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44화-아랄해 투어 ⑤두 번째 사기
달이 누나는 학가위를 손에 들고 나에게 보여줬다. 가위 양 손잡이에는 멋진 학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제각기 다른 색상의 가위 주머니에 앙증맞게 넣어져 있었다.
“학가위가 이쁘긴 하네요.”
가게 안에서 주인과 포옹을 한 후, 나온 핫산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출발해요. 아랄해, 멋진 RV 그리고 호텔 기다리고 있어요. 따라오세요. 나를.”
우리는 핫산을 따라 아랄해로 타고 갈 고급 RV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마치 어제 뽑은 듯이 반짝거리는 은색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주차되어 있었다. 사막용 차량이라 그런지 배기통이 운전석 옆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핫산은 자랑스럽게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올해 뽑은 새 차. 좋아요. 사막에서는 벤츠 지바겐 보다 승차감 좋아요. 어서 타요. 여기서 아랄해 입구인 누쿠스(Nukus)까지 오백 킬로 넘어요. 6시간 걸려요. 원래 7시간 반 걸리는데, 달릴 거예요. 빠르게.”
앞자리에 탄 길동이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부하라에서 아랄해까지 도로 사정이 좀 안 좋아요. 고속도로가 아직 안 깔렸거든요, 새벽부터 움직여서 다들 피곤할 텐데 푹 자죠? 제가 이럴 줄 알고 최고급 RV로 예약했죠. 중간에 밥 먹으러 갈 때 가이드가 깨워줄 겁니다.”
길동의 말처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덜컹거렸지만, 새 차라 그런지 흔들림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 모두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눈을 뜨니 주변 사막의 풍경이 이제야 눈앞에 들어왔다. 따가운 햇살이 비치는 끝이 없는 사막 위를, 우리가 탄 고급 RV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길동이가 의기양양하게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용이형, 준이형, 달이누나, 어때? 내가 모두 최고급으로 예약했지.”
“우리 길동이 최고.”
달이 누나는 길동을 향해서 엄지 척을 했다. 중간중간 낙타들과 카라반의 행렬이 보였고, 저 멀리 사막 언덕 위에 지어진 고대 요새 같은 성채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멀리 보이는 한 버려진 듯한 고대 요새와 같은 성채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가이드님, 사막 위에 있는 성 같은 곳은 뭔가요?”
“아, 저기는 칼라예요.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인데, 지금은 없어요. 사람, 아무도 안 살아요.”
우리는 넋을 놓고 사막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는 다시 세 시간을 달려서 누쿠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차량은 어느 공터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
“여기서 우리는 차 바꿔서 배들의 무덤 무이낙 항구 갈 거예요. 지금 우리 탄 차는 새 차라서 아랄해 가면 소금물 때문에 다 망가져요. 나 그러면 사장님에게 혼나요.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는 무이낙에 있는 유르트 호텔에서 잘 거예요. 아침은 이곳 사람들이 먹는 밥 똑같이 나와요.”
핫산은 주차장 구석의 먼지 쌓인 낡은 RV 차량 앞에 주차를 하더니 먼저 내렸다. 길동이 당황해하면서 핫산을 따라 내렸다.
“어? 이 먼지 쌓인 낡은 차로 바꿔 탄다고요? 그리고 무이낙에서 5성급 호텔이 아니라 유르트 천막에서 잔다고요? 거기 유르트는 화장실은커녕 샤워실도 없잖아요? 원주민들처럼 유르트에서 맨 흙바닥에 얇은 스티로폼 매트 하나 깔고 자고, 아침 조식은 아메리칸 스타일도 아니고, 이거 계약한 상품 내용이랑 완젼 다른데?”
“아니에요. 선생님이 계약한 내용 맞아요. 중간에 차량 바꿔 탄다고 쓰여 있어요. 숙소 유르트 맞아요. 유르트 좋아요. 우리 카라칼팍스탄 아랄 사람들 다 거기 유르트에서 살아요. 같은 거 먹을 거예요.”
“아니, 핫산씨.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러면 계약서를 봅시다. 이런 건 명확하게 해야지 말이야.”
화가 난 길동은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더니 핫산에게 보여줬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지적하면서 크게 말했다.
“자, 핫산씨. 봐바요. 요기, 쓰여 있네.
화가 잔뜩 난 길동은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피치 못할 사정도 아니고, 저 차량은 동급 최고급 차량이 아닌 거 같은데? 핫산씨. 지금 저 속이려고 하는 거예요? 어림도 없어요. 내가 예전에 한번 요괴에게 크게 사기당한 뒤로는 얼마나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데 말이야!”
“나 선생님 말 이해 못 해요. 이 차량 못 가요, 바꿔서 타야 해요. 호텔 못 가요. 유르트 가야 해요. 아침 아메리칸식 없어요. 나 사장에게 혼나요. 우리 호텔 아니라 유르트 천막 맞아요. 아침은 우리 카라칼팍스탄 전통식.”
“내가 여행사에 낸 비용이 얼만데.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행사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따져야겠네.”
길동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걸기 시작했다.
“아, 마나여행사 박사장님, 이 중요한 때 왜 통화 중이래.”
이때 핫산이 길동을 보면서 크게 이야기했다.
“나 마나여행사 아니에요. 우리 여행사 이름 마라 여행사예요. 그리고 우리 사장님 이름 박 씨가 아니라 마 씨예요.”
그 순간 우리 모두 얼음이 되어서 길동을 바라봤다. 길동의 눈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
잠시 후,
길동은 어딘가 걸려온 전화로 한참을 통화하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형, 누나. 우리 여행사가 바뀌었대요.”
“뭐? 출발하기 전에 길동이 네가 예약한 여행사인 마나여행사 이름 확인 안 했어?”
“당당하게 이야기하길래 나는 저 인간이 마나여행사 가이드인 줄 알았지.”
“그럼 저분은 누군데?”
우리 대화를 듣던 핫산이 자신의 목에 찬 명찰을 당당하게 들어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 마라 여행사 공식 아랄해 가이드. 핫산. 우리 여행사 사장 카지노 마회장님 첫째 아들 마진광.”
명찰을 보니 마나가 아닌, 마라 여행사와 로고가 적혀 있었다. 당황한 달이 누나가 길동을 바라봤다.
“길동아, 그럼 우리가 타기로 한 고급 RV차량이랑 예약한 5성급 최고급 호텔은? 나 화장실이랑 샤워실 엄청 민감한데. 비데 없으면 안 되는데?”
그 순간 우리 뒤로 하얀색의 최고급 벤츠 RV 차량인 지바겐이 휙 하고 지나갔다. 벤츠 RV에는 ‘마나 여행사(MANA TOUR)’ 로고가 붙어 있었다. 놀란 나는 우리가 타고 온 RV의 문짝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마라 여행사(MARA TOUR)’ 로고가 작게 붙어 있었다.
길동은 방금 지나간 벤츠 RV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마라 여행사에서 아랄해 투어를 예약한 사람들이 여행사 바뀐 거 강력하게 항의해서, 우리가 타기로 한 벤츠 타고, 호텔도 우리가 예약한 거 사용하기로 했다네요.”
“아니, 길동아, 그게 말이 돼? 비용이 다를 텐데?”
“마나 여행사 사장님이랑 마라 여행사 사장이 그렇게 하기로 서로 협의했대요. 그리고 남은 RV차랑 호텔방이 없답니다. 예약 꽉 찼대요. 우리 이거 타야 한다네요.”
길동은 침울한 표정으로 핫산이 가리킨 낡은 RV에 올라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낡은 RV 차량으로 바꿔서 탔다. 핫산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차를 출발했다.
“그럼 출발해요. 우리,”
우리가 탄 낡은 RV는 쇼바의 스프링이 다 나갔는지 지면의 울퉁불퉁함이 엉덩이로 100%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차가 덜컹거렸지만 계속해서 미안해하는 길동이 때문에 우리 모두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고 갔다. 덜컹거리면서 한참을 달린 차는 약 두 시간 후 배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무이낙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한 핫산이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무이낙, 버려진 항구에 배들의 무덤 있어요, 기념사진 찍고 가요.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