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2
"우리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에 있는 모든 어류들과 펭귄, 돌고래 같은 동물들은 꽤나 건강한 편이야. 미쓰문 덕분에 속 썩이지 않고 다들 얌전하지. 온지 얼마 안되서 아직 말썽많은 말미잘도 잘 관리되고 있고.”
"미쓰문 덕분이요? 방금 전 쌍화차를 타주신? 어....그 분은 소장님의 개인비서 아니신가요?"
"큰일날 소리, 미쓰문이 아마 자네 학교 수의학과 선배일걸?"
"네? 그러면 그분이 이곳 아쿠아리움의 수의사........세요?"
깜짝 놀란 지은이 곰소장을 바라보자 곰소장은 쌍화차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미쓰문은 쌍화차도 잘 달이지만, 암바를 포함해서 수의사로서 실력은 뭐 말할 것도 없지. 오늘은 퇴근시간이 다 되었으니 주말 푹 쉬고 월요일부터 나오면 돼."
"암바요? 그게 뭔가요? 그리고 퇴근이요? 지금 오전 11시 밖에 안 되었는데요?"
깜짝 놀란 지은은 시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곰소장 책상 위에 있는 둥그렇고 낡은 시계는 11시 17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나 먼지가 쌓였는지 수십 년은 닦지도 않은 듯 했다.
"우리 월미 아쿠아리움은 금요일은 오전근무야."
"아... 그러면 주말에는 손님들이 많으니 바쁘겠네요?"
"주말은 쉬어야지. 우리는 주 5일만 일해. 잠시 뒤 우리랑 같이 퇴근하고 월요일 9시까지 오라고."
"네? 주 5일 근무요? 주말이나 야간에 동물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그리고 그렇게 일하면 여기 아쿠아리움 운영비가...."
"우리 아쿠아리움 식구들은 모두 튼튼해. 저녁에는 다들 잠자기 바쁘고 주말에는...."
곰소장은 잠시 말을 끊고 쌍화차를 모두 마신 후 수저로 바닥에 있는 건더기들을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은을 스윽 바라보면서 윙크했다.
"주말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쿠아리움 동물들도 푹 쉬어야지. 안 그래? 자, 이제 퇴근 준비 하자고."
"어...."
"아 참, 두 달간 지낼 자네 숙소는 내가 미리 ‘월미 호텔’ 지배인에게 이야기해서 예약해 놨어."
"네? 숙소는 여기 아쿠아리움에서 자는 거 아니었나요?"
"아까 이야기했잖아. 저녁에는 다들 잠자기 바쁘고 주말에는 다들 푹 쉬어야지. 자, 이제 그만 퇴근하자고."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지은을 두고 곰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쌍화차 잔 두 개를 들고 소장실 밖으로 나갔다. 지은은 급히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곰소장 뒤를 따라갔다. 곰소장은 쌍화차 잔 두 개를 구석에 있는 싱크대에서 씻으면서 말했다.
"미쓰문은 벌써 퇴근한 거 같은데? 인사도 안 하고 퇴근하고 말야. 아무리 내가 편해도 말야. 에잉..."
"네에? 벌써 퇴근하셨다고요?"
"아까 말했잖아. 금요일은 다들 바쁘다니까. 자자 우리도 얼른 나가자고."
***
곰소장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데 붉은 말미잘 하나와 흰동가리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그 물고기) 그리고 온몸이 까맣고 몸에 두 개의 흰 점이 있는 샛별돔 한마리가 있는 작고 평범한 어항이 지은의 눈에 들어왔다.
지은은 가던 길을 멈추고 어항을 유심히 바라봤다. 검은 샛별돔은 원래 말미잘과 공생관계라서 잘 지내는데, 이상하게도 커다랗고 붉은 말미잘은 샛별돔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어항을 유심히 바라보니 곰소장이 지은을 보면서 한마디를 하였다.
"말부장이 온지 얼마 안되서 저렇게 샛별돔을 못살게 구는군. 재가 원래 저런애가 아닌데,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런거 같아. 뭐, 곧 사이 좋아지겠지. 신경쓰지 말고 나가자고."
"말부장이요?“
"아, 저기 보이는 붉은 말미잘을 미쓰문하고 내가 그냥 부르는 별명이야. 나랑 미스문은 여기 애들에게 별명 하나씩 붙여줬고 나중에 천천히 다 알려줄께. 지금은 신경쓰지 말라고.“
"아.네."
지은은 곰소장을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지은이 곰소장을 따라 나가는 동안 말부장이라고 불리는 붉은 말미잘은 계속해서 샛별돔을 공격하고 못살게 굴고 있었다.
***
아쿠아리움 밖으로 나간 곰소장이 정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걸자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이었다.
아쿠어리움 천장에 달린 배수로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지은이 고개를 들어서 멀리보이는 천장의 낡은 배수관을 바라보자 곰소장은 낡고 커다란 열쇠로 자물쇠를 잠그면서 말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우리 수족관의 물을 자동으로 교체하는 시간이라서 저런 소리가 좀 날거야. 배수관이 낡아서 소리가 좀 거슬리지? 괜찮아. 신경 쓸 거 없어. 아, 그리고 저기 바닷가에 있는 호텔 보이지? 저기가 월미호텔이야. 거기 지배인에게 내가 이야기해 놨으니 가서 내 이름 대면 되. 그럼, 주말 푹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지은에게 인사를 한 곰소장은 월미 바다열차를 타는 역 방향으로 급히 걸어갔다. 곰소장 이외에도 퇴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역 주변에 북적거렸다. 대부분 말끔한 차림세의 회사원들 같은 모습이었는데, 일부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친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건 여기 월미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월미도를 한 바퀴 도는 관광열차 아니었나? 중간에 버스나 다른 일반 지하철로 환승하는 데가 있나 보지? 그리고 두량밖에 안되는 월미 바다열차를 출퇴근시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아리송해진 지은은 캐리어를 끌고 아쿠아리움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한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의 이름은 [월미도 관광호텔]이었는데, 관광호텔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꽤나 컸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이 정도면 별 네 개나 다섯 개는 되겠는데, 왜 그냥 관광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인 거지?’
지은은 캐리어를 끌면서 리셉션 방향으로 이동했다. 리셉션 앞에 도착하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지배인으로 보이는 분이 어디론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은을 보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계속해서 통화를 했다. 그의 가슴에 달린 금빛 명찰에는 ‘총지배인 교어남(鮫魚男)’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포마드 기름을 바른 것 마냥 반질반질하게 두상에 모든 머리카락들이 밀착되어 있었고, 거의 보이지 않는 얇은 입술에 날카로운 눈빛의 인상은 말을 걸기조차 무섭게 느껴졌다. 그가 통화를 할 때마다 날카로워 보이는 하얀 치아들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교어남(鮫魚男)? 이분은 교(鮫) 씨네. 이름은 어남(魚男)? 소장님은 곰씨에. 이곳 월미도에는 특이한 성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바닷가 쪽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규모가 꽤 되는데 총지배인이 리셉션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다른 직원들은 대체 뭐 하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직원들 모두 로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전화를 끊지 않고 손에 든 채 총괄 지배인은 지은을 보더니 만사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혹시 예약하셨는지요?"
"제가 따로 예약은 안 했는데...."
"죄송한데 저희 방이 없습니다. 모두 예약이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은이 말을 하는 도중에 지배인은 지은의 말을 끊더니 다시 전화기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지은은 다시 지배인을 보면서 말했다.
"월미 아쿠아리움 곰소장님이 지배인님에게 이야기하셨다고 했는데요?"
***
그 순간 지배인은 전화를 하다가 그대로 끊어버리고 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방금 전의 그 차디찬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방긋 웃으면서 지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이고, 곰소장님의 손님이라고 미리 말씀을 해 주시죠.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종업원을 보면서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지배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지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타이핑을 친 후 지은에게 방 키 하나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1901호 로열스위트룸입니다."
"로열스위트룸이요?"
"아, 곰소장님이 특별히 바다가 잘 보이는 19층으로 두 달 예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월미호텔은 전 객실이 모두 로열스위트룸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은이 키를 받고 두리번거리자 지배인이 손을 들어서 흔들더니 호텔 정문에 서 있던 빨간 호텔복을 입은 젊은 남자를 불렀다. 그는 지배인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급하게 뛰어왔다.
"여기 손님방까지 모셔 드리고. 그리고."
지배인은 종업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종업원이 가까이 오자 지배인은 종업원의 귀에 대고 은밀하게 무언가 속삭인 후, 방긋 웃으면서 지은에게 말했다.
"우리 종업원이 지은님을 방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겁니다. 아침식사는 오전 7시부터 호텔 20층 테라스에 있는 식당에서 제공됩니다. 그럼 두 달간 편히 쉬십시오."
종업원이 지은의 옆으로 오더니 캐리어를 달라고 손짓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들고 갈게요."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이 있는 겁니다. 편하게 캐리어를 직원에게 맡겨주세요."
지배인이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지은은 지배인을 잠시 바라본 후, 캐리어의 손잡이를 종업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후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손짓했다. 지은은 지배인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방에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전화기 0번을 눌러주세요."
***
지은은 캐리어를 끌고 가는 종업원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는 리셉션 바로 옆의 은빛 엘리베이터 6개가 있는 곳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여기 있는데요?"
"고객님의 방은 안쪽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는 게 훨씬 빠르십니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방이라서요."
"아, 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금빛으로 꾸며진 화려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 상단에는 ‘VIP전용’이라고 쓰인 커다란 푯말이 보였다. 종업원이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이미 1층에 있었는지 바로 문이 열렸다. 겉은 물론 안에도 화려하게 금빛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천장을 보니 커다란 금빛 용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세밀하게 그려졌는지 마치 용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 지은은 뚫어지게 천장의 용 무늬를 바라봤다.
띠링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9층에 도착했다. 종업원이 지은에게 먼저 내리라고 손짓했다. 지은이 먼저 내리자 종업원은 캐리어를 끌고 나오더니 바로 앞에 있는 1901호 방문에 키를 대라고 손짓했다. 여느 호텔방문과는 달리 19층의 모든 방문들은 반짝거리는 금빛이었다. 지은이 1층에서 받은 키를 문에 대자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 방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저 멀리 파란 바다와 야자수들이 보였다. 지은은 감탄하면서 생각했다.
'와........ 여기는 남해가 아닌, 서해바다인데 이렇게 파란 바다와 야자수가 잘 보이는 장소가 있었던가? 제주도 바다보다 더 좋아보이는데? 내가 아는 서해바다가 맞나? 어머..저기 저 사람들은 금발의 외국인들인데 월미도에 이렇게 외국인들이 많았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월미도가 국제 관광도시가 된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