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0화-아랄해 투어①근로자의 날
원곡사에서 돌아온 지 한 달 정도가 흐른 뒤였다. 닭 손질을 하던 나는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해마다 점점 더워지는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거 같구나.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올해가 가장 시원하다고요?”
“내년 여름은 올해보다 더 더운 여름이 될 거고, 다음 해는 더 더워질 거니 그렇게 말하는 거 같다. “
“아. 말 되네요.”
지이이잉
용궁으로 간 길동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닭을 자르다 말고 반가운 마음에 손에 낀 목장갑을 벗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길동이 반갑게 이야기했다.
- 형! 저 길동이에요. 바쁘실 거 같아서 전화 못 드렸어요. 그날 청이 아주머니 모시고 용궁에 잘 왔어요.
- 잘했어, 나는 그동안 많이 바빴는데 이제 한숨 돌리고 있어.
- 다행이네요. 오랜만에 우리 준이형 목소리 들으니 너무 좋은데요?
- 나도 오래간만에 우리 길동 동생 목소리 들으니 좋은데?
- 형, 그나저나 오늘 점심 머 먹어요?
- 오늘 점심? 글쎄. 아직 결정 안 했는데? 왜?
- 그러면 편의점 가보세요. 신제품인 용궁도시락이 나왔으니 다 같이 드셔 보세요. 저희 용궁 수익사업 중 하나가 편의점 도시락 사업이거든요,
- 수익사업? 용궁에서?
- 아니, 용궁은 손가락 빨아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왜 그리 놀라세요.
-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 아랄해가 말라서 물길이 없어진 후, 용궁 재정 적자가 좀 증가했더라고요.
- 아랄해?
- 아니 우리 준이형 역사공부 좀 해야겠는데요? 들어보니까 예전에는 용궁 직원들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랄해까지 헤엄쳐서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 말라서 물길이 없어졌더라고요. 물길뿐입니까? 아랄해 자체가 곧 없어지게 생겼다니까요. 이게 다 인간들의 탐욕과 환경오염 때문입니다.
- 환경오염으로 아랄해가 사라진 게 용궁 수익사업하고 무슨 상관이야?
- 아랄해는 지구 최대의 대형 호수였는데 북쪽에서 내려온 키 크고 허연 인간들이 목화사업한다 어쩐다 해서 물 흥청망청 써서 지금 다 말랐어요. 말이 돼요? 그 큰 호수가 50년 만에 말라서 없어진다는 게? 거기 살던 용궁 사람들 오래전에 다 피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 피난?
- 여기 별주부 형에게 물어보니 어릴 때 지중해랑 카스피해를 거쳐서 아랄해까지 헤엄쳐서 놀러 가곤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나오는 캐비어가 최고급이었다나 뭐라나. 아휴. 하여간, 인간들은 자연이 파괴되는 건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아요. 다 자기들에게 결국 피해가 돌아갈 텐데 말입니다. 별주부형 이야기 들어보니 좀만 더 지나면 거기 아랄해는 물론 그 인근 모두가 싹 다 사막으로 변하게 생겼더라고요.
- 캐비어? 거기 아랄해 인근이 조만간 다 사막으로 곧 변한다고?
- 궁금하면 유튜브로 아랄해를 좀 뒤져보세요. 인간들이 저지르는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니가요. 아무튼.. 거기 아랄해에서 나오던 캐비어가 없어서 용궁 재정적자가 나서 도시락 사업으로 메우고 있더라고요. 지금 편의점 가보세요, 형 바쁘니까 이만 끊을게요, 며칠 뒤에 봐요!
길동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길 건너편의 무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안의 구석에 있는 도시락 코너로 가니, 정말로 용궁수산에서 나온 ‘오늘도 든든한 별주부의 용궁만찬’ 도시락이 있었다.
"별주부의 용궁만찬 도시락 맛있더라고"
달이 누나가 계란 코너에서 통통 튀어오면서 말했다. 나는 핫바를 집어 들고 말했다.
“헐... 정말이네. 이건 뭐지? 용궁수산 핫바도 있어. 아니.. 길동이 얘 뭐야. 용궁에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빨리 적응을 했다고?”
***
[며칠 후]
띠링
갑자기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며칠 전 통화를 한 길동이었다.
“어? 길동아, 갑자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형, 내일 근로자의 날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5일 연휴죠? 우리 용궁도 작년부터 근로자의 날과 샌드위치 데이를 쉬기 시작했거든요. 용왕님의 부탁으로 이번 사흘 연휴에 형이랑 잠시 가야 할 데가 있어서 왔어요.”
“용왕님의 부탁? 어디를 가는데?”
“아랄해요,”
“아랄해? 며칠 전 이야기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막화가 된 호수?”
“네, 맞아요. 얼마 전까지 세계 최대 호수였죠. 지금은 다 말라버렸지만.”
“그런데 거기는 갑자기 왜?”
“용왕님 지시사항이 이요. 자세한 거는 편하게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해요.”
***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를 검색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거기를 갔다 와. 이동시간만 왕복 이틀은 걸릴 텐데. 보니까 비행기표도 없어. 황금연휴라서 비행기 티켓 진작에 다 동났네.”
“용왕님 전용기 타고 갈 건데요? 1시간 뒤 공항에서 전용기 출발하기로 했어요. 편의점 달이누나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해요.”
“용왕님 전용기? 달이 누나도 같이 간다고?”
“네, 환경에 관심이 많은지, 자기도 말라버린 아랄해를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형, 빨리 출발해요. 한시가 급해요.”
길동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저씨에게는 제가 미리 다 이야기해 놨습니다. 이제 우리 공항으로 가볼까요?
차를 운전하면서 나는 길동에게 물었다.
“길동아, 아랄해까지 가서 해야 하는 일이 뭐야?”
“이건 극비사항인데, 용왕님의 오래된 여자친구인 철이 누님을 만나봐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