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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49 드래곤과 역린(逆鱗)

[소설] 원곡동 쌩닭집-49화-아랄해 투어 ⑩역린(逆鱗)


“와!!!! [전래동화 월드]에서 88열차를 타는 아이들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내가 감탄을 하자 용이형이 나를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우리 준이는 용을 처음 타보는구나?”

“네, 처음 타봅니다.”

“음... 어머님의 비밀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그럴 수 있겠군,”     


내 뒤에 있던 길동이가 용이형에게 물었다.      


“형님, 허리도 안 좋으신데 저희까지 이렇게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편하게 말해 보게.”

“영화나 TV에 나오는 용은 도마뱀처럼 생겨서 날개가 있고 입에서는 불을 뿜어대던데, 그런 용도 진짜 있는 건가요?”

“드래곤 말하는 거지? 있지.”

“정말요?”


“저쪽 서역 너머로 그런 드래곤들이 많이 살았었지. 태고의 전쟁 당시, 드래곤을 만들기 위해서 서역인들이 이상한 실험을 많이 했다네.”

“실험이요? 드래곤을 만들었다고요?”


“서역인들 중에서 아스클레피오스(그리스어: Ἀσκληπιός, 라틴어: Aesculapius) 라고 하는 자가 오래전에 우리 용의 새끼를 몰래 훔쳐서 생체실험을 해서 만든 게 그들의 드래곤이지."

"생체실험이요?"

"다른말로 하면 외과수술이지. 성형수술이 더 맞을려나? 암튼, 서역에서 외과수술을 처음으로 한 이가 바로 그 아스클레피오스 일세. 그놈이 바로 그리스 의술의 신이자 아폴론의 아들이지. 동양은 자네도 알다시피 신의(神醫)라고도 불리는 화타가 처음으로 외과 수술을 했지 아마?"

"아..."

"인간에게 치명적인 불을 뿜게 하기 위해서 몸통을 크게 만들어 위에 역청과 기름을 저장했고, 그로 인해 거대해진 몸통으로 하늘을 날게 하기 위해서 더욱더 커다란 날개를 만들어 억지로 붙였고...아무튼 아스클레피오스 그놈이 우리 용족을 대상으로 잔인한 짓을 많이 했다네.”



“그러면 형님은 서역의 드래곤처럼 입에서 불이 나가지는 않는 건가요?”

“우리들은 입에서 불을 내뿜는 그런 유치한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네.”     


“길동아, 모든 용님들은 아까 준이 오빠처럼 하늘의 날씨를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어. 우리 용이 오빠는 입에서 불을 내뿜는 유치한 동물 수준의 서역 드래곤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신 신적 존재지.”     


***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용이형의 비늘을 꼭 잡고 있었다. 용의 비늘은 물고기나 뱀의 비늘과는 달리 금빛과 은빛이 합쳐진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고, 비단결 같은 부드러운 털로 뒤덮여 있어서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털을 손으로 꼬옥 움켜쥐자 용이형이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준, 그 위에 있는 비늘은 건드리지 말게나.”

“네?”     


내가 잡고 있는 곳의 바로 위를 보니 신기하게도 하나의 비늘이 반대의 방향으로 되어 있었다. 내 주머니 속의 달이 누나가 보더니 말했다.      


“우리 용이 오빠의 비늘은 모두 81개인데 그중 방향이 반대로 된 비늘이 하나 있어. 역린(逆鱗)이라고 들어봤지?”

“아. 영화 같은 데서 들어본 거 같아요. ‘임금이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노하게 만드는 문제'를 역린이라고 한 거 같아요.”

“맞아. 거꾸로 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오빠가 크게 화를 낼 거야. 그러니 그거 건드리지 않게 조심해.”     


우리 이야기를 듣던 용이형이 이야기했다.      


“그곳 역린은 우리 용들의 급소이기도 하지. 서역의 드래곤 역시 마찬가지라네. 서역의 드래곤은 그곳에 역청과 기름을 넣는 구멍이 있어서 잘못 건드리면 터지거든.”     


“급소요? 아, 주의하겠습니다.”      


어느덧 저 아래에 남해 바닷가가 보였고 바다를 끼고 있는 커다란 해동용궁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길동이 아래에 보이는 해동용궁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     


용이형은 해동용궁사 옆 바다에 우리를 내려준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나는 다시 우즈베키스탄 공항으로 돌아가서 용왕님의 비행기 가지고 돌아와야지. 어이, 자네들. 인연이 있으면 우리 다시 보자고.”


할아버지와 철갑상어 가족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용이형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닙니다. 모두 다 용왕님과 용신님께서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철이 누님께서도 조만간 이곳을 방문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해동용궁사 옆의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커다란 철갑상어로 변한 후, 유유히 저 먼바다로 사라졌다.     


“이제 철이 누님이 주신 이 철갑상어 알들을 이곳 바다에 풀어볼까요?”   


나는 주머니에서 철이 누님이 준 둥그런 은빛 상자를 꺼내 열었다. 안에 있는 내 주먹만 한 철갑상어의 불투명한 알 안에서 새끼 철갑상어 두 마리가 꿈틀대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달이 누나와 길동이가 얼른 알을 바다에 풀어놓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케이스에서 꺼낸 알을 해동용궁사 앞바다에 넣었다.   


잠시 후,


알에서 철갑상어 새끼 두 마리가 깨어나더니, 내 손에 붙어서 마치 강아지가 냄새를 맡듯이 작은 입으로 계속해서 손을 터치했다.



그리고는 얕은 바닷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새끼 철갑상어는 먼바다로 헤엄쳐 나아가더니 시야에서 이내 사라졌다. 새끼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어린 새끼들인데 괜찮을까요?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거 아닐까 걱정되네요?”     

“글세.. 준이가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달이 누나가 저 멀리 새끼 철갑상어가 사라진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잠시 후, 약 10미터는 되어 보일 거대한 철갑상어 두 마리가 바다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더니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네요. 저 정도 크기면 쟤네들이 상어도 잡아먹겠네요.”    


길동이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형, 덕분에 용왕님께서 부탁하신 업무를 차질 없이 잘 해결한 거 같아요. 저와 같이 아랄해를 같이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근데 너는 여기서 용궁에 어떻게 갈려고? 헤엄쳐서 가니?”     


***     


길동이는 아무 말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순간 세찬 돌풍이 불더니 길동의 몸을 한 바퀴 휘감았다. 길동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구름 타구요.”

“뭐라고?”     


길동의 주변에서 생겨난 바람은 구름의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길동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가볍게 구름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솜사탕 같은 구름 위에 길동이가 서 있었다.     


“준이형, 달이누나, 어제 철이 누님이 말한 것처럼 저 이제 도술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순간 달이 누나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두 어깨를 올려서 나에게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전 동물과 요괴를 다스리는 능력 따위 없습니다. 그나저나 길동아, 도술 능력을 다시 찾은 거 축하해.”


“축하는요, 저 대신에 요괴감옥에 계시는 심 씨 할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저의 이 힘을 용왕님과 사모님을 위해서만 사용할 생각입니다. 형, 누나, 그러면 저 먼저 용궁으로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봬요. 전화드릴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고.”     


길동이 탄 구름은 하늘로 올라가더니 바닷가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달이 누나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구름 못 타는 우리는 KTX 타고 가야겠는데?”

“그러게요. 근데 누나, 지금 배고프지 않으세요? 여기서 부산밀면 한 그릇 먹고 출발하는 거 어때요?”

“콜. 그런데 너는 진짜 아직 아무것도 없는 거야?”

“네? 아무것도 없다니요? 뭐가요?”


“철이 언니가 봉인 해제를 해 준, 그 동물과 요괴를 다스린다는 힘 말이야. 막 엄청난 요괴의 힘이 너의 검은 왼손에서 막 나오는 거 같고 그런 거는 없니?”


“아이고, 없습니다, 제가 무슨 동물과 요괴를 다스려요. 요괴들에게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우리 부산밀면이나 먹으러 가요. 맛있게 하는데 알아요.”     



***     


일주일 후,  


띠링     


원곡쌩닭집에서 아저씨와 함께 닭을 가공하고 있는데 히잡을 쓴 여성 세 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바라보니 철이 누님이었다. 뒤로는 20대 여성분 두 명도 같이 보였다. 나는 장갑을 벗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잘 지냈지? 내 오랜 친구 용왕도 만나고 우리 애들도 볼 겸 해서 어제 왔지. 어, 자네 오랜만인데?”

“안녕하세요, 철이 누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죠?”     


철이 누님은 아저씨를 향해서 반갑게 인사했다. 아저씨도 웃으면서 누님과 악수를 했다. 놀란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 두 분 아시는 사이세요?”

“알다마다. 예전에 내가 누님에게 아주 혼쭐이 난 적이 있었지. 내가 요괴 차사로 일을 했던 20대였을 때니까 한 삼십 년 전이었나?”

“아저씨가 우즈베키스탄 아랄해를 가셨었어요?”

“요괴 중 하나가 그곳 아랄해 인근으로 도망간 바람에 잡기 위해서 아버님이랑 같이 갔는데, 사막 아래에 있던 철이 누님을 그 요괴인 줄 착각하고 싸웠지. 그날 아버님하고 내가 아주 그냥 죽는 줄 알았다.”     

“그때 내가 두 청년에게 요괴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주었지.”

“요괴의 진실이요?”

“모든 요괴가 나쁘지는 않다는 진실 말이야. 착한 요괴의 왕이었던 너희 엄마 같은 생명체를 요괴 차사들의 마구 죽이면 안 되잖아?”

“아, 그렇죠,”  


***     


“누님 그런데 뒤의 아가씨 두 분은 누구예요?”     


아저씨는 철이 누나의 뒤에 서 있는 이국적인 느낌의 두 명의 귀여운 20대 여성을 가리켰다. 히잡을 벗자 동그란 얼굴과 보라색과 금발의 머리색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내 딸들이지. 얘들아 인사해라.”

“따님이요?”     


꽤나 미인인 두 여성은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오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보라색 머리의 여성분이 내 오른손을 잡고 코에 대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나머지 금발 여성분은 내 왼손에 자신의 입술을 대려 하였다. 그녀의 입술이 내 손바닥에 닿기 직전, 당황한 내가 황급히 왼손을 뺐다. 둘은 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냄새를 보니 역시 준이 오빠구나, 그때 고마웠습니다.”

“어? 저를 아세요?”  


순간 해동용궁사 앞바다에서 알에서 깨어난 철갑상어 새끼 두 마리가 내 손에 붙어서 강아지가 냄새를 맡듯이 작은 입으로 손을 터치했던 것을 기억했다.


“엇? 두 분은 그러면 그때 해동용궁사 바다 앞에서 알에서 깨어난?”   


두 여성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누님은 그 사이 장성한 두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이곳 원곡동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 예정이네.”


“네? 바다에서 사는 게 아니고요?”

“변화하는 세상에서 적응하면서 살려면 그 세상을 이해해야 하니.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네. 이곳 원곡동에서 인간들과 신, 요괴, 귀신, 도깨비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을 이해해 보라고 말이야.”


첫째로 보이는 보라색 머리의 여성이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저희 여기 원곡시장에 가게 오픈하려고요.”

“가게요? 어떤?”     


“배달 전문 치킨집이요. 배달은 이곳에 거주하시는 요괴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로 하셨어요. 원재료는 원곡 쌩닭집에서 저렴하게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시죠?”


“요괴들이 배달을 한다고요?”


“네, 저희 벌써 가게 이름도 정했어요. [원곡 요괴 치킨집]. 줄여서 요괴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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