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6화-아랄해 투어 ⑦철이 누님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논'(전통 빵)과 '오쉬'(볶음밥), '아추추크'(샐러드), '블랙티'로 이루어진 가벼운 아침식사를 먹은 후 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주세요. 지도. 인터넷 안돼 핸드폰으로 몰라요. 위치. 나 여기 태어나 잘 알아요.”
핫산은 사마르칸트에서 온달이 준 낡은 지도를 한 손에 들고 계속해서 자동차 앞과 지도를 번갈아 보면서 운전했다. 한 때는 거대한 호수였던 아랄 사막은 차나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노련한 핫산 아니면 우리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느덧 높은 언덕 위에서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핫산이 뒤 트렁크에서 커다란 물병을 여러 개를 꺼내더니 우리에게 나눠줬다. 그리고는 손으로 저 멀리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지도에서 X 표시가 된 곳이 바로 저기예요. 여기서부터는 가야 해요. 걸어서. 저기 보이는 하얀 사막을 건너가면 돼요. 이거 가져가요. 죽어요. 물 없으면. 여기 이 지역은 사막이 된 후로 오십 년 간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물병을 나눠준 핫산은 다시 차에 타더니 에어컨을 세게 켜면서 말했다.
“저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다 보여요. 걱정 말아요. 저 도망 안 가요.”
우리는 각자 물 한 병을 들고 언덕을 내려가서 하얀 사막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태산검을 지팡이 삼아서 하얀 사막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 밑의 소금이 깨지는 소리가 버적버적 났다. 뜨거운 태양볕에 지친 우리는 들고 있는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이거 자세히 보니 하얀 게 모래가 아니라 소금이구나, 아랄해 물이 다 말라서 이렇게 소금만 남은 거네? 오십 년 만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 뒤를 따라서 걸어오던 달이 누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의 하얀 소금 결정들을 손으로 떼어내면서 말했다. 길동이도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달이누나가 떼어낸 소금결정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짜다. 이거 소금 맞네.”
“아니, 길동이 너는 그걸 꼭 입에 넣어봐야 알아? 딱 봐도 소금인데. 너 행동하는 게 딱 봐도 중딩이나 고딩인데, 너 대체 몇 살이야? 여기 원곡동 감옥에 올 때 너 몇 살이었어?”
“울릉도와 독도에 우산국을 세웠을 때가 제가 19살이었던가? 그 직후 바로 요괴 차사에게 잡혀서 원곡동에 왔으니.. 그때 스무 살 정도 되었을까요?”
***
약 한 시간 정도 마른 소금 위를 걸어간 우리는 하얀 사막을 가로질러서 건너편을 바라봤다. 저 멀리 언덕 위에 핫산과 우리가 타고 온 차가 희미하게 보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차 밖에 서서 핫산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길동을 보면서 말했다.
“저기 위에 핫산 보이네, 아직 안 도망갔네. 그런데 길동아, 여기서 그 철이 아주머니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거야?”
“그건 저도 몰라요. 용왕님이 여기로 가라는 말만 하시고 어떻게 철이 누님을 찾을 수 있는지 거기까지는 말 안 해주셨거든요.”
“모른다고? 우리 지금 X 표시가 되어 있는 곳까지 다 왔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달이 누나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와 길동을 바라봤다. 그 순간 용이형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가 온 방향을 가리켰다
어어어!! 저저저!!!!
용이형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타고 온 낡은 차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길동아, 핫산에게 전화해 봐,”
한참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시도하던 길동이가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누나, 형, 큰일 났다. 여기 전화 안 터진다.”
“뭐어?”
“우리 또 사기당한 건가?”
길동이가 달이누나를 보면서 말하자, 달이 누나는 얼굴을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신용카드 한 장 달랑 들고 올 때부터 내가 다 알아봤다. 내가 못살아 정말. 그나저나 건너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핫산이 돌아오지 않을까? 물 가지러 갔을 수 있잖아.”
나도 길동에게 물었다.
“길동아, 그런데 아까 핫산이 자기는 마나여행사가 아닌, 마라 여행사 사장이랑 일한다고 했잖아. 마라 사장이 누구야? 처음 들어봐서. 우리가 먹는 마라탕의 그 마라는 아니겠지? 그러면 그분은 음식의 신인가?”
내 질문에 대해서 용이형이 대신 대답해 줬다.
“마라 파피야스 신, 마신(魔神) 혹은 마왕(魔王)이라고도 하지. 영어로 Devil, Satan 이라고도 한다네. 불교에서 유래된 호칭이고, 불교에서는 천마(天魔)의 왕으로, 정법(正法)을 해치고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귀신의 왕을 의미하지.”
“귀신의 왕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이형을 쳐다봤다. 용이형의 대답을 들은 달이 누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크게 소리쳤다.
“우리 진짜 망했네. 그놈의 개자식 같은 핫산하고 마왕한테 우리 사기당한 거 맞네. 광활한 소금사막 위에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당장 마실 물도 없는데.”
***
고민한 우리는 다시 사막을 건너서 차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해 보았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자동응답만 계속됐다. 더위로 인해서 얼굴이 벌게진 달이누나가 소금사막 위를 터벅터벅 걸으면서 빈 생수통을 들고 흔들면서 말했다.
“혹시 물 남은 사람?”
아무도 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달이 누나는 용이형을 보면서 소리 질렀다.
“맞다, 용이오빠! 용신이니까 여기에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지 않아요?”
“아랄해를 채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10분 정도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있지.”
용이형은 하늘을 보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잠시 후, 우리가 있는 아랄해 하얀 소금사막 한 가운데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와, 이제 살 거 같네요,”
달이 누나는 모자를 벗고 맨 얼굴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빗방울로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
쿠르르르르르릉
쿠카콰콰콰콰쾅
천둥보다 큰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우리가 서 있는 땅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내 발밑으로 메기의 수염처럼 생긴 수염 수십 가닥이 땅에서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소금사막의 바닥에서 튀어나온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이는 수십 가닥의 수염들은 모두 길동이가 서 있는 곳으로 모이더니 마치 뱀처럼 길동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길동의 몸을 감싼 수염들에서 환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달이누나가 놀라면서 비명을 질렀지만 길동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서서 바닥에서 나온 수염들이 자신의 몸을 더듬게 두었다. 나는 손에 든 태산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뛰어갔다. 나를 본 길동은 손을 들어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소금사막의 바닥에서 나온 수염들이 길동을 더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수많은 수염들이 길동을 풀어줬다. 수염들에게서 풀려난 길동은 쭈그리고 앉아서 땅에 손을 댄 후 크게 말했다.
“용왕님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철이 누님,”
쿠르르르르르릉
쿠카콰콰콰콰쾅
그 순간 땅이 아까보다 더 크게 울리면서 산보다 더 큰 물고기의 머리가 소금바닥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리가 멈추고 우리 앞에는 몸길이가 백미터가 훨씬 넘어 보이는 거대한 상어와 같이 생긴 물고기가 보였다. 놀란 나와 달이누나를 보면서 용이형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분이 바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경계선의 신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철갑상어라네, 태곳적 공룡들과 같이 태어났고 우리 신들보다 더 오랜 영겁의 세월을 이 땅에 존재해 왔지. 말라붙은 아랄해의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미처 몰랐네,”
놀란 나는 용이형을 보면서 물었다.
“저 철갑상어 누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우리 철이 누님 나이는 2억 살이 훨씬 넘었지.”
***
거대한 철갑상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다란 수염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길동은 말없이 철갑상어의 수염 하나를 손으로 잡은 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뜨고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철이 누님은 아랄해가 말라붙은 후에 이 밑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누나는 신이 나타나기 전인 수억 년 전 태어난 태곳적 생물이기 때문에 물 없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없다고 하네요. 그동안 지난 50년 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하고 이곳 소금호수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신 바람에 그동안 지진이 발생한 건가 봐요.”
길동의 손에서 수염이 빠져나가더니 거대한 철갑상어는 우즈베키스탄 전통 의상을 입으신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로 변했다. 아주머니는 반갑게 웃으면서 용이형을 껴안아 주면서 말했다.
“자네가 말라버린 아랄해에 비를 내려준 덕분에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