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7화-아랄해 투어 ⑧철이누님의 소원
우리는 같이 차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빵빵 ~ 부우우웅
자동차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저 멀리서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핫산이 차를 몰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차를 주차한 핫산이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크게 말했다.
“나 물 떨어져서 유르트 호텔 물 가지러 갔다 왔어요. 근데 누구예요? 이 아줌마?”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해요? 도망간 줄 알고 오해했잖아요!”
길동이 핫산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자, 핫산은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가리켰다.
“여기 적어 놓고 갔잖아요. 나 갔다 온다고. 잠시 유르트. 물 가지러 간다고.”
나무를 보니 핫산이 커다랗게 손으로 적어놓은 종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종이를 들어보면서 천천히 읽었다.
- 나 핫산, 잠시 가요, 물 가지러. 기다려요. 와요. 금방.
***
우리는 핫산과 함께 차를 타고 철이 누님과 함께 유르트 캠프로 복귀했다. 캠프에서 저녁을 드신 철이 누님은 의자에 앉아서 저 멀리 말라버린 아랄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이형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철이 누님의 옆에 앉더니 물었다.
“그동안 이곳 아랄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철이 누님은 자기 앞에 있는 보드카 병을 들어 한 모금 드신 후 말했다.
“오래전 그날... 참으로 참혹했던 밤이었지.”
그 순간 우리가 있는 유르트 캠프 안에 물이 들이차기 시작했다. 놀란 우리가 일어서자 어느새 우리는 모든 물이 말라버린 사막 위 캠프가 아닌, 아름다운 아랄해 호수를 떠다니는 거대한 배 위에 서 있었다.
우리가 탄 배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아랄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철이 누님이 배 오른쪽을 가리켰다. 배의 오른쪽에는 수백 마리의 철갑상어 떼와 다양한 물고기들이 우리를 따라서 헤엄치고 있었고, 그 위로는 수많은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고 있었다.
“수억 년 전 이곳 아랄해에서 태어나고 자란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던 이 행복이, 인간들의 탐욕으로 속절없이 마르고 허물어지는데 60년도 걸리지 않았지.”
그 순간 갑자기 우리가 탄 배 주변으로 백인들이 모여들더니 아랄해에 물을 공급하는 아무다리야 강(Amu Darya)과 시르다리야 강(Syr Darya)에 댐을 쌓아 그 물을 이용해서 거대한 목화농장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백인들의 목화 농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랄해에 공급되는 물의 양이 줄어들어서 아랄해 수위는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고, 아랄해의 물이 줄어드니 증발하는 물의 양도 증가해서 염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랄해 주변은 사막화가 되고 황폐화가 되고 있었다.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관련된 일자리 6만 개가 사라져서 조상대대로 아랄해에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살아온 주민들은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진 아랄해로 인해서 거대한 몸집의 철갑상어 수백, 수천 마리가 더 이상 헤엄치지 못하고 물이 거의 사라진 아랄해의 물가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철이 누님은 숨을 쉬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철갑상어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억 년 동안 존재했던 이곳 아랄해의 물이, 이처럼 반백년도 안되어서 모조리 말라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우리 철갑상어들은 몸집이 너무 커서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도 없이 대부분 전멸당했다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어미인 내가 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나의 요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우리 동족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그 알인 캐비어를 가져갔지. 결국 나 혼자 이렇게 살아남아서, 이곳 말라버린 아랄해의 깊은 사막 모래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했다네.”
주변을 둘러보니 백인들은 아랄해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과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수십만 명의 유목민들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얕은 물가에서 도망가지도 못하는 거대한 몸집의 철갑상어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산 채로 배를 갈라 철갑상어의 알인 검은 캐비어를 손으로 잡아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산 채로 배가 갈리고 알을 빼앗긴 철갑상어 수백 마리가 잿빛 공장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백인 중 한명이 수저에 캐비어를 가득 담은 후, 입에 넣어 우물거리고 있었다.
백인들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아랄해의 물을 이용해서 목화사업을 하였고, 얼마 후 아랄해의 대부분 물이 모두 말라 없어졌다. 백인들은 아랄해의 물이 없어지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고, 이곳에는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만 남게 되었다. 어느새 황폐화된 사막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는 유르트 캠프로 어느 순간 돌아와 있었다. 처참한 아랄해의 과거와 현실을 본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철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
“이준이라고 했던가? 자네가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철이 누님은 품 속에서 작은 둥그런 은빛 상자를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화장품 파우더 케이스 같기도 한 그 상자를 여니, 상자 안에는 내 주먹만 한 사이즈의 검은 진주 같은 철갑상어 알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놀란 나는 철이 누님을 바라봤다.
“이.. 이건..”
“그 두 개의 알이 내 유일한 혈육이네. 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아.. 이 알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친구 용왕이 사는 바다에 이 알을 풀어주면 부화되어 자기의 앞길을 스스로 헤쳐서 나갈 거라네. 마지막 남은 자식들에게 점점 말라가는 죽음의 내해인 이곳 아랄해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주고 싶어.”
“저희와 같이 용궁으로 가시는 건 어떠실까요? 용왕님께서도 이번에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누님이 직접 알을 바다에 풀어주시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길동이 이야기하자 철이 누님은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아직 이곳 아랄해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네. 내 남은 평생을 이곳 말라버린 아랄해의 원상복구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는 내 친구 용왕과 바닷속 식구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전해 주게. 덕분에 나도 저 말라버린 사막 바닥에서 빠져나왔으니. 내 발로 조만간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겠네.”
길동은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만간 용궁으로 방문해 주시는 걸로 용왕님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철이 누님은 나와 길동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네들 아직 장가 안 갔지?”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 알에서 내 두 딸이 태어나면 자네들의 배필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네에?”
나와 길동이 눈이 똥그래지자, 옆에서 달이 누나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이고, 철이 언니, 제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얘네들 둘 다 사윗감으로 별로예요. 일단 준이는 밥 먹는 거 말고 아무 능력도 없고요, 저기 길동이는 도술 부리는 능력을 모두 빼앗겨서 지금은 능력 제로예요. 둘 다 그냥 어리바리 밥충이들이에요.”
***
철이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했다.
“나는 그 누구든 봉인된 능력을 알아보고 풀 수 있네. 2억 살이라는 나이를 괜히 먹었겠어? 내가 보니 준이는 지 어미와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귀신과 요괴를 다스리는 능력이 검은손에 봉인된 상태고, 저기 길동이는 도술 능력이 모두 봉인된 상태인데?”
“귀신과 요괴를 다스리는 능력이요? 우리 준이가요? 그리고 길동의 봉인된 도술을 언니가 풀어주실 수 있다고요?”
달이 누나는 놀란 눈으로 나와 길동을 바라봤다. 우리도 놀란 눈으로 철이 누님을 바라봤다. 철이누님은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특히 준이 자네, 자네의 검은 왼손에 봉인된 이 힘은 짐승과 요괴의 왕인 자네의 어미, 그리고...”
철이 누님은 말을 하다가 말고 내 눈을 바라봤다.
“어미로부터 이 힘에 관한 말을 듣지 못했구나?”
“짐승과 요괴들의 왕이요? 저희 엄마가요?”
놀란 나는 눈이 커진 채 바라보자 철이 누님은 눈을 감으시더니 나의 검은 왼손과 길동의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쏴아아 아악
그 순간 강렬한 바다의 기운이 철이 누님의 팔에서 내 손으로 옮겨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