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5화-아랄해 투어 ⑥무이낙의 게르
"와이씨, 허리 뽀샤지는 줄 알았네."
달이누나가 먼저 내리고 우리가 이어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무이낙이라는 커다란 영문 글씨가 보이는 주차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이낙 이라는 글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기념사진 찍자, 우선 내 독사진 하나 찍어줘."
달이누나는 커다란 무이낙 글씨 뒤에 가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은 뒤,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내려다보니 온통 녹이 슨 배들이 보였다. 다들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 손을 대면 바스러질 듯한 앙상한 뼈만 남은 배들이었다.
큰 배는 길이가 50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고, 작은 배는 적어도 10미터 이상은 되어 보였다. 녹슨 배들 뒤로 끝이 없는 붉은 사막이 눈앞에 펼쳐 있었다. 그리고 붉은 사막 저 멀리에 거의 다 말라버리고 물이 얼마 남지 않은 아랄해가 희미하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달이 누나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다.
“와.. 사진으로 보는 거랑은 다르네. 사막 위에 버려진 배들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 원래 물고기 많은 호수였어요. 옛날 50년 전에. 우리 아빠 여기서 수영하고 놀았어요, 그때는 요기 우리가 여기 서 있는 데까지 물이 찰랑찰랑.”
“가이드님, 그런데 아랄이 무슨 뜻이에요?”
달이 누나가 선글라스를 쓰면서 물었다.
“아랄은 '천 개 섬의 바다'라는 뜻이에요. 저기 보이는 사막 위에 섬들이 천 개 이상 있었어요. 섬들은 배 타고 다녔어요. 지금 섬 없어요. 물 다 말라서 없어졌어요.”
“여기 물이 얼마나 깊었는데요?”
“아랄해 평균 깊이 16미터였어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어요, 저 멀리 스리랑카 나라의 전체 크기랑 아랄해 호수 면적 비슷했어요.”
핫산은 녹슨 뼈대만 남은 가장 큰 배를 가리켰다. 우리 말고도 아랄해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기위해 온 사람들이 보였다.
“이 배가 우리 할아버지 배였어요, 오십 년 전에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 여기서 물고기랑 조개 많이 잡았어요. 그땐 여기 무이나크 사람들 잘 살았어요.”
“아니, 그렇게 컸던 호수가 500년도 아니고, 50년 만에 다 말라서 이렇게 없어진다는 게 말이 되나?”
달이 누나가 황당한 표정으로 배들을 바라봤다.
“말 안 돼요. 그런데 이게 현실이에요. 근데 우리 무이낙 사람들은 잘못 없어요. 우리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똑같이 살아왔는데, 목화 사업 한다고 물 마구 끌어서 쓰더니 어느 날 갑자기 물 다 말랐어요. 우리 무이낙 사람들 그래서 다 피난 갔어요. 우리 박물관에서 비디오 보고 가요.”
핫산은 바로 뒤에 작은 무이낙 박물관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하얀 회벽칠이 된 그곳에는 예전 아랄해에서 잡혔던 수많은 물고기들과 손바닥보다 더 큰 조개, 커다란 새들과 짐승들의 박제와 이곳을 터전 삼아 대를 이어 어부로 살아왔던 원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낡은 흑백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동영상을 보니 수많은 배들이 물이 넘실거리는 아랄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고기를 낚으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워하는 어부들의 표정이 보였다.
“저기 저 사람, 우리 할아버지랑 아빠.”
배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물고기로 가득 찬 그물을 거두어 올리는 부자를 가리킨 핫산의 눈이 글썽거렸다. 한때 찬란했던 아랄해의 모습이 담긴 흑백 비디오를 본 우리는 우울해진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녹이 선 배 근처로 내려가는 나와 달이 누나를 보면서 핫산이 크게 소리 질렀다.
“안 돼요, 배 만지면, 파상풍 걸려요. 만지지 않게 조심해요. 선생님은 안 찍어요?”
핫산이 이야기하자 길동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용이형이 길동이의 어깨를 잡더니 같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고 내려왔다. 핫산도 뒤따라서 같이 내려왔다. 나는 길동을 보면서 크게 말했다.
“길동아, 괜찮아.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지. 나중에 지나가면 다 추억이 되는 거야.”
“그래 길동아. 너무 우울해하지 마. 우리 길동이에게는 한도 무제한인 VIP 법인카드가 있잖아. 나 오늘 길동이 왕창 뜯어먹을 거야. 제일 비싼 걸로.”
달이 누나도 활짝 웃으면서 기운을 잃은 길동을 응원해 주었다. 길동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흔들면서 크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법인카드로 오늘부터 여행 끝날 때까지 맛있는 거 쏘겠어요. VIP에게 혼나든 말든, VIP로부터 받은 법인카드로 맛있는 거 사먹고, 옷도 다 이 법인카드로 사줄 거야. 기대하라고!”
핫산의 말을 들은 나는 놀란 눈으로 길동을 바라봤다. 카드를 든 길동의 눈과 손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달이 누나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너희 둘 다 아무것도 안 가지고 카드 하나 달랑 들고 빈손으로 당당하게 오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우리 길동이랑 준이 너, 갈아입을 옷 어떻게 하냐? 둘 다 속옷도 안 가지고 왔지? 하이 고야 ~ 이제 둘은 워쩐디야?”
“괜찮아요 돈 없어도, 우리 투어 비용에 밥 다 포함되었어요. 유르트 호텔 비용도요. 저기 우즈베크 전통 옷 팔아요. 현금만 받아요.”
핫산이 길 건너에 보이는 노상 기념품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길동은 더욱더 침울해진 표정으로 달이누나를 바라봤다.
***
길 건너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우즈베크 할아버지들이 주로 입는 전통 남자 겉옷을 뒤적거던 달이 누나는 알록달록한 겉옷 두 개와 물고기가 그려진 싸구려 티셔츠 두 장을 집은 후,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했다.
“내가 미리 환전해서 현금 가지고 왔길래 망정이지 어쩔 뻔했어. 거기 둘! 옷은 이걸로 입고 속옷은 매일 빨아서 입어. 여기 속옷은 안 판다.”
나와 길동은 침울한 표정으로 누나가 주는 알록달록한 긴 옷을 받았다. 누나가 사 준 옷은 주머니가 없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이곳의 전통 의상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할아버지들이 주로 입는 그 옷의 이름은 '초폰' 이었다.
“추워요. 여기 저녁. 잘 때 초폰 입고 자야 해요.”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저 멀리 호수의 물이 보이는 유르트 호텔로 향했다. 유르트 호텔에 도착하니 키가 작고 통통하신 이곳 원주민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핫산은 아줌마를 껴안고 우즈베크 말로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유르트 주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
“여기는 우리가 잠을 잘 유르트 호텔.”
달이 누나가 마치 몽골 천막과 같은 엉성한 나무 문이 달려 있는 유르트 천막을 보고 소리 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냥 흙바닥에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 하얀 흙먼지가 그 위에서 나풀거렸다.
카펫 위에는 침대라고 할 수도 없는 얇은 스티로폼 침대들이 있었다. 옆에 있는 이불과 베개는 언제 빨았는지 모를 정도로 새까맸고 먼지가 풀럭거렸다. 핫산은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여기는 샤워장”
샤워장을 본 달이 누나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숙소 뒤 빈 공터에 덜렁 있는 샤워장은 문 없이 천으로 대충 가려서 씻는 간이 샤워장이었다. 작은 건물 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랗고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이 허공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핫산은 샤워장의 천을 제치고 들어가더니, 위에 달린 수도꼭지를 손으로 돌렸다. 공중에 있는 호수의 끝에서 한가닥 물이 졸졸졸 아래로 흘러내렸다.
“귀해요, 물, 여기는, 우리는 매일 못 해 샤워. 그렇지만 여러분은 매일 해도 돼요.”
길동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다시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핫산은 다시 우리를 이끌고 샤워실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로 대충 만든 간이 문을 벌컥 열었다.
핫산이 문을 열자, 안에서 파리 수백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여긴 화장실”
달이 누나는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드는 파리를 피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이런 데서 회장실 절대 못 가. 불도 없고. 밤에 어떻게 와. 귀신 나오면 어떻게 해!!!!”
코를 막고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완벽한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누나, 밤에 화장실 가실 때 저 불러요. 앞에 서 있어 드릴게요.”
길동은 달이 누나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한숨을 쉬면서 지갑을 만지작 거렸다. 나는 용이형을 향해 몸을 기울여서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용이형님, 달이 누나 달걀귀신 아닌가요? 한국 귀신도 우즈벡 귀신을 무서워 하나봐요. 둘이 싸우면 한국 귀신이 지는 건가요?“
“무서워 하기는!!! 날 뭘로 보고 !!!! 쓰지도 못하는 신용카드 만지작 거리면 뭐 해!!!”
달이 누나가 우리를 보면서 버럭 화를 내니, 누나 옆에 선 용이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르트도 다 확인했으니 차례대로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오자고. 밥 먹고 쉬어야지.”
***
“뭐.. 그럭저럭 샤워할 만하네. 길동아, 너무 미안해하지 마. 이것도 다 추억이지.”
우리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샤워를 마친 달이 누나가 머리에 양머리를 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어느덧 이곳 유르트를 관리하시는 아주머니가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저녁 메뉴는 양고기 감자수프에 우즈베크 전통 빵인 논이 다였고, 러시아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비스킷과 블랙티가 후식으로 있었다. 핫산은 1인당 맥주 한 병씩을 나눠줬다. 그리고는 작은 보드카 한 병을 가지고 오더니 우리에게 한 잔씩 따라줬다.
“우리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해요. 일찍 자야 해요. 그래서. 저 먼저 자러 가요.”
핫산은 일어나서 자신의 유르트로 들어갔다. 우리 모두 맛있게 밥을 먹고 비스킷에 차를 마신 후, 각자 유르트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유르트에 누워 하늘을 보니 뻥 뚫린 천장으로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별을 세다가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