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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52 요괴 치킨

[소설] 원곡동 쌩닭집-52화-마라 파피야스 ③요괴 치킨

눈을 뜨니 병원 안이었고 왼손은 커다란 붕대로 칭칭 동여맨 상태였다. 붕대의 끝으로 보이는 손가락은 예전처럼 모두 검은색이었다. 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왼손의 손가락에 힘을 주자 조끔씩 움직였다. 나는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이 모든 것이 다 꿈이었구나.”     


그 순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병실로 들어오더니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자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큰일 날 뻔했네. 조금만 늦었어도 절단할 뻔했거든.”     


나는 의사를 보면서 물었다.    

  

“여기는 무슨 병원인가요? 저는 교통사고를 당한 건가요?”

“교통사고 정도로 그렇게 다치지는 않지. 쥐 독이 온몸에 퍼져서 큰일 날 뻔했네.”

“쥐 독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의사를 쳐다봤다.      


“여기는 어디 병원인가요?”

“어디긴, 원곡 한의원이지”    

 


의사 선생님은 방을 나가다가 돌아서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퇴원해도 되네. 손의 깁스는 퇴원하면서 바로 풀어도 돼. 아 참, 그런데.”  

   

밖을 나가던 의사 선생님은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 자네의 그 검은 왼손 말일세.”

“제 검은 왼손이요?”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하얀 깁스 끝으로 보이는 검은 손가락들은 잘 움직였다.     


“선생님 덕분에 잘 움직이는데요?”

“낫기는 했지만 뭔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내 잠시 침을 손 끝에 놓아서 치료를 해 볼까 하는데, 괜찮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은 수많은 작은 침을 가지고 오시더니 내 왼손의 손가락 끝으로 그 침을 하나하나 놓기 시작했다.     



“좀 따끔할 걸세. 손가락 끝에는 신경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기브스 밖으로 조금 튀어나와 있는 검은 손가락 하나마다 10개 정도의 침을 꽃은 내 왼손은 거의 고슴도치와 같은 모양이 되어 있었다.   

   

“어떤가?”

“괜찮습니다.”

“그럼 잠시 힘을 줄 수 있을까?”

“힘을요? 이렇게요?”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수많은 침이 꽂힌 고슴도치와 같은 왼손의 검은 손가락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 힘 말고,”

“그러면 어떤 힘이요?”

“단전의 힘 말일세.”

“단전이요?”


“단전은 우리 인체의 경혈 중 가장 기운이 많이 모이는 세 곳이자 에너지의 중심을 의미하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 있으나 보통은 하단전을 의미하지.”


선생님은 벽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배꼽 밑 세치 아래쯤을 손으로 가리키셨다.    


  

“이곳일세. 기(氣)가 여기서 온몸으로 흐르지.”

“아 여기가 단전이군요.”

“눈을 감은 채 단전에 힘을 주고, 그 힘을... 자세의 왼손으로 보내보게.”

“힘을 왼손으로요?”

“아무래도 자네 왼손에 기를 보내줘야 나쁜 기운이 빠진 후, 원활하게 왼손이 움직일 걸세. 그렇지 않으면 왼손에 남아있는 독이 다시 자네를 잠식해서 손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네.”

“저... 절단이요? 잠시만요. 지금 바로 해 볼게요.”     


나는 눈을 감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단전에 힘을 주었다. 잠시 후,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내 배의 밑에서 왼손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배에서 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말씀하신 '기(氣)' 군요."

"자네 배를 마사지 하고 있는 내 손일세."

"아..."


선생님은 나의 단전에서 왼손으로 기가 흐를 수 있게 계속 마사지를 해 주셨다. 잠시 후, 왼손의 검은 손가락에서 검은색의 잉크 같은 땀들이 생기더니 어느새 연기와 같이 사라졌다. 그 순간 왼손에서 검은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지. 계속해!”     


검은 왼손에 힘을 주니 손바닥에서 검은빛이 나와 병실 안을 온통 새까맣게 만들었다. 손에 힘을 빼니 다시 병실 안이 환해졌다.      


“이제 왼손의 독이 제거되고,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검은손에 봉인된 힘도 모두 해제된 것 같군.”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내 손가락의 침을 모두 제거한 후에 병실을 나가셨다.   

  

***     


그때 병실 안으로 아저씨가 들어왔다. 아저씨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니? 최종 테스트는 합격이야. 고생했어.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

“네, 방금 나가신 선생님께서 제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아 참, 달이 누나는요?”

“달이는 지금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이지. 다친 데가 하나도 없더라고.”     


나는 검은 왼손을 바라봤다.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최종 테스트 합격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일주일 특별휴가를 줄 테니까 푹 쉬고 다시 출근해, 아 참, 너 좋아하는 치킨 배달했으니 잠시 뒤에 도착할 거야. 맛있게 먹고. 나는 가게로 먼저 간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테스트 합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 순간 마지막으로 목을 자른 남자가 불에 타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마라 파피야스와 요괴감옥, 원곡 카지노의 진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너희는..우리를 벌할..자격이..없다.” 

 

잠시 후, 빈 병실에 나 혼자 누워 있었다. 내 왼손은 하얀 깁스를 감고 있었고, 왼손에 힘을 주자 왼손에서 나오는 검은빛이 방 안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     


“치킨 배달 왔습니다.”     


잠시 뒤, 커다란 요괴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강렬한 치킨 냄새를 풍기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급히 손의 힘을 뺐다. 그리고는 배달원이 쓰고 있는 커다란 탈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르바이트생이 쓴 탈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눈코입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치킨과 콜라, 치킨무를 내 침대 옆에 놓고는 병실 밖을 나가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깜짝 놀라면서 나를 돌아봤다.    

“어? 혹시, 선생님, 우리 전래동화 나라에서 보지 않았어요?”

“아, 그런 것 같아요, 그때 흥부놀부 게임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 톱 나눠주셨죠?”

“맞아요. 저를 알아보시는구나.”

“그러면 쓰고 계신 거는 탈이 아니라 진짜 얼굴?”

“당연하죠. 저는 요괴니까요. 여기 원곡동의 인간 아이들은 이게 제 진짜 얼굴인지 모르더라고요. 탈을 쓰고 배달하는 줄 알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이곳 원곡동 요괴치킨 배달일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맨 얼굴로 맘껏 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쿠폰을 하나 꺼내면서 말했다.      


“저희 원곡 요괴치킨집은 열 번 시키면 한 번 공짜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요괴탈을 쓴 청년이 병실을 나간 후, 나는 내 앞에 놓인 치킨상자를 잠시 바라봤다. 치킨 상자에는 ‘원곡 요괴 치킨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상자에서 닭다리를 하나 집고 한 입 먹기 시작했다. 그 맛은 예전에 엄마가 집에서 튀겨주던 닭튀김의 맛이었다. 내 눈이 글썽글썽해졌다.      


벌컥     


그 순간 병실의 문이 열리고 달이 누나와 길동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 치사하게 혼자 닭다리 먹기 없기.”

“괜찮아 나는 닭다리 안 좋아해. 너희 둘이 하나씩 먹어.”     

"어? 길동아, 갑자기 여기를 왜?"

"형, 불금이잖아요. 용궁도 주 5일 근무한 지 좀 되었어요. 형 최종테스트 합격한 거 축하해주려고 왔죠, 내일 원곡사 가서 석이형님 안부인사도 드리고, 감옥에 가서 심씨 할아버님 면회도 하고. 겸사겸사 왔어요."


길동이가 남은 닭다리를 집어 들고 먹으면서 달이 누나에게 물었다.


“그럼 누나는 닭다리 말고, 치킨 중에서 어느 부위를 제일 좋아해요?”

“나? 목을 제일 좋아해.”

“목이요? 그거 발라먹을 살도 없는데?”

“우리 동생들이 닭을 먹을 줄 모르는구먼. 닭 목살이 얼마나 쫄깃하고 맛있는데, 닭 목살은 숯불에 구워 먹어도 맛있어. 나중에 내가 사줄게.”     


달이 누나와 길동, 그리고 나는 병실에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닭다리를 뜯으면서 달이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혹시 마라 파피야스라는 신은 어디 살아요?”

“원곡 카지노 사장이 마라 파피야스야. 나는 주말에 일이 있으니, 길동이랑 둘이 한번 가 보던가.”     

“원곡 카지노요? 주말이니 저도 갈게요. 와. 그런데 여기 요괴 치킨 진짜 맛있다.”     


치킨을 먹으면서 연신 감탄한 길동도 주말에 나와 같이 카지노에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 원곡쌩닭에서 납품하는 신선한 닭으로 튀긴 건데. 안 맛있으면 이상한 거지.”     


나는 달이 누나를 보면서 말했다.      


“누나, 우리 치킨 한 마리 더 시킬까요? 저 이제 정식 직원이 되었으니 제가 오늘 쏘겠습니다.”

“야, 한 마리로 누구 코에 붙이니. 정식 직원이 되었는데 치킨은 좀 약한 거 아닌가.”

“형, 나는 양념치킨!”     


길동은 치킨과 함께 배달된 치킨무를 손으로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철물점 할머니인 원곡동 교도소장님이었다.      

“네, 소장님, 지금 달이누나랑 길동이랑 같이 치킨 먹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그쪽으로 갈게요.”     

“왜? 무슨 일이야?”     


치킨 목을 들고 살을 발라먹던 달이 누나가 말했다.     

 

“소장님께서 원곡 카지노와 마라 파피야스신 건으로 잠깐 보자는데요?”

“얼마 전 은퇴한 요괴차사랑 구미호가 실종되었다던데 그거 때문에 그런가?”

“그래요? 이거만 먹고 가볼게요. 치킨 추가는 나중에 시켜 먹는 걸로 하죠.”  

  

[그날 저녁]     


나와 길동이는 화려한 마라 카지노 정문 앞에 서 있었다. 



타이트한 검은 정장에 멋진 주황색 선글라스를 쓴 나는 태산검을 지팡이처럼 쥐고, 역시 마찬가지로 멋진 정장을 입은 길동을 보면서 말했다.      


“귀신의 왕인 마라 씨가 운영하는 카지노로 들어가 볼까?”


“달이 누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우리 뒤로 수많은 인간과 요괴, 귀신 및 신을 포함한 다양한 모습의 손님들이 줄을 서서 카지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 앞을 덩치 큰 직원들이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가장 덩치 있는 직원이 내 손의 태산검을 가리켰다.     


“무기는 안 됩니다. 여기 놓고 가십시오.”     


그 순간 내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내 손에 들린 태산검을 낚아채면서 말했다.  

  

“이건 무기가 아니라 내 지팡이라네.”     


놀란 내가 뒤돌아보니 하얀 명품 정장을 입은 원곡사 주지스님 석가모니였다.


석이형은 태산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옆에 선 세 아가씨들을 보면서 말했다.


“자, 그러면 우리 같이 들어가 볼까?”    


세 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석이형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나와 길동도 석이형을 따라 카지노 안으로 들어갔다. 카지노의 황금빛 천장에는 수많은 황금 드래곤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카지노 안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과 요괴, 귀신과 도깨비, 신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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