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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9. 2024

#48 아야즈 칼라(Ayaz Kala)

[소설] 원곡동 쌩닭집-48화-아랄해 투어 ⑨버려진 고대요새

“나는 일단 봉인된 힘을 풀어주는 것만 도와주는 거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네들 손에 달렸다네. 힘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없을 거니까. 내가 봉인 해제해 준 그 힘을 올바른 데 쓸 수 있겠지?”    

 

나와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누님은 손에 낀 작은 반지를 빼더니 이를 용이형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반지의 주인을 자네가 꼭 찾아주었으면 하네.”

“누님, 이 반지는 고대 생물을 다스리는 반지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용왕님께 직접 이 반지를 드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용이형은 철이 누나에게 반지를 받으면서 놀란 눈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내가 권유했었지만 그 친구가 거부했지. 이제 자네가 주인을 찾아 주게나. 나도 이제는 그 반지를 끼고 있는 것만 해도 힘이 부친다네.”      


철이 누님이 나와 길동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한데, 염치없게 자네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더 있는데. 내 욕심일까?”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저희는 누님을 도우러 온 건데요.”      

“고맙네. 다름이 아니라 아랄해를 탈출한 마지막 철갑상어 가족이 이곳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다가 잊힌 고대 요새에 숨어 지낸다는 말을 들었네, 내 마지막 소원은 그들을 바다로 데려가 진정한 자유를 주는 거라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철갑상어 가족분들을 그러면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그거는 나도... 잊힌 고대 요새라는 말만 들었네.”     


그 순간 옆에서 우리말을 듣던 핫산이 길동을 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며칠 전 내가 사라고 한 학가위. 가죽지갑 지도, 사막에서 길 잃고 헤매는 사람들 위치 알려줘요.”


핫산의 말을 들은 길동은 학가위를 꺼내더니 학가위를 감싼 가죽을 잘라서 크게 펼쳤다. 학가위 가죽 안쪽에는 검은 바탕에 하얀 펜으로 그린 손지도가 있었다. 검은 지도에는 사막 위에 흩어진 고대 요새들인 칼라들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상단에 위치한 아야즈 칼라(Ayaz Kala)라는 곳에 커다랗게 X표가 되어 있었다.


이를 본 핫산이 우리를 돌아보면서 이야기했다.              


“여기 아야즈 칼라. 나 어딘지 잘 알아요, 여기서 4시간 거리, 내일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요.”     


***     


우리 모두 각자의 숙소로 들어가서 쉬기 시작했다. 유르트의 스티로폼 침대에 누워 한참이나 천장의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달이 누나가 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철이 누님이 의자에 앉아서 저 멀리 보이는, 이제는 말라서 물이 거의 남지 않은 아랄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철이누님 옆으로 가서 말했다.      



"혹시 제가 방해될까요?”

“무슨, 괜찮아. 이쪽에 와서 앉아요."


나는 철이 누나 옆에 앉아 아랄해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 제가 있는 광활한 사막이 50년 전만 해도 물이 가득했고 수많은 생명체가 살았다는 것을 아직 믿을 수가 없어요."

"당사자인 나도 아직 안 믿긴다네."

"여기를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어제 용이형과 같은 용신님들이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 만으로는 여기에 물을 채우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다른 나라들이 도와준다면 이 방법이 최선이지 않을까요?"

"어떤 방법?"


나는 나무 막대기를 들어서 바닥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흑해, 카스피해, 그 옆에 말라버린 아랄해를 그렸다.     


"지구 온난화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같은 곳은 오히려 바닷물에 잠기고 있으니, 그걸 역이용하는 거죠. 투발루 같은 섬나라는 곧 바다에 잠겨서 나라가 없어진다고도 하니까요. "

"바닷물이 넘쳐나는 나라들의 물을 이곳으로 직접 끌고온다?"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 같고, 이 방법은 가능할 거 같아요."


나는 막대기로 흑해, 카스피해를 잇는 운하를, 그리고 카스피해와 그 옆에 말라버린 아랄해를 잇는 운하를 그렸다.

 


"이렇게 해서 카스피해의 물을 아랄해로, 흑해의 물을 카스피해로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고 물을 옮기면 되지 않을까요? 운하가 만들어지면 이곳에 다시 물이 차고 주변에는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이중내륙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이 곳 중앙아시아의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거고,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이렇게 운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거든요. 혹시 바닷물의 염도가 문제가 된다면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같이 이용해서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서 공급하면 되니까요."     


철이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었다.      


"안 그래도 인간들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아.... 그렇군요, "     


"그런데. 쉽지는 않아. 정답은 있지만 여전히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그 답으로 못 가고 있지."      

"정답이 있지만 정답으로 못 간다니요?"     


"서로 얽힌 첨예한 경제논리 때문에 쉽게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다네. 흑해(지중해)-카스피해-아랄해 운하 건설을 통해 아랄해와 중앙아시아 경제를 살린다는 이야기를 각국의 인간 지도자들이 모여서 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지.


"운하를 만드는 비용 때문일까요?"     


"단순한 비용문제라면 쉬운 문제지. 그것보다는 운하가 통과할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지. 또한, 말라붙은 아랄해에 카스피해가 다량의 물을 공급했다가는 오히려 카스피해의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곳의 나라들도 적극적으로 협의하지 않고 있고, 이처럼 여러 변수들이 있지만 두고 봐야지."


"역시 환경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군요."


"환경을 지키는 비용이 나중에 문제가 터져서 복구하는 비용보다 저렴한데, 인간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


"그렇군요."


갑자기 철이 누나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어때? 이제 자네의 검은 왼손에 봉인된 힘을 느낄 수 있겠어?”

“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조금만 더 알려줄게. 이거 가지고 테스트해 볼래?”

“테스트요? 어떤 걸로요?”     


철이누나는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는 죽은 지 한참 돼서 거의 뼈와 가죽만 남도록 말라버린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꼬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리도 몇 개가 떨어진 상태였다. 나는 도마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죽은 도마뱀으로 테스트를 한다고요?”

“처음이니까. 작은 걸로 해보자고. 뭐랄까, 자네의 기를 전한다는 느낌으로 왼손에서 이 불쌍한 놈에게 손을 뻗어 봐.”     


나는 얼떨결에 철이 누나가 하라는 대로 왼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내 손끝에서 작은 검은 그림자가 도마뱀을 향해 움직였다. 갑자기 도마뱀의 꼬리가 있던 곳에서 검은 꼬리가 나오고, 떨어진 다리도 검은 다리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마뱀의 눈동자가 떠지더니 꿈틀대면서 움직이고 이내 반대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사.. 살아났어요.”

“살아났다기보다는 자네가 도마뱀의 사체를 요괴로 만든 거지. 사체를 움직이게 했으니 이제 그 생명력을 빼앗아 올 줄도 알아야겠지? 이번에는 자네가 줬던 기를 빼앗아온다는 느낌으로 저놈을 향해 손을 내밀어 봐.”


나는 검은 왼손을 도망가는 도마뱀을 향해서 내밀었다. 그 순간 도마뱀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내 왼손으로 흡수됐다.



도마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놀란 내가 도마뱀이 있던 곳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 봤던 죽은 지 한참 돼서 말라버린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놀란 나는 철이누나를 바라봤다.    

  

“잘했어, 내가 입구까지 안내했으니, 그 이상 들어가는 건 자네 몫이지. 밤이 늦었네. 이제 푹 쉬고 내일 보자고.”     


***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는 핫산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 철이 아주머니는 우리를 한 명 한 명 안아주었다. 누나는 마지막으로 달이 누나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모두들 이 먼 곳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네. 내가 조만간 오랜 친구를 보러 용궁으로 갈 거라고 꼭 전해 주게.”

“우리 꼭 조만간 다시 만나요. 언니.”     


달이 누나는 눈물이 글썽해진 채로 차를 탄 후,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탄 차는 철이 누나를 뒤로한 채 캠프를 벗어나 사막 위의 버려진 요새인 아야즈칼라로 향했다.      


***   

 

약 4시간 정도 사막 위를 한참 달리자 저 멀리 언덕 위에 거대한 고대요새인 아야즈칼라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용이형이 아야즈 칼라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보이는 아야즈칼라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까지 이곳에 존재했던 쿠샨왕조 시대의 요새라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된 상태지. 한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했던 전략적인 군사 요충지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 상단이 머무는 중요한 상업의 도시이기도 했지. 저 무너진 폐허에 아랄해에서 피난을 떠난 철갑상어 가족들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 지내고 있었다니.”


차에서 내린 우리는 아야즈칼라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야즈 칼라 위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살았던 거대한 흔적들이 눈에 보였다. 그 후로 약 두 시간 정도 거대한 아야즈칼라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런 생명체의 흔적이 없었다. 어느덧 해는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지친 우리는 아야즈 칼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용이 형님이 이곳에 다시 비를 내리게 하면 혹시 철이 누님처럼 그분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요?”     

“글세. 이 아야즈 칼라의 바닥에는 어제 아랄해의 바닥과는 달리 아무 생명체의 흔적이 없어 보이는데?”

     

땅바닥에 손을 대고 있던 용이형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라버린 아야즈 칼라 전체가 충분히 적실 수 있게 비를 내리게 했다. 아야즈 칼라에 10분 정도 비가 내렸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요새에서는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 이미 돌아가신 게 아닐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달이 누나가 말했다. 길동도 한숨을 쉬더니 아야즈 칼라 저 너머를 바라봤다. 길동은 멀리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저 멀리 이곳 원주민의 천막과 낙타가 보이는데 가서 물어볼까요?”    

 

***     


우리는 아야즈 칼라를 내려와서 인근에 보이는 원주민의 게르로 향했다. 약 열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사는 게르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어른이 나오더니 우즈베크 말로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외국인들을 처음 보는지 게르 안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어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핫산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이곳 언어로 이야기를 하더니 우리 쪽으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사라졌대요. 그곳의 사람들, 아주 오래전에. 모른대요.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낙담한 우리 옆으로 연장자 할아버지가 천천히 다가오셨다. 할아버지는 용이형이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면서 무언가 말했다.      


Bu uzukni kim berdi?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는 거지?”

“이 반지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는데요?”     


핫산의 번역을 들은 용이형은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노인에게 보여줬다. 노인은 반지를 한참 쳐다보더니 놀란 눈으로 용이형을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르릉

쿠카콰콰쾅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번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용이형은 거대한 청룡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우리의 눈앞에는 길이가 수십 미터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청룡으로 변한 용이형이 노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한참 동안 청룡을 올려다보더니 뒤에 숨어서 우리를 보고 있는 열 명의 가족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할아버지는 용이형을 보면서 말했다.     


“용신님께서 저희를 잊지 않으시고 이 먼 사막까지 찾으러 와 주셨군요,”

“영원한 생명의 어머님인 철이 누님이 반드시 자네들을 찾아서 저 멀리 용궁이 있는 바다로 데려다주라고 부탁하셨네. 그동안 다들 고생 많았네. 자, 내 등에 올라타게나. 이제 다들 고향으로 가야지?”  

   

노인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아랄 사막을 탈출하셨습니까?”

“아랄 사막에 비가 내려서 누님도 인간으로 변신하셨으니 곧 만날 수 있을 걸세.”

“정말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신님.”     


할아버지는 용이형에게 인사를 한 후, 가족들과 함께 청룡의 등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모두 다 올라타자 용이형은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너희들도 타야지, 비행기 조종사가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려고?”

“형님, 허리 안 좋다 하지 않으셨어요?”     


길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용이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아 참, 거기 핫산.”     


자신의 눈앞에 거대한 용이 나타난 것을 보고 놀란 핫산이 아무 말을 못 하다가 용이형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때문에 그동안 고생 많았네. 자네 덕분에 철이 누님도 찾고 이분들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어. 이 할아범이 자신들이 키우던 저기 보이는 낙타 100여 마리를 핫산 자네에게 준다 하는군, 잘 보살펴줄 거 같다고. 그럼 부탁하네.”     


용이형의 부탁들 들은 핫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 안 좋은 우리 용이 오빠의 무거운 짐을 나라도 좀 덜어줘야지.”    

  

달이 누나는 순식간에 달걀로 변하더니 내 주머니 속으로 쏘옥 들어왔다.  


“준아. 우리 용이오빠 등 맨 앞에 타자.”   

  

나와 달이 누나는 청룡의 맨 앞에 탔고 길동이 그 뒤를 탔다. 이곳에 있던 철갑상어 가족들이 그 뒤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럼 가 보자고.”     


우리는 핫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웠어요 핫산님.”     


손을 흔드는 핫산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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