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54화-마라 파피야스 ⑤ 원곡동 쌩닭집
우리는 원곡 카지노 지하에 있는 나이트 클럽으로 향했다. 석이형은 중앙의 홀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그 뒤를 마왕의 세 딸들이 사뿐사뿐 따라갔다.
"간만에 와서 그런가 몸이 예전처럼 잘 안 움직이네."
그곳에서 석이형과 마왕의 세 따님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찌나 다들 춤을 잘 추시는지 길동과 나는 현란한 춤사위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내 옆으로 온 석이형이 자신의 손에 있는 염주를 태산검 손잡이에 걸어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손을 내밀었다.
“춤 안 출 거면 염주랑 이거 받아. 위험할 때 염주 빼서 던져. 이 칩으로 게임 해.”
“감사합니다.”
나는 검은 왼손을 내밀었다. 검은 손 위에 석이형이 준 황금색 칩 하나가 반짝거렸다. 석이형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딱 한번만 슬롯머신을 돌리고 더 이상 하지 말게. 그럼 나는 먼저 내려가겠네,”
“저, 석가모니님.”
“응? 왜? 할 말 있어?”
나는 검은 왼손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아닌데? 뭔가 궁금한 게 있는 거 같은데?”
***
“죄송한데 제가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서요.”
”괜찮아. 걱정 안해도 되, 자네같이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 가장 간단한 게임인 슬롯머신을 하면 되지. 내가 한번 시범을 보여주지. 나를 따라오게.”
석이형과 마왕의 딸이라는 세 분의 여성은 슬롯머신이 있는 중앙의 게임홀로 입장했다. 게임홀에는 수많은 슬롯머신이 있었고, 모든 기계마다 사람과 요괴, 귀신과 신들이 앉아서 레버를 당기고 있었다. 석이형은 구석에 있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낡은 슬롯머신 기계를 가리켰다.
“우리 저 기계에서 한 번 땡겨볼까?”
석이형은 낡은 슬롯머신 기계앞에 앉아서 황금색의 칩 하나를 넣고 레버를 당겼다. 슬롯머신은 열심히 돌아가더니 과일과 숫자가 화면에 보였다.
“역시 꽝이군,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준이는 게임을 잘 모르니 여기서 한번 해 봐.”
석이형은 마왕의 세 딸들과 함께 다른 게임장으로 이동했다. 석이형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는 석이형에게 받은 황금색 칩을 슬롯머신에 넣고 레버를 당겼다. 전광판의 숫자와 과일표시판이 뱅글뱅글 열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내가 돌린 슬롯머신에서 음악이 나오더니 슬롯머신의 화면에 777 이 표시되었다. 그 순간 칩을 투입한 구멍 아래에서 금빛 칩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카지노 안의 모든 신들과 사람, 요괴, 귀신들이 내 주변으로 모이더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왕의 비서인 붉은 얼굴의 지배인이 나타나서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이 칩으로 계속해서 고객님의 운을 시험해 보는 게 어떨까요? 제가 다른 재미있는 게임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석이형이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슬롯머신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있는 황금 칩들을 제 계좌로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지배인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으나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우리 이준님은 황금 칩으로 무엇을 하실 건가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칩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세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이 사용하는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골드칩 하나가 1억의 가치가 있으니까 천억으로 환전이 가능합니다.”
“처..천억이요?”
“두 번째 옵션은 저희 카지노 지분으로 바꾸셔서 매년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자 기준으로 골드칩 1000개를 지분투자 하시면, 연간 투자 수익율 3%를 적용하여 매년 36개 골드칩을 배당해 돌려드립니다. 이 곳 원곡카지노는 세금이 없으니, 인간의 가치로는 매월 약 3억의 배당금을 받으시게 되겠죠? ”
“매월 3억이요? 어..그러면 마지막 옵션은 무엇인가요?”
“마지막은 들어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네? 왜요?”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래도 뭔지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붉은 얼굴의 지배인은 내 눈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옵션은 이 곳 카지노 전당포에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서 노역을 하고 있거나, 감옥에 있는 죄인들의 부채를 대신 갚아주실 수도 있습니다. 골드칩 100개당 한 명이지요. 그러면 열 명을 1000개의 골드칩과 바꾸실 수 있는데, 세 가지 옵션 중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놀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지배인은 한 마디를 더했다.
“저희 원곡 카지노는 신, 요괴, 동물, 귀신, 인간, 망자까지 모든 가치를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모두 1명당 골드칩 100개입니다. ”
그 순간 그동안 안보였던 길동이가 내 옆으로 오더니 말했다.
“형 잠시만요.”
***
우리는 슬롯머신 룸의 구석으로 이동했다.
“석이형이 너 스위트룸에서 재미보고 있다고 냅두라고 해서 나 혼자 내려왔어.”
“재미요? 재미는 베게가 봤지요.”
“응? 베게? 무슨 말이야?”
“석이형이 몰래 카지노 뒤져보라고 해서, 분신술로 호텔방의 베게를 저로 둔갑시키고 저는 연기로 변해서 구석구석 뒤져봤거든요, 형 방에 뭐 재밌는 거 있었어요?”
“아..아니. 아무것도 없어. 그나저나 뭐 좀 찾았어?”
길동은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종된 요괴차사 박도윤과 구미호 누나가 이 곳 지하 3층 감옥 312호실에 갇혀 있어요. 그동안 심하게 고문을 받아서 그런지 정신을 거의 차리지 못하고 있더라구요. 경계가 너무 삼엄해서 도저히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어요.”
놀란 나는 길동을 바라봤다.
***
잠시 후, 나는 마왕의 부하이자 카지노 지배인에게 돌아가서 물었다.
“지배인님, 혹시 말씀하신 옵션 중에서 마지막인 황금 칩을 영혼으로 바꾼다면 어떤 영혼과 바꾸는 건가요?
“그건 이준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대신, 정확하게 그 대상과 현재의 위치, 이름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하나라도 모르시면 교환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는 마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곳 카지노에 원곡동에서 온 전직 요괴차사와 구미호가 있는데, 저는 그러면 그 두명과 제 칩을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준님,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하시면 안 됩니다. 그분들의 카지노에서의 정확한 위치와 이름까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붉은 얼굴의 지배인은 시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치 내가 그 정보를 알 리 없을 거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곳 카지노에서의 정확한 위치와 이름을요?”
나는 다시 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는 마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왕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길동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곳 원곡 카지노 입구 천장에 있는 금룡(金龍) 일곱 분, 카지노 지하 3층 감옥 312호실에 갇혀 있는 요괴차사 박도윤과 구미호를 제가 방금 딴 1000개의 황금칩과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총 10명이라고 했으니, 마지막 1명은 혹시 아직 방에 있다면 9905호실에 있는 헬렌 양으로 하겠습니다. 그리스어로는 Ἑλένη, 영어로는 Helen 입니다.“
정확한 위치와 이름을 말하는 나를 보고 붉은 얼굴의 지배인은 깜짝 놀랐다. 저 멀리 마왕도 놀랐는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잠시 후, 나는 길동과 함께 박도윤과 구미호를 부축하면서 원곡 카지노를 나섰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둘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간신히 두 발을 이용해서 우리의 부축을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 카지노에서 막 풀려나서 자유의 몸이 된 금룡(金龍)들이 카지노 천장에서 하늘로 자유의 몸이 되어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붉은 얼굴의 지배인은 카지노의 직원들과 함께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도윤과 구미호는 안되겠습니다. 대신에 1000개의 칩은 현금 천억으로 교환해 드리고, 카지노 천장의 금룡과 헬렌양은 아무 조건 없이 풀어드리겠습니다.”
길동은 당황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지배인의 붉은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이러시면 곤란한데”
나는 태산검 위에 달린 석가모니님의 염주를 빼서 두억시니에게 던졌다. 염주는 크게 커지더니 카지노 지배인과 수하들을 순식간에 묶어버렸다.
지배인이 염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사이, 나와 길동은 박도윤과 구미호를 부축하면서 카지노 정문을 나왔다. 마왕이 일어나더니 자신의 검은 왼손을 우리를 향해 내밀었다.
카지노 정문을 나온 우리 앞에는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뱀과 개, 멧돼지, 닭과 같은 수많은 괴물 짐승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앞에 선 길동을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어 길동의 목과 팔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길동의 팔다리가 사정없이 찢겨지고 몸에서 쏟아지는 피로 카지노 현관 바닥이 물드는 찰나, 내 뒤에서 구미호를 업고 있는 진짜 길동이 이야기했다.
“형 이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반대방향으로 뛰어가자 이번에는 카지노 바닥에서 태곳적 모습의 검은 요괴들이 그그그극 소리를 내면서 기어 나오더니 우리를 에워 쌌다. 기괴한 모습의 요괴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창과 같은 긴 혀로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태산검으로 그들의 검은 사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르는 족족 검은 요괴들의 팔과 다리는 즉시 재생되었다. 길동의 도술로도 그들을 처리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구미호를 업고 싸우는 길동도 지쳐가고 있는 것을 본 나는 그들을 향해 검은 왼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나의 두 눈동자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귀는 뾰족한 귀로 변했고, 등 뒤에서는 커다란 검은 날개가 순식간에 돋아났다. 검은 왼손의 손톱도 길게 돋아났다. 나의 변한 모습을 본 길동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요괴들을 뒤덮고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마치 귤의 껍데기처럼 후두둑 벗겨지더니 나의 검은 왼손으로 흡수되었다. 우리를 위협하던 태곳적 모습의 검은 요괴들은 원곡동에 거주하는 일반 요괴들과 같은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들은 두리번거리더니 넙죽 인사를 한 후, 반대 방향으로 뛰어 사라졌다. 이를 본 길동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길동, 이쪽으로 가자.”
우리는 도윤과 구미호를 부축한 채 카지노 정문 앞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순간 저 멀리 보였던 마왕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더니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를 압도하는 마왕의 거대한 위압감에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서 있었다. 마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 빨갑 장갑을 벗었다. 마왕의 장갑을 벗으니 나와 같은 주변의 모든 빛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검은 왼손이 나타났다. 마왕이 자신의 손을 들면서 말했다.
“너는 아비인 나 마왕과 요괴의 왕이었던 어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길동은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마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마왕의 옆을 지나쳐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왕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나의 검은 왼쪽 어깨를 툭 하고 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석이형의 원곡사 승합차가 보였다. 석이형이 운전석에서 손을 흔들자 저 멀리 지배인의 몸을 묶은 커다란 염주가 풀리면서 작아진 후, 석이형의 손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야. 다들 고생 많았어. 얼른 집에 가자고.”
승합차 문이 열리면서 마왕의 딸인 비구니 세 분이 차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이쪽이요.”
나와 길동은 박도윤과 구미호를 부축해서 차에 탔다. 석이형이 운전하는 승합차가 카지노 주차장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염주에서 풀려난 두억시니가 말했다.
“석가모니처럼 이성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요괴와 귀신을 다스리는 반귀반요(半鬼半妖) 능력은 꽤나 쓸만합니다. 아직 각성하지는 않았지만 동물을 다스리는 능력도 뛰어나 보입니다. 아드님의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마왕님,”
“요괴의 왕이었던 어미와 요괴 차사였던 아비가, 생각보다 내 아들 준이를 아주 훌륭하게 잘 키웠군, 인간의 마음이야 변하게 되어 있지. 아직 1차 각성이니 마왕의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여러 번의 각성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아들은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이야. 석가모니와 옥황상제를 굴복시킨 후, 천계와 마계, 요계, 인간계, 지옥계로 이루어진 5가지 세상인 오계를 모두 정복하는 최초의 신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될 것이옵니다."
마왕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마왕의 검은 왼손에서 칡흙같이 어두운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원곡 카지노를 검게 물들였다.
***
도윤은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미호가 같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미호의 침대 옆에서 고문으로 피폐해진 미호의 손을 잡아줬다. 미호도 간신히 눈을 떠서 도윤을 바라보았다.
병실의 문을 열고 이준이 들어왔다. 이준의 검은 왼손을 보는 순간, 도윤은 원곡 카지노에서 빠져나올 당시 자신을 부축해서 나온 사람이 검은 왼손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준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저희들은 마라 파피야스의 끔찍한 고문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제가 아니라 석가모니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 아니라 원곡동 쌩닭집에서 일하는 이준입니다. 혹시 닭고기와 계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이준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서 도윤에게 들이밀었다. 놀란 도윤이 명함을 바라보자 이준이 미호를 보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원곡동 쌩닭집은 배달도 됩니다, 닭 말고도 입맛이 까다로우신 신들은 물론, 요괴와 귀신님들을 위한 당나귀를 기본으로 염소와 양, 멧돼지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고기도 취급합니다. “
“원곡동 생닭집이요?”
도윤이 놀란 눈으로 이준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준은 강한 어조로 답변했다.
(원곡동 쌩닭집 - 시즌1) - 2부 마지막까지 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원곡동 쌩닭집]의 별도 에피소드인 [원곡시장 상인들(Episode-1) 매운맛 챌린지] 편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ongok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