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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51 공신당의 사서(社鼠)

[소설] 원곡동 쌩닭집-51화-마라 파피야스 ② 사서(社鼠)

그 순간 매표소의 둥그런 구멍으로 기다란 뱀 같은 혀가 튀어나왔다. 나는 순식간에 검을 꺼내서 안에서 튀어나온 혀를 잘랐다.     


꺄아아아악!     


달이 누나가 잘린 혀를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매표소 구멍 밖에는 내가 방금 자른 기다란 혓바닥 하나가 있었다. 혓바닥은 뱀의 혀와 같은 길고 두꺼운 모양이었다.      


“요괴가 이런 데 숨어서 인간처럼 표를 팔고 있었네요? 그러니 그동안 못 찾았죠.”     


잘린 기다란 혀는 마치 잉어처럼 팔딱팔딱 뛰더니, 이내 먼지가 되어서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달이 누나는 매표소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기 아무도 없어.”

“제가 혀를 뿌리까지 잘라서 요괴가 소멸했을 거예요. 옆 매표소에서 표 끊고 들어갈까요?”      


나는 옆의 매표소로 가서 종묘 입장권 두 장을 구입했다. 달이 누나는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 한 장 건네줬다.      


“그나저나, 손에 묻은 끈적거리는 거 좀 닦아.”     


나는 손을 닦으면서 종묘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우리 말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약 30분 뒤]     



“여기는 하나도 안 변했네, 500년 전이랑 똑같다.”     


달이누나가 종묘를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누나는 500년 전에 여기 와보신 적 있으세요?”


“저기 사거리 인근이 조선시대 때 얼음 동동 띄운 콩국수 파는,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었지. 사람 억수로 많고 여름에 먹는 콩국수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조선시대 여름에도 얼음을 띄운 콩국수를 팔았다니 놀랍네요. 오늘따라 해가 일찍 지는데요?”     

 

어느덧 종묘 안이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     


멀리서 낡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키는 160cm 정도에 매우 깡마른 체격이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땅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한 긴 황토색 버버리코트를 입고 있었고 어깨가 구부정했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터벅터벅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남자가 지나가자마자 달이 누나는 갑자기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서 이상한 냄새나지 않아? 썩은 냄새?”     


누나는 방금 앞으로 지나간 아저씨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몰래 따라가 볼까요.”      


기다란 손톱의 구부정한 남자는 어둑어둑해진 종묘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동쪽의 ‘공신당(功臣堂)’ 간판이 있는 건물 앞에서 두리번거리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열고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저 구부정한 남자가 지금 공신당으로 들어갔어. 공신당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당인데 왜 그쪽으로 갔을까?”      

“둘 중의 하나겠죠, 진짜 공신의 영혼이거나, 아니면 임금 옆에서 알랑거리면서 나쁜 짓을 하던 간신배 사서(社鼠)였거나. 우리가 찾던 요괴 같은데요?”     

“몰래 따라 들어가 볼까? 아까 네가 한 놈을 처리했으니, 이제 두 놈 남았는데 나머지도 이 근처에 같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남자를 따라서 몰래 공신당 건물로 향했다. 나는 달이누나를 보면서 말했다.   

   

“공신당 안으로 들어간 남자가 뭐 하는지 볼까요?”      


나는 문틈으로 얼굴을 바짝 밀착시킨 후 건물 안을 쳐다봤다. 공신당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양팔을 벌려 하늘을 쳐다봤다.    

  

“남자의 가슴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듯이 살이 움직이고 있어요. 징그럽네요.”  

   

갑자기 시커멓고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남자의 가슴을 파고 나오더니, 방 안을 두리번거린 후 내가 보고 있는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구멍으로 나오기 위해서 크게 뛰어오른 쥐의 머리가 구멍을 통과하고 커다란 쥐의 노란 눈동자가 좌우로 깜빡였다. 이미 몸의 반 정도가 구멍으로 나온 쥐는 앞발을 이용해서 구멍을 넓히고 빠져나오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나는 칼로 구멍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쥐의 머리를 잘랐다. 구멍에 끼어있던 쥐는 발버둥 치더니 서서히 먼지가 되어 이내 사라졌다.   

   

나는 공신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공신당 안은 어림잡아 수천 마리도 넘어 보이는 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옷을 벗었던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검은 쥐들의 노란 눈동자가 아래위가 아닌, 좌우로 깜빡했다. 공신당 안은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누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이건 안 되겠어요, 일단 공터 쪽으로 가요. ”  

 

우리는 종묘의 정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어가면서 중간중간 뒤돌아서서 앞에 뛰어오는 쥐들을 처리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종묘 한가운데 서 있는 나와 달이누나 주변을 천여 마리의 검은 쥐떼가 둘러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철이 누님이 나의 봉인된 힘을 풀어주면서 하신 말을 생각했다.


“나는 일단 봉인된 힘을 풀어주는 것만 도와주는 거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자네들 손에 달렸다네. 힘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없을 거니까. 내가 봉인 해제해 준 그 힘을 올바른 데 쓸 수 있겠지?”     


나는 검은 왼손을 쥐떼를 향해서 들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나의 왼손에서 어둠보다 더 검은빛이 쏟아져 쥐들을 막고 있었다. 쥐들은 검은빛에 가로막혀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천여 마리의 쥐들은 다시 합쳐지더니 사람만큼 거대한 두 마리의 쥐로 변했다. 남자와 여자의 형상으로 변한 그들의 온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쥐머리들이 꿈틀거리고,  노란 눈은 계속해서 좌우로 깜박였다. 남녀의 벌거벗은 몸에서 수백 마리 쥐의 머리와 노란 눈이 깜빡이니 기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왼손의 검은빛을 남자 형상을 한 쥐로 향했다. 남성 모양의 온몸에서 깜빡이는 쥐의 노란 눈과 수많은 머리들이 화르르륵 불타기 시작했다. 나머지 여성 모양의 한 명은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칼을 뽑아 들고 불에 타서 움직이지 못하고 버둥대는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단칼에 거대한 목을 날렸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지난 OJT 기간 동안 단련되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내 몸이었다. 내 칼에 의해서 날아간 목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바닥에 떨어져 내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목이 잘린 남성의 목은 불에 타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마라 파피야스와 요괴감옥, 원곡 카지노의 진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너희는..우리를 벌할..자격이..없다.”   


나는 불타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순간, 도망갔던 나머지 하나가 거대한 쥐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달이 누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뛰어가서 칼로 쥐의 머리를 내리쳐서 몸통과 머리를 분리했다. 그렇지만 쥐의 머리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면서 계속해서 달이 누나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검은 왼손으로 쥐 머리를 잡아 던졌다. 바닥에 던져진 커다란 쥐 머리는 이내 연기가 되어 없어져 버렸다.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쥐의 커다란 몸통이 터져버렸고 나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뜨자 기절한 달이 누나와 함께 검은 왼손이 보였다. 나의 검은 왼손은 서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직 수많은 쥐들이 우리가 힘이 빠지면 달려들기 위해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끝인가? 나는 그동안 긴 꿈을 꾸고 있었던가? 이제 눈을 뜨면 나의 보잘것없었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인가? 원곡동에서 만난 달이누나도 아저씨도 모두 그저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허황된 꿈이었던 것일까?’     


움직일 수 없던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나의 검은 왼손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나오더니 주변의 모든 쥐들을 덮어버렸다. 나의 왼손에서 나온 검은 그림자는 주변의 쥐들을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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