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1화-아랄해 투어 ②원곡공항
“용왕님의 여자친구 철이 누나라고? 청이 아주머니랑 다시 잘 되신 거 아니었어?”
“두 분은 다시 잘 살고 계시죠. 철이 누님은 아주 오래된 용왕님의 찐 친구라고 해요. 이성적인 뭐 그런 거 아니고요. 용왕님의 첫 번째 친구라고 하네요? 다시 말하지만 이성 관계는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달이 누나는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달이 누나는 원곡 공항으로 바로 올 거예요.”
“나 아무것도 안 챙겨서 집에서 트렁크에 옷 같은 거 좀 챙겨야 할 거 같은데.”
길동이는 주머니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더니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우리 준이형은 그냥 빈손으로 가면 돼요. 용왕님 부탁으로 가는데 형한테 돈 쓰게 하겠어요? 옷은 물론, 팬티부터 양말까지 내가 다 책임질게요. 용왕님의 한도 없는 법인카드 받았어요.”
***
어느덧 차는 공항에 도착했다. 저 멀리 용왕님의 개인 자가용 비행기가 보였다. 비행기 앞에는 노란색의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달이 누나가 노란 여행용 캐리어와 함께 서 있었다. 우리는 달이 누나 앞에 차를 주차한 후 차에서 내려서 앞으로 걸어갔다.
“누나, 저 왔어요.”
“왔어? 어? 근데 둘 다 캐리어가 없네? 설마, 옷도 안 가져가?”
길동은 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흔들면서 용왕님의 전용기에 오르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캐리어 대신에 용왕님의 한도 없는 신용카드가 있지요! 필요한 모든 건 다 현지에서 사면됩니다.”
나는 웃으면서 달이 누나의 캐리어를 들고 길동의 뒤를 따라 용왕님의 전용 비행기로 올라갔다.
***
비행기는 영화에서나 보던 자가용 비행기였다. 계단을 올라가자 비행기 입구에는 파일럿 제복을 입은 멋진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날씬한 몸매의 아저씨는 콧수염이 멋들어지게 나 있어서 꽃중년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아저씨는 환한 모습으로 인사하면서 길동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치 성악을 하는 사람과 같이 중후하고 멋진 목소리였다.
“어서 오게,”
“안녕하세요. 용궁에서 전화로 연락드린 길동입니다. 준이형, 인사하세요. 여기 용이 형님은 용왕님의 전용 비행기 운전을 담당하고 계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랄해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달이 누나가 내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처음이라니, 너 그때 용이 오빠 만났었잖아.”
“네? 제가요? 언제요?”
“애 봐라. 어린이 전래동화 월드에 있는 용님 등 타기 기구에서 나랑 벤치에 앉아 기다릴 때 용이 오빠랑 눈 마주쳤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때 어린이월드에서 12 지신 아이들을 태워주셨던 그 청룡신이?”
달이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용이형이라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손으로 허리를 톡톡 치면서 조종석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허리가 아파서 아이들만 태워준다네. 아 참, 아랄해 인근 누쿠스 공항이 지금 일시 폐쇄되어서 우리 비행기는 타슈켄트 공항으로 갈 예정이야. 내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직접 자네들을 다 내 등에 태우고 아랄해까지 바로 갔을 텐데 세월이 야속하군, 아 참, 비행기 이륙과 착륙 시에는 안전벨트 꼭 매시게나.”
비행기는 곧 이륙하더니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
“누나, 형, 비행기에는 스튜어디스가 없어요. 먹는 건 다 셀프예요.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저 뒤에 있는 셀프바에서 갖다 먹으면 됩니다. 일단 저는 그동안 밀린 잠을 잘게요.”
길동은 수면안대를 꺼내 낀 후, 비행기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자리에 앉아 쉬기 시작했다. 약 두 시간 후, 셀프바에서 컵라면을 찾아 먹으면서 달이 누나 옆에 앉았다. 달이누나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12 지신 아이들의 근황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12 지신 아이들 이름을 누나가 다 지어줬다고요?”
“응. 자기들 이름 지어달라고 나를 달달 볶아대서 말이지.”
“그 많은 애들 이름을 어떻게 지어줬는데요?”
“내 이름을 따서 달자 돌림으로 했지. 달자/달축/달인/달묘/달진/달사/달오/달미/달신/달유/달술/달해 이렇게 부르기로 했어.”
“괜찮은데요? 부르기도 쉽고 외우기도 쉽고,”
어느덧 비행기의 동그란 창으로 타슈켄트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잔 길동도 수면안대를 풀고 자리에 앉아서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타슈켄트 시내에서 밥을 먹은 후, 바로 고속열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갈 거예요. 그리고 내일 새벽에 다시 부하라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고급 RV를 타고 아랄해로 갈 예정입니다. 용이형님도 우리랑 같이 가실 거죠?”
“안 그러면 혼자 호텔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나도 여행에 동참하도록 하지.”
공항을 나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타슈켄트 시내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본 타슈켄트 시내는 낡은 아파트와 새 아파트가 같이 공존하는, 마치 오래전 90년대 서울과 같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나는 택시에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 타슈켄트 시내는 거의 90년대 서울과 흡사한데? 지하철도 보이고. 공원도 곳곳에 많이 보이네.”
“타슈켄트에서 멀어질수록 단전과 단수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지진도 자주 일어나고요”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고?”
“네, 사실은 그 지진 때문에 온 거예요. 지진의 발원점이 모두 아랄해 인근이거든요. 용궁도 최근 그 지진의 영향을 받아서 피해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랄해에 가서 철이 누님을 만나 확인해 보라고 하신 거죠.”
***
우리는 타슈켄트의 한 식당에서 우즈벡 전통음식이자 우리가 먹는 면요리의 기원이라는 '라그만'과 볶음밥의 기원인 '오쉬', 그리고 만두의 기원인 '솜싸'로 구성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볶음밥처럼 생긴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달이 누나를 보면서 말했다.
"와. 누나, 이게 제일 맛있는데요? 오쉬라고 했나?"
"정확한 명칭은 플롭(Plov), 플로브라고도 하지. 예전에 알렉산더가 전쟁하면서 즐겨먹던 음식이기도 하고."
"알렉산더 대왕이요? 2000년도 훨씬 더 넘은 그 먼 예전 일을 누나가 어떻게 그걸 알아요? 누나 나이 진짜 많구나."
"닥치고 밥이나 먹자."
저녁을 먹은 우리는 바로 타슈켄트 기차역으로 가서 사마르칸트행 아프로시압 고속열차를 탔다. 고속열차 안은 세계적인 역사 유적도시인 사마르칸트로 놀러가는 우즈벡 분들과 외국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용이형은 내 옆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태곳적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옥황상제의 1차와 2차 신들의 전쟁, 석가모니와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인 마라파피야스 신 사이에서 벌어진 설전을 어찌나 실감 나게 이야기를 해 주셨는지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야기를 마친 용이형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특히 2차 신들의 전쟁 때 원곡사에 있는 석이형님의 활약이 장난 아니었지. 우리 용의 새끼들을 몰래 훔쳐서 이상한 신체실험과 이종교배를 해서 만든, 십만에 달하는 서역의 드래곤들이 석이형님 단 한명으로 인해서 전멸했거든.”
"원곡사 석이형님 혼자서 서역의 드래곤 십만을 몰살시켰다구요?"
"당시는 지금과 달리 몸이 좋으셔서 청룡인 나보다 더 잘 날아다녔다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용이형을 바라봤다. 어느덧 우리는 사마르칸트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는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가수인 Nasiba Abdullaeva 의 '사마르칸트'라는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https://youtu.be/wttAm5X7zpk?si=rFl0tmm5sJMkPJ_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