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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39 오래된 석탑

[소설] 원곡동 쌩닭집-39화-그림자들 ⑩ 두억시니

방금 전 도윤이 마 회장 집에서 나온 쓰레기봉투를 몰래 가져오기 위해, 차 안에서 미호와 조용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시각이었다.     

 

마 회장 저택의 마당에 있는 작은 오래된 석탑 주변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여기저기 손상된 부분이 보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현관문 밖에 꽤 멀리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에서 박도윤이 미호에게 말하는 소리가 개미가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보다도 작게 들리고 있었다.      


“쓰레기 속에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이 정도 재벌가들은 쓰레기도 아무 데나 막 버리지 않는 거 아시죠? 잠시 후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올 거예요. 그때 시간 맞춰서 일하는 아줌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올 겁니다.”      


그 순간, 석탑에 커다란 귀 하나와 눈 두 개, 거대한 입이 생겨나더니 정문의 쇠창살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도윤과 미호가 타고 있는 차를 쳐다봤다. 충혈된 두 눈은 문 밖의 차를 노려보고 있었고, 귀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급기야 석탑 양쪽의 귀가 점점 커지더니 둘의 대화소리는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재벌가들의 삶의 패턴을 잘 아세요? 전생에 재벌도 아니었으면서.”     



잠시 후, 도윤과 미호가 탄 차량이 사라지자, 귀와 눈이 생긴 석탑은 어느 순간 석탑의 색과 같은 회색의 버버리코트를 입은 커다란 두억시니로 변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간 두억시니는 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컴컴한 지하실에서 눈이 가려지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손발이 의자에 묶인 도윤에게 두억시니가 기다란 호스를 이용해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을 맞고 정신을 차린 도윤이 소리를 질렀지만, 천으로 가린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청색 테이프로 단단하게 막은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읍읍읍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안 하면 머리를 으깨서 죽여버린다.”     


두억시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윤에게 이야기를 하자 도윤이 신음을 멈췄다. 두억시니는 도윤 옆으로 걸어가더니 눈을 가린 천을 풀었다.


도윤의 눈에는 거대한 몸집과 붉은 얼굴의 두억시니가 보였다. 그는 회색 버버리 코트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이마에 있는 두 개의 뿔을 완전히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억시니는 박도윤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왜 남의 집 쓰레기를 뒤지는 거지? 그리고 호텔 스위트룸에서 자는 걸 보면 거지는 아닌 것 같은데, 주머니에는 지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 넌 대체 누구지?”     


도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두억시니를 바라봤다.   

   

“어쭈? 이것 봐라. 아무 말 안 하겠다 이거지?”  

   

두억시니는 두 손을 들어서 도윤의 머리를 잡아서 짓누르기 시작했다. 도윤은 고통으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두억시니가 두 손으로 머리를 짓누르자 도윤의 머리를 잡은 두억시니의 모든 손가락 끝에서 두두둑 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뼈가 서서히 부서지는 고통으로 도윤의 두 눈이 뒤집히더니 비명을 더 크게 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윤은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묶은 손발은 마치 발작이 난 듯 사방으로 마구 움직였다.     


으아아아악   

  

“야, 너 머리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두개골 바스러져서 죽는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던 도윤은 이내 소리를 멈추고는 몸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두억시니는 머리를 잡은 손가락을 놓고는 도윤을 내려다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어? 머리가 안 깨지고 기절했네? 생각보다 강한 놈이군. 그래도 일단은 주인님께 보고를 하는 게 좋겠지?”     

두억시니는 기절한 도윤을 두고 지하실의 문을 열고 마 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     


같은 시각 교도소장 집무실에서 소장은 미호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교도소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미호를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돼, 좀 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와.”     

“더 확실한 정보요?”     


미호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흥분한 듯 교도소장에게 말했다.      


“신화그룹 마 회장의 넥타이핀이 이곳 원곡동에 있는 [전래동화 월드] 동굴 안에서 발견된 거, 그리고 마 회장 집에서 나온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체 장기와, 그림자가 두 개인 여성이라면 요괴차사들이 나설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마 회장의 얼굴도 이곳 원곡 카지노의 마라 파피야스와 비슷하고요.”      

“자네 말을 듣고 요괴 차사들이 나섰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그럼 오히려 다행이죠, 아무 일이 없는 거니까요.”     

“과연 그럴까? 지금 요괴 차사들이 새로운 삼신할매를 탐탁지 않아 하는 건 알고 있지?”     

“네?”     

“요괴 차사팀에서 지금 호시탐탐 반기를 들 생각을 하고 있어. 이번 일로 요괴 차사들에게 꼬투리가 잡히면 우리 모두에게 그 화살이 날아올 거야. 요괴 차사팀도 납득하고 나중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보다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해.”     


잠시 생각한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럼 저는 이만 다시 가보겠습니다.”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마워, 박도윤이랑 같이 좀 더 수고해 주고, 아 참,”      


교도소장은 지갑에서 다른 카드 한 장을 꺼내더니 미호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인카드로 단 둘이 로열스위트룸은 좀 심하지 않니? 그런 것도 나중에 차사팀이 꼬투리 잡고 지랄한다니까. 연애하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증빙하라고 말야. 차사팀 그놈들이 치고 들어오면 너도 곤란하지 않겠어? 정 그런 고급호텔에서 도윤이랑 자고 싶으면 이걸로 써. 내 개인 신용카드야.”      

“아.. 소장님, 저희 그런 사이 아닙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괜찮아. 그 정돈 나도 이해해. 그래도 넣어 둬, 쓸 일이 생길 거야. 그리고”     

“네?”     

“박도윤 그놈 괜찮은 놈이다.”     


교도소장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미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교도소장의 개인카드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계속 수고해.”      


교도소장의 집무실을 나온 미호 차를 몰고 다시 도윤이 있는 호텔로 향했다.    

  

***     


그 시각 마 회장과 지안은 두억시니 팀장과 함께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에는 두억시니의 머리 짓누르기 고문으로 기절한 박도윤이 축 늘어진 채 의자에 묶여 있었다. 두억시니는 기절한 도윤의 머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마 회장이 물었다.     


“이놈을 대체 어디서 발견했지?”     

“집에서 나온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건너 호텔에서 이곳을 염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없애 버리시지요. 제가 머리를 짓눌러서 바스러뜨리겠습니다.”      

“아니야. 죽으면 골치 아파진다. 한때 요괴 차사였던 놈이다.”      


두억시니는 깜짝 놀라면서 마 회장을 바라봤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원곡 카지노]로 몰래 데려가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정신적인 최대의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그전에 우리 딸 지안이가 테스트를 해 볼 게 있지. 자네는 이만 나가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놈 말고 혹시 한 명이 더 있을 수 있느니 주변을 좀 더 잘 살펴보게.”     

“알겠습니다.”     


두억시니가 지하실을 나가자 지안의 그림자가 두 개로 변하더니 도윤을 덮쳤다. 지하실의 방에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박도윤의 신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약 1 시간 후,    

  

두억시니가 이번에는 기절한 미호를 업고 다시 지하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저놈과 함께 다니고 있는 계집인데, 저놈이 있던 호텔방으로 들어오길래 기절시킨 후 잡아왔습니다.”      

“고생했네, 저놈 옆에 앉히게.”      


두억시니가 업고 있는 미호를 박도윤의 옆에 같이 묶자 마 회장이 말했다.    

 

“이 아이는 구미호군, 놓고 가게.”    

 

인사를 한 두억시니는 지하실을 나갔다.

 

잠시 후, 미호가 눈을 뜨자 눈앞에는 집채만한 호랑이들이 둘러싼 채 포효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호를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과 팔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미호의 온몸에서 쏟아지는 피로 바닥이 시뻘게졌다. 미호는 비명을 지르면서 기절했다.      



기절한 미호가 다시 눈을 뜨자 이번에는 지하실의 바닥에서 검은손들이 서서히 나오더니 미호를 에워쌌다. 손바닥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날카로운 이빨과 기다란 혀를 가진 입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입들은 다시 미호의 온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미호는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다가 다시 기절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수열(獸裂)과 귀괴(鬼怪) 지옥에서 고통받는 도윤과 미호의 신음이 지하 깊숙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윤과 미호의 몸을 건드리는 건 지안의  몸에서 나온 검은 어린아이의 그림자뿐이었다. 몸에는 상처하나 내지 않는 그 신음소리는 일주일이 넘게 지속되었다.

     

일주일이 흐르자 도윤과 미호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지하실 구석에서 도윤이 가까스로 눈을 뜨자, 앞에는 기절한 채 누워 있는 미호가 보였다. 도윤은 미호의 옆으로 힘겹게 기어갔다. 기절한 미호의 손을 꼬옥 잡은 도윤은 다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다시 기절했다.


도윤이 다시 기절하자 작은 그림자 두 개가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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