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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42 고구려 사신

[소설] 원곡동 쌩닭집-42화-아랄해 투어 ③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

같은 시각, 커다란 초가집에서 도깨비 이 과장이 책을 읽고 있는 삼신할매를 보면서 물었다.     


“할매, 나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 말해봐.”     

“삼신할매는 해외여행을 해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태어나서 여기 말고 해외를 가 본 적이 없어서요. 해외여행하면 뭐가 좋아요?”     

“글쎄, 여행지에서 낯선 걸 보고 낯선 사람과 만난다는 것?”      

“그렇구나”     


이 과장은 들고 있는 책을 넘기면서 말했다.     


“나도 해외여행 가고 싶다.”     

“그래? 이 과장은 아직 해외 안 가봤구나?”     

“네, 저희 도깨비들은 나라 간 이동이 좀 제한되어 있어서요.”     

“누가 제한을 한 거지?”     

“전임 삼신할매요. 붉은 석탑 두억시니 도깨비 한 명이 오래전에 일본에서 실종되었는데 그 사건 이후에 도깨비들의 해외 이동을 제한하셨죠.”   

"붉은 석탑 두억시니? 우리 도깨비 중에 이제 붉은 석탑 두억시니는 존재하지 않는데?"

"네, 저희 도깨비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그가 일본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잔인하길래?"

"붉은 석탑 두억시니의 취미는 두 손으로 인간의 머리를 바스러뜨리는 거랍니다. 그냥 이유 없이 재미로 사람을 죽이죠. 그리고...."


이과장은 삼신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붉은 석탑 두억시니는 특히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전임 삼신할매도 못 찾을 정도면 진짜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거죠."


놀란 삼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한 후, 이과장을 보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이과장은 만약 그 제한이 풀리면 어디를 가보고 싶은데?”     


“음...사마르칸트요.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한 중요한 도시죠. 철학, 종교, 문화, 역사, 과학 등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 그곳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요.”     



“그래? 나중에 사마르칸트에 나랑 같이 가보자.”     

“엇! 정말요? 약속하신 겁니다.”     


이과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한 팔을 하늘로 들면서 말했다.      


"내 말발굽이 닿는 곳은 모두 우리의 땅이다. 지난 주민이 남긴 흔적은 철저하게 파괴하라."     


“그 잔인한 말은 누가 한 건데?”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영웅 아무르티무르요, 평생 정복 전쟁을 한 티무르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쟁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죠. 그렇지만 예술가와 기술자들은 죽이지 않았어요. 각지에서 수백 명의 장인과 유능한 건축가와 예술가, 기술자들을 데려와 12세기 몽골 군대에 완전히 파괴된 사마르칸트를 푸른빛의 도시로 재건했죠. 그나저나 할매, 나하고 약속한 겁니다. 나중에 사마르칸트 같이 가기로.”     



”그렇구나, 그래, 내가 약속할게.      


“아싸!”     


도깨비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방을 나갔고, 혼자 남은 삼신할매는 책상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오래전 사라진 붉은 석탑 두억시니......'


***    

 

“그나저나, 길동아, 바로 아랄해를 가지 않고 여기 사마르칸트에서 왜 1박을 하는 거야? 지금 바로 출발하면 오늘 중으로 아랄해에 도착하지 않을까?”     


"아랄해를 가기 전에 사마르칸트에 있는 박물관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철이누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거든요. 아랄해가 얼마나 넓은데요, 너무 넓어서 정보 없이 그냥 갔다가는 철이누나 절대 못 찾아요. 박물관에서 철이누나의 정확한 위치가 있는 지도를 받기로 했지요.”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아프로시압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안에는 7세기 사마르칸트에서 번영했던 소그디아 왕국 바르 후만 왕의 즉위식 벽화가 있었다.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박물관 벽화


한쪽 벽을 꽉 채운 커다란 벽화는 당나라와 태국 시암을 비롯한 각국의 사신들이 왕을 접견하는 장면으로 가득했다. 그중 고구려 사신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밑에는 'Korean guards'라고 박물관에서 붙인 표식이 붙어 있었다.      


벽화 속 고구려 사신이 쓴 모자는 고깔과 같았고 두건의 모서리에는 새의 기다란 깃털이 꽂혀 있었다. 다음 방에 들어가니 디지털로 복원된 두 명의 고구려 사신 모습이 현명하게 보였다.      


         

"먼 옛날에 이 두 분 고구려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그 순간 용이형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고구려에서 당나라를 거쳐 이곳 중앙아시아 서역까지 온 거니까. 그때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고구려에서 여기 사마르칸트까지 6,000km 이상을 걸어왔으니.”     


"네? 힘들었다고 말했다고요?”     


"그때 내가 사마르칸트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저 벽화 속의 고구려 사신 두 명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같이 했었지. 어, 저기 왔네.”     


말하다 말고 용이형이 내 뒤를 가리켰다. 뒤돌아보니 벽화와 같은 옷을 입은 고려인 3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유창한 한국말로 나를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고구려의 밀사로, 제가 평양성에서 이곳 사마르칸트로 왔었습니다. 비록 성과는 없었지만요.”     


아저씨는 길동에게 악수를 하면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며칠 전 전화로 부탁하신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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