착했어? 그러면 지금 바로 들어오라고 해.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요괴 차사팀은 이제 회의에서 나가도 돼요. 수고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요괴 차사팀이 컨퍼런스콜을 나가자 철물점 할머니는 삼신할매를 보면서 말했다.
“삼신이 지금 걱정이 많겠군.”
***
똑똑
“어, 들어와.”
“안녕하세요.”
원곡동 노인회관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철물점 할머니와 앞에 앉은 삼신을 보면서 인사했다. 큰 키와 다부진 몸매, 각진 얼굴의 남자였다. 철물점 할머니가 말했다.
“도윤이라고 얼마 전 요괴 차사에서 은퇴했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인간 세상으로 보낼 예정이야. 믿을 만하니 기다려 보자고.”
인사를 한 도윤이 의자에 앉자, 삼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삼신인 제가 부족한 탓인지 아이들이 제 명대로 끝까지 못 살고 요괴로 변해서 이 곳 원곡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놀란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삼신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했다. 도윤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최선을 다해서 진상파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윤은 이번에는 철물점 할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이번 사인이 시급한 만큼 저는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윤은 인사를 한 후, 문쪽으로 향했다.
“저도 같이 따라가도 될까요?”
비서인 구미호가 소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가던 도윤은 놀랬는지 구미호를 바라봤다. 철물점 할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러면 우리 미호가 도윤이랑 같이 가서 도와주고, 이거 가져가.”
철물점 할머니는 자신의 자동차 열쇠와 신용카드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그동안 내 차 타고 다니고, 그리고 이건 내 법인카드야. 부담 가지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오라고 내가 지원해 주는 거야.”
구미호는 밝게 웃으면서 자동차키와 신용카드를 받으면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철물점 할머니는 미호의 옆으로 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귀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일을 하는 동안은 지금 이 방에 있는 우리들과 내 자동차를 빼고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과 같이 문을 열고 나가는데 철물점 할머니가 크게 이야기했다.
"그 꼬리는 좀 숨겨라."
***
철물점을 나온 구미호는 도윤을 보면서 자동차 키를 흔들며 말했다.
“소장님 차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타보게 되네요?”
“제가 운전해도 되죠? 각 그랜져라니.”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검은 각 그랜져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자동차 라디오를 통해서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모두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이 차도 도깨비군요. 라디오를 꺼야 할까요?“
“소장님이 자신의 자동차는 믿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