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곡동 쌩닭집-29화-[2부 시작] merci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3년간 잘 숙성돼서 흐물흐물해진 당나귀 고기와 가죽을 거미요괴인 양장할매 집에 배달하고 오니 ‘원곡동 쌩닭집’ 간판 옆에 기다란 나무 장대가 우뚝 솟아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장대 위에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 같기도 하고 거위 같기도 하고, 오리 같기도 한 새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아저씨 그런데 저 나무 막대기는 뭐예요?"
"솟대"
"솟대요? 그게 뭐예요?"
"원래는 풍년을 기원하거나 마을 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운 긴 나무 장대를 의미한다."
"위에 새 같은 게 조각되어 있던데요? 기러기인가요?"
"거위랑 오리를 조각한 건데, 옛날 솟대의 새들은 천상계의 신들과 마을의 주민을 연결해 주는 전령조의 역할을 했지."
"갑자기 저 솟대는 왜 만드신 거예요? “
"내일 오래간만에 멀리서 귀한 손님이 오시거든. 헤매시지 말고 우리 가게를 잘 찾아오시라고 만든 거지. “
***
다음 날 아침,
가게 오픈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와 다르게, 아저씨와 달이 누나는 침착했다. 아저씨가 솟대 위의 나무 새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멀리서 손님이 오시는구나."
"멀리 서요? 어디서 오는데요?"
"저기 오시네."
아저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거짓말 안 하고 200 kg 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와 거의 뼈와 가죽만 남은 여성이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거구의 남성은 체중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는지 숨소리를 거칠게 내고 있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원곡동이 흔들리는 것처럼 울렸고, 육중한 몸의 아저씨 목은 마치 터질 것처럼 빨갛게 부어 있었다. 커다란 티셔츠에는 마치 페인트 자국처럼 빨간색이 마구 칠해져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 부부의 걸음은 부자연스러웠다.
자신의 힘으로는 혼자서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으면서 힘겹게 우리 쌩닭집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붉은 목의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듣고 왔습니다."
"네? 어떤? 이야기를요?"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내 앞에 서 있는 부부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선생님의 손을 잡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먼 곳에서 힘들게 찾아왔습니다."
"먼 곳이요? 어디서요?"
"저희는 프랑스에서 왔습니다. 저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실 수 있으실까요?"
"프랑스요? 어..."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아저씨와 달이 누나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은 왼손을 내밀어서 프랑스에서 찾아온 부부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프랑스의 한 거위 농장에서 태어난 거위였다.
***
그날은 인근 농업 고등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하러 온 날이었다.
수많은 거위와 오리들이 거대한 인공 부화기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알 안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이윽고 알에 금이 나더니 커다랗고 노란, 귀여운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생님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부화가 되어서 깨진 틈 사이로 발을 내밀고 막 세상 밖을 바라보는 알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Le bébé à l’intérieur de l’œuf qui ressemble à ceci est une oie femelle. (알 안의 새끼 모양이 이렇게 생긴 건 암컷 거위입니다.)
선생은 손에 든 암컷 거위 알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뒤, 부화기 밖에 놓인 커다랗고 더러운 바구니 속으로 그대로 휙 던졌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선생에게 물었다.
Où vont les jolies oies femelles et les canetons femelles ? (귀여운 암컷 거위와 암컷 오리 새끼들은 어디로 가나요?)
Lorsqu'il s'agit de produire un foie gras de qualité supérieure, les femelles sont moins efficaces. Notre ferme produit du foie gras de la plus haute qualité en utilisant uniquement des oies mâles et des canards mâles. (최상급의 푸아그라를 만드는데 암컷은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우리 농장은 수컷 거위와 수컷 오리만을 이용해서 최고급의 푸아그라를 생산합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에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직원 둘이 나타나 미처 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암컷 거위와 암컷 오리 새끼들이 뒤엉켜서 마구 버둥대고 있는 커다랗고 더러운 바구니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Pour la santé des mâles sélectionnés, leur bec doit être retiré au feu. Sinon, ils pourraient se picorer et tous mourir. (선택된 수컷들의 건강을 위해서 불을 이용해 부리와 발톱을 제거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서로 쪼아서 모두 죽을 수 있어요. )
선생은 수컷 새끼들을 하나씩 들어 둥그런 기계에 끼웠다. 기계는 빙글빙들 돌면서 이제 막 태어난 수컷 거위와 오리의 부리와 발톱을 지지더니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모두 태워 없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부리와 발톱이 불로 지져지면서 그들은 작은 소리를 냈다.
깩깩깩깩
깩깩깩깩
선생과 학생들은 다음 건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거의 다 자란 수컷 거위와 수컷 오리들이 자신의 몸 만한 작은 철장에서 간신히 목만 내놓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꿱꿱꿱꿱
Pour éviter que les mâles ne se blessent dans la cage étroite, le bout de leurs griffes et de leur bec a été coupé plus tôt. Si ces enfants bien adultes sont nourris avec des aliments de haute qualité 24 heures sur 24 pendant les 12 derniers jours, cela égouttez le foie et agrandissez-le. Un foie gras de haute qualité est terminé. (좁은 우리 안에서 수컷들이 서로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톱과 부리의 끝을 아까 자른 겁니다. 잘 자란 이 아이들에게 마지막 12일 동안 질 좋은 먹이를 24시간 내내 먹이면 간에 부담이 되어서 간이 커지죠. 그러면 풍미가 뛰어난 고급 푸아그라가 완성됩니다. )
교사는 한 거위의 목을 잡더니 천장에 달린 기다란 철 막대기를 사정없이 거위 입으로 쑤셔 박았다. 거위의 입에서 위로 연결된 긴 막대기로 엄청난 양의 사료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목에서 위까지 강제로 주입된 녹슨 철 막대기 때문인지 거의의 목은 혈관이 터져 빨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일부 거위는 목이 터져서 더 이상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 보였지만. 교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위의 시뻘건 목을 잡고 다량의 사료를 우르르 쏟아부었다. 거위 아래로는 영양과다 때문인지 설사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에 잡혀서 강제로 먹이를 주입당하고 있는 거위는 방금 전 원곡 쌩닭집을 방문한 거대한 덩치의 프랑스 남자였다. 거위의 목은 그동안 얼마나 녹슨 쇠 막대기가 드나들었는지 빨갛게 피가 보였고 심하게 부어 있었다. 선생은 학생들을 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Cela créera un fouadra de la plus haute qualité, soit 610 fois sa taille normale. Le foie gras de notre ferme est apprécié des gourmets non seulement en Europe mais aussi dans le monde entier. Passons maintenant au dernier processus. (이렇게 해야 정상 간 크기의 610배가 되는 최상급의 푸아그라가 완성됩니다. 저희 농장의 푸아그라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공정으로 가 볼까요?)
선생과 학생들은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 방에는 전기가 흐르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 물에 지난 12일 동안 강제로 먹이를 주입해서 배가 풍선보다 더 거대해진 거위와 오리를 집어던졌다. 잠시 후, 기절한 수컷 거위와 오리들을 능숙한 솜씨로 공장 직원이 산 채로 배를 가르더니 거대한 푸아그라를 빼서 고급 상자에 넣고 있었다. 간이 빠진 거위와 오리들은 피를 흘리면서 공장 구석으로 던져졌다. 일부는 아직 숨이 안 끊겼는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막 태어난 암컷 거위와 오리들이 담긴 바구니를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더니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에 쏟아부은 후 그대로 묶어버렸다.
깩깩깩깩 깩깩깩깩
검은 비닐봉투 위의 묶은 틈 사이로 수많은 아기 거위와 오리들의 작은 비명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닐은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꿈틀댔다.
잠시 후, 청소차가 오더니 꿈틀대는 검은 비닐봉지는 청소차 안으로 그대로 던져졌다. 검은 비닐봉지 안의 거위와 오리새끼들은 숨이 막히는지 깩깩깩깩 소리를 지르면서 꿈틀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한 시간도 안된 그녀들은 모이 한 번, 물 한 방울도 못 마시고 그대로 쓰레기와 함께 뒤엉켜지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아지는 쓰레기차와 같이 그녀들의 비명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깩깩깩깩 깩깩깩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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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아저씨와 아줌마의 짧지만 고난했던 그 생을 본 내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부부를 향해 말했다.
"두 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간, 두 분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오더니 나의 검은 왼손으로 서서히 흡수되었다. 잠시 후. 내 눈앞에는 멋진 정장과 예쁜 드레스를 입은 프랑스 부부가 서 있었다.
아줌마는 방긋 웃으면서 짧고도 강렬한 한마디를 하더니 멋진 남편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가방에서 양산을 꺼냈다. 나는 부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한 양산을 쓴 부부는 거미요괴 할매의 양잠점 쪽으로 걸어가더나 서서히 사라졌다. 어느새 달이누나가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잘했어. 인간들이 저 푸아그라를 먹기 위해 ‘가바쥬’(gavage) 방식을 만들어냈지."
"가바쥬요?"
"아까 네가 본 환영처럼 거위 목에 쇠파이프를 꽂아 엄청난 양의 곡식을 먹이는 방식이야. 성체가 된 거위나 오리를 묶고 15일간의 강제 음식 섭취를 하면 간은 최소 8배 이상 커지거든."
"역시 인간이 제일 잔인하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모든 푸아그라 농장이 같은 방식일까요?"
"다 그렇지는 않아. 예전에 스페인에서 모든 ‘인위’를 거부하고 ‘자연의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농장주를 만난 적이 있었지."
"그렇구나."
"자. 우리도 이제 오늘 마감할 준비 해야지? 그나저나 너 오늘까지 복덕방 돈사장에게 배달해야 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깜빡할 뻔 했다. 지금 다녀와야겠네요. "
"나도 재고정리하고 이만 퇴근해야겠다. 운전 조심하고 내일 봐."
달이 누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는 창고에서 베지테리안(이라고 하는) 복덕방 돈사장님이 부탁한 잘 말린 닭껍질 2kg을 꺼낸 후, 배달하기 위해서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커다랗고 멋진 거위 두 마리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하늘 높이 사라지는 거위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