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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53 원곡 카지노

[소설] 원곡동 쌩닭집-53화-마라 파피야스 ④원곡카지노

우리는 석이형의 뒤를 따라서 카지노장 안으로 들어갔다. 길동이는 고개를 들어 카지노의 천장을 날아다니는 화려한 금빛 용들을 보면서 큰 목소리로 감탄했다.   

   

“와, 진짜 장난 아니네요. 저기 위에 날고 있는 금룡(金龍) 님들을 좀 보세요. 총 일곱분의 용이 있네요. 진짜 용신인걸까요? 진짜 용신이면 왜 카지노에서 저러고 계시는 거지? 그나저나자 듣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한데요? 저기 수족관에 인어도 보이네요. 진짜 대박이네요."

    


"우리는 저쪽 가서 놀고 있을테니, 둘러보고 와"


명품을 온 몸에 휘감은 석이형과 세 명의 여성은 카지노의 중앙으로 걸어가셨다. 길동이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준이형, 여기 카지노에 와보신 적 있어요?”    

 

나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날아다니고 있는 금빛 용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 나도 그동안 여기 식당만 들어오고 카지노 안으로 들어온 적은 처음이야. 이곳 카지노는 우리 원곡 쌩닭집의 최대 거래처 중 하나거든. 여기서 소비하는 닭고기와 계란 물량이 꽤 되니까. 그나저나 길동아. 이곳의 주인이라는 마라 파피야스가 석이형과 무슨 관계인지 혹시 아니?”    

 

“음..저도 이야기로 들은 건데요, 태고적 시절 마왕이 이승은 물론 저승세계를 모두 자기가 다스리려고 했다가, 석이형님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배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후 옥황상제님의 중재에 의해서 마왕은 이곳의 원곡 카지노장을 운영하게 되었고, 옥황상제님과 석이형은 마왕의 카지노 운영방식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길동이는 내 옆으로 오더니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소문에 의하면 이곳 원곡 카지노 말고도, 이승의 모든 카지노장이 마왕 소유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원곡동 말고도 이승의 모든 카지노장을 마왕이 모두 운영하고 있다고?”     


“네, 이승에 있는 모든 카지노를 운영하는 신화그룹이 마왕의 소유라는 소문이 파다해요. 신화그룹 마회장이 바로 마왕이라고. 옥황상제님과 석가모니님이 협의했다고 하니 뭐..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마왕이 어떠한 분란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의 영역인 카지노장 안에서 조용히 살고 있으니까.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런데 저기는 뭘까?”     


우리는 중앙홀로 이동했다. 석이형과 같이 온 세 명의 여성들이 우리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카지노 중앙홀 구석에는 마치 명품을 파는 곳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이 있었다. 안에는 수많은 인간과 요괴, 귀신들이 문전정시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 벽이 온갖 명품들로 가득한 가게 입구의 간판을 보니 ‘원곡 카지노 전당포’였다.    


“저기는 카지노 전당포라네. 돈을 빌려 도박을 했다가 갚지 못해서 노역을 하고 있거나, 감옥에 있는 신, 요괴, 동물, 귀신, 인간, 망자들이 꽤 되지. 반대로 명품에 빠져서 제 때 반납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석이형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말했다. 석이형의 손목에 있는 화려한 명품 시계가 반짝거렸다.

***     


석이형과 우리는 어느 덧 카지노의 중앙홀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누가봐도 이 곳 카지노의 주인같이 보이는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렵한 몸에 검은 명품 정장을 입은 마왕은 석이형을 향해 걸어오더니 크게 안아주면서 환영했다.     

 


“잘 오셨습니다. 형님.”

“오랜만일세. 동생. 그동안 잘 지냈나?”

“형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간만에 오셨으니 편히 쉬다가 가십시오.”   


석이형을 안아주는 마왕은 특이하게도 왼손에 붉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마왕은 석이형의 양쪽에 있는 세 명의 미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들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원곡사에서 잘 지냈니?”

“그럼요. 아빠. 저희는 원곡사에서 석가모니님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내가 좋은 방으로 내줄테니, 재미있게 놀다 가렴.”     


마치 부녀사이처럼 반겨주고 응대하는 마왕과 세 명의 여성들 옆에서 나는 당황했다. 당황해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길동이가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준이형 몰랐구나? 석이형과 같이 오신 비구니 세분은 모두 마왕의 딸들이에요.”

“뭐? 마왕의 딸들이라고?”     

"네, 예전 석이형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고행을 겪으실 당시, 마왕이 절세 미녀인 자신의 딸 셋을 이용해서 석이형을 유혹해서 해탈하시는 것을 막으려 했다가 실패했다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마왕의 따님들이 석이형에게 감동하여, 원곡사로 와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어요.“

“세 분이 모두 비구니라고? 그럼 저 긴 생머리는?”     

“필요할 때는 저렇게 가발을 쓰고 화려하게 노시는 거죠, 뭐.”     


전남 구례군 화엄사 암자 연기암 벽화 -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마왕인 마라 파피야스가 자신의 세 딸들을 이용해서 부처님을 유혹하는 장면)


자신의 딸들과 인사를 마친 마왕은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빨간 장갑을 낀 왼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는군요. 마라 파피야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원곡동 쌩닭집에서 일하는 이준이라고 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왼손을 내밀어서 마왕의 붉은 장갑을 낀 손을 잡아 악수를 하였다. 마왕은 악수를 하는 내내 나의 검은 왼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악수를 마친 마왕은 석이형과 자신의 친 딸들을 보면서 말했다.  


“형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놀다 가십시오. 너희들도 재미있게 놀고.”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고.”

‘다음에 봐요, 아빠.“     


마왕은 이번에는 옆에 서 있는 붉은 얼굴의 지배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황토색 버버리를 입은 지배인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손님들을 잘 모시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정성을 다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마왕은 카지노 중앙의 홀로 내려가더니 수많은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한명한명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붉은 얼굴의 카지노 지배인은 우리를 카지노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로열스위트룸으로 안내했다. 지배인은 다섯 개의 방 키와 자신의 명함을 주면서 말했다. 그는 9905 호실의 방 키를 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여기 9901호실부터 9906호실의 VIP 룸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방 안의 모든 음료와 서비스는 저희 마왕님께서 무료로 제공해 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부족하시면 언제든 저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땡큐, 자 그러면 우리 모두 각자 방에 들어가서 좀 쉬자고.”     


석이형은 방 키를 받더니 9901 호실로 들어가셨다. 마왕의 세 딸들도 방 키를 받고는 9902 부터 9904까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길동을 보면서 말했다.   

   

“길동아, 우리도 방에서 좀 쉬고 1시간 뒤에 여기서 만나자.”

“좋아요. 형, 1시간 뒤에 봐요.”    


나와 길동은 키를 가지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안내해준 붉은 얼굴의 지배인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스위트룸은 화려한 황금빛 가구들로 채워진 커다란 방이었다.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여니 비싸 보이는 생수와 각종 음료수가 가득했다. 나는 생수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호텔 스위트룸이구나. 이렇게 음료까지 무료로 주고. 대박.”


그 순간이었다.    

  

***     


“그까짓 생수 한병 가지고 대박이라고 하시면 안되죠. 제가 있는데.”    


갑작스런 여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두리번 거렸다. 창가에 보이는 커다란 침대 위에는 아슬아슬하게 속옷만 걸친 아름다운 금발의 백인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그 여성을 보고 소리쳤다.    



“누..누구세요?”

“저는 오늘 하루 이준님의 시중을 들게 된 마왕님의 시녀 헬레네 입니다. 그리스어로는 Ἑλένη, 영어로는 Helen 이라고 합니다.”

“시..시중이요?”

“네, 이준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속옷까지 벗을 기세인 여성을 보고 나는 다시 소리쳤다.    

  

“잠시만요!”

“네?”

“정말로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일단 옷을 입어주세요. 안 그러면 이 방에서 내보내겠습니다.”  

  

예상치 않은 답변이었는지 여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말했다.


“혹시 제가 궁금한 것을 대답해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아는 선까지는요.”

“마왕은 왜 원곡동에 카지노장을 운영하는 건가요? 그냥 재미인 건가요?”     


옷을 다 입은 여성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석가모니와의 전쟁에서 진 마왕님의 유일한 낙이 바로 이곳 카지노장입니다.”



“유일한 낙이요?”

“네, 마왕은 이승과 저승의 모든 사람들과 요괴, 도깨비, 심지어는 신들까지 이곳 카지노장을 방문하게 해서 도박에 빠지게 만들고 있지요. 도박을 이용해서 큰 빚을 지게 한 후 그들을 이곳 카지노의 영원한 노예로 만드는 게 마왕의 목표입니다.”      

“카지노의 노예요? 여기에 그런 분들이 많이 있나요?”

“그럼요. 아까 카지노 들어오실 때 천장에 날고 있던 금룡을 보셨죠?”

“봤습니다. 설마 그분들도?”

“네, 카지노에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서 노예가 되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네에?”

“심지어 극락에서 카지노에 놀러 온 영혼이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면 지옥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 사람이 빌린 돈을 값지 못하면 벌을 받는 형벌이 100년 단위로 늘어나게 됩니다. 아까 보셨던 카지노 천장에 있는 일곱분의 금룡과 같은 영물도 예외가 없지요.”

“생각보다 마왕이 너무 세속적인데요? 돈을 빌려주다니요.”  

   

“석가모니와의 전쟁에서 패한 마왕은 그 후, 세계 지배나 인류 멸망처럼 자신의 거창한 신념을 증명하거나 사상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닌, 단순하게 부와 현실 권력을 손에 넣고 오랫동안 생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였습니다, 가장 경제적인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에게 허락받은 카지노 영토를 확대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길 원하는 사악한 세속주의 지도자가 되기로 한 것이지요.”


놀란 나는 헬렌이라는 금발의 여성을 보며 말했다.  

    

“역시 이곳 카지노는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네요.”     


침대에서 일어서서 소파에 앉은 헬렌은 자신의 흰 손으로 나의 검은 왼손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저는 이 검은 손이 더 무서운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요괴와 귀신을 다스리는 마왕님의 왼손도 검은 손이거든요. 그 검은 손으로 저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시니까요. 저는 세속에 물든 카지노를 벗어나려고 그동안 수없이 노력했지만 마왕과 맺은 계약으로 인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왕의 왼손 역시 검은 손이라는 말을 들은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나의 검은 손을 바라보았다.  


띵동     


그 순간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나는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석이형과 마왕의 세 딸이 서 있었다. 석이형은 내 뒤에 있는 헬렌을 보더니 눈웃음을 치면서 특유의 능글능글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준이가 지금 재미를 보고 있는데 내가 방해를 한 건가?”

“아닙니다. 재미라니요.”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손사레를 쳤다. 석이형은 내 등을 툭 쳤다.      


“카지노에 왔는데 우리 신나게 춤이나 추고 게임 한판 하러 갈까?”

“춤과 게임이요? 어...잠시만요. 길동이 나오라고 할께요.”

“그놈은 그냥 냅둬, 지금 한창 재미를 보고 있거든. 우리끼리 게임하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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