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34화-그림자들 ⑤진정한 공포
그날 저녁,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소아과 중환자 병실 안에 있는 침대에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의식이 없는 한 남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는 두세 살이 되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아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병원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짧으면 다음 주, 길면 이번 달입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의사는 인사를 한 후 병실을 나갔다.
그날 밤, 중환자실 안에는 아이가 누워서 가쁜 숨을 쉬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중환자실 앞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창문에 비치는 보름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더니 병실 안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 병실에 있는 침대에서 붉은 손이 스멀스멀 나오더니 아이의 두 바짓가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붉은 손은 아이의 배 속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움켜쥐고 나오더니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아이와 연결된 모니터에서 삐이이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간호사와 의사가 병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
며칠 후,
삼신할매는 자신의 초가집에서 도깨비 이 과장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쉬고 있었다. 이 과장이 삼신할매를 보면서 말했다.
“할매, 할매, 내일은 아이들에게 별주부전 이야기를 해 줄까요?”
“별주부전? 그런데 그 내용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살아있는 토끼 간을 빼낸다 어쩐다 하는 이야기가 생각해 보면 좀 잔인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도 별주부전 끝이 해피엔딩이잖아요. 토선생에게 사기당하신 별주부님이 명의 화타님을 극적으로 만나서 명약을 얻어 용왕님도 살리셨으니까요.”
“그렇게 봐야 하나?”
삼신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과장을 바라봤다.
“아이고 할매, 무슨 말씀, 요즘 애들이 얼마나 빠른데요. 알 거 다 안다니까요. 저는 내일 별주부전에 한 표 던집니다.”
“그럼 그럴까?”
삼신과 이과장이 머리를 맞대고 환생을 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줄 전래동화를 고르고 있는데,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엇, 누구지?”
이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두세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을 내밀고 얼굴을 빼꼼 들이밀었다. 그리고 둘을 향해 걸어왔다.
“잉? 넌 누구니?”
아이를 보고 놀란 이과장은 손에 든 장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애가 왜 벌써 왔지? 너는 다음 달에 오기로 되어 있는데? 그리고 너는 인간이 아니라 요괴로 변했구나? 아이의 혼이 그러면 어디로 간 거지?”
놀란 삼신도 이과장 옆으로 뛰어와서 장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아이는 오늘이 아니라 다음 달에 죽어야 하는 수명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의 혼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몸이 스스로 자각해서 요괴로 깨어난 것을 본 삼신은 놀란 눈으로 이과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아저씨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
***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주어진 수명보다 한 달 정도 빠르게 혼이 사라지고 요괴로 변한 아이들이 한 명씩 삼신할매의 초가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어린 아이들이 원래 주어진 수명보다 한 달씩 빠르게 요괴로 변하여 돌아오자, 삼신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 과장을 불러 이야기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이 과장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삼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일 원곡동에 가서 아이들이 요괴로 변해서 돌아오는 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내일 원곡동 교도소장님과 미팅 좀 주선해 줘”
“네, 알겠습니다. 삼신할매.”
***
그날 오후 삼신할매는 원곡교도소 소장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 과장은 일하는 척하면서 옆에서 듣고 있었다.
- 아이들이 주어진 수명보다 짧게 살고 요괴로 변한 채로 오는 게, 아무래도 제 탓인 거 같아요. 혹시 제가 삼신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요?
- 만나서 이야기를 하시죠. 저도 힘 닫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삼신이 전화를 끊자 이 과장이 옆으로 스윽 다가가 이야기했다.
“할매, 저는 내일 할매를 따라가지 않고 약초를 좀 찾아볼까 하는데.”
“약초? 어디서?”
“요괴산맥에서 자라는 명이나물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할매가 내일 원곡동에 가서 회의하시는 시간 동안 저는 요괴산맥에서 명이나물을 좀 찾아보게요.”
“혼자 위험하지 않겠어?”
“아이고, 할매가 준 도깨비방망이와 감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고마워,”
“아이고, 무슨 말씀. 저는 할매를 위해 일하는 게 가장 즐겁답니다.”
***
다음 날 아침,
오전 업무를 모두 마친 삼신은 집을 나섰다. 초가집 버스정류장 앞에서 삼신과 나란히 선 이 과장이 낡은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가마 도깨비가 오기로 했는데.”
“가마? 경운기 버스 타고 가도 되는데. 가마꾼 힘들잖아.”
“무슨 말씀, 할매 몸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너무 가벼우셔서 가마 도깨비는 누가 탄지도 모를 거예요. 그동안 할매 경운기만 타고 다니셨는데, 오늘은 편하게 가마 타고 가세요.”
“그럴까? 오늘 가마 도깨비를 처음 타보네.”
“가마는 흔들리지 않아서 경운기보다 편하실 겁니다. 아, 저기 오네요.”
이과장은 길 건너편을 보면서 소리 질렀다. 길 건너편에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은 피부색의 도깨비 다섯 명이 보였다. 네 명은 꽃가마의 모서리를 잡고 한 명은 가마 앞에 서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까맣고, 눈은 부리부리했고 코는 우뚝했으며 커다란 입을 가지고 있었다. 꽃가마를 메고 걸어오는 다섯 명의 검은 도깨비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울 밝은 달에 東京明期月良
밤 들어 노니다가 夜入伊遊行如可
들어와 자리 보니 入良沙寢矣見昆
다리가 넷이어라 脚烏伊四是良羅
둘은 내 것인데 二兮隱吾下於叱古
둘은 뉘 것인고 二兮隱誰支下焉古
본디 내 것이다 마는 本矣吾下是如馬於隱
앗아간 걸 어찌할꼬 奪叱良乙何如爲理古
“아니 재네들은 처용 형님이 바람피운 처용가(處容歌)를 부르고 있네.”
노래를 들은 이 과장이 투덜거렸다. 도깨비들은 삼신할매 앞으로 오더니 멈춰 서고 가마를 바닥으로 내려서 손잡이를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삼신과 이 과장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할매. 모셔서 영광입니다. 편안하게 원곡동까지 모시겠습니다.”
“고마워. 오늘 잘 부탁할게.”
삼신이 웃으면서 검은 도깨비들에게 인사를 한 후, 이 과장을 바라봤다.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할매.
”다녀오십시오, 할매!!“
검은 도깨비들은 삼신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더니, 가마를 길에 둔 채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깜짝 놀란 삼신할매가 가마를 바라봤다.
”아 맞다. 할매, 가마 도깨비 처음 타보시는구나. 일단 안에 타세요. “
이 과장이 가마의 문을 열고 가마의 앞을 보면서 소리 질렀다.
“너 할매 잘 모셔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제 안으로 들어오세요, 할매.”
어리둥절해진 삼신이 조심스럽게 가마 안으로 들어가자 가마 도깨비들이 손으로 잡고 온 직선으로 된 가마 다리가 아래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마는 네 개의 나무다리가 있는 형태가 되었다. 가마 안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삼신이 말했다.
“가마가 스스로 움직이는구나.”
“안녕하십니까. 할매, 저는 가마 도깨비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원곡동까지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가마 앞에 커다란 두 개의 눈과 입이 생기더니 삼신할매를 향해 이야기를 했다. 할매도 안심을 하고는 가마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이 과장도 삼신할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할매.”
가마는 다리를 이용해서 천천히 걸어가더니 곧 뛰기 시작했다. 어느덧 가마는 이 과장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졌다.
“나는 마누라가 싸 준 도시락 들고, 명이나물 약초 찾으러 요괴산맥으로 가 볼까.”
가방을 멘 이 과장은 흥겹게 처용가 노래를 부르면서 산으로 향했다. 도깨비가 걸어가는 길 앞으로 저 멀리 험준한 요괴산맥이 보였다.
***
그날 신화백화점에서 돌아온 저녁, 지안은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마 회장은 테이블의 반대편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딸을 보면서 말했다.
“이곳 인간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너는 이 고기를 매일 먹어야 한다. 이 고기는..”
“아빠. 저는 이 고기가 어떤 고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과연 내 딸이구나. 오늘 백화점 일은 잘 되었니?”
“직원들에게 진정한 공포가 뭔지 잘 보여주고 왔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공포는 무엇이더냐?”
잠시 고민한 지안은 익지 않은 생고기를 칼로 잘라 포크로 집어 입안으로 넣으면서 말했다.
마 회장은 씨익 웃으면서 딸 지안을 바라보았다.
“과연 내 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