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소년 Oct 04. 2024

#1 인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1

“지은아, 이번 여름방학에 진행하는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 어디로 지원할 거니?”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강남이나 잠실에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지원하려고요.”


“아쿠아리움 지원하는 학생이 줄을 섰구먼, 피 터지겠는데?”

“그래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나 봐요?”


“요새 동물원보다는 아쿠아리움 임상이 인기가 많으니까. 그중에서도 학교에서 가까운 강남과 잠실 아쿠아리움이 가장 인기 있지. 예전부터 선배들은 동물원도 지원 많이 하고, 최근에는 KTX 오송역에 있는 바이오휴먼 영장류 임상센터가 좀 인기있는거 같더라고. 지방이나 거리가 먼 경기도 외곽에 있는 축사나 돈사, 양계장은 냄새가 심하다고 다들 좀 꺼려하고. 특히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먼 곳은 안 가려고 하니까. 공부 잘하는 우리 지은이는 당연히 1 지망이 되겠지만, 뭐.. 어쨌거나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를 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국내 최고의 S대학 수의대 본과 3학년 생인 지은은, 여름방학 기간인 2개월간 진행하는 2학기 과목 ‘임상로테이션’ 장소를 선정하는 것과 관련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1 지망으로, 다음으로 가까운 잠실 아쿠아리움을 2 지망으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밑에는 3 지망을 쓰는 란이 있었지만, 수의대를 수석 입학한 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장학금을 받은 지은은, 자기가 선택한 1 지망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본과 21명으로 구성된 7개 조에서 한 조인 3명에게만 아쿠아리움 실습 기회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두 군데의 유명 아쿠아리움 말고는 관심이 없던 지은은 신청서에 1 지망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 2 지망 잠실 아쿠아리움을 썼다. 마지막 3 지망을 쓰지않고 잠시 머뭇하다가 나머지 하나 남은 아쿠아리움의 이름을 쓴 후, 서류를 학과 사무실에 제출했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선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생물학과를 2년 정도 다니다가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다시 공부해서 수의대에 들어온 지은의 나이가 동기들보다 좀 많았지만 활발한 성격의 지은은 동기들과 잘 어울렸다.


***     


며칠 뒤. 학과 사무실에 붙은 임상 장소 배정과 관련된 공고란을 본 지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수석입학을 하고 매 학기 장학금을 받은 내가 1 지망에서 떨어졌다고? 2 지망도 떨어지고, 3 지망인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이 나의 임상 장소라고? 돌대가리들인 강하나와 김민지가 1지망과 2지망을 차지하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강하나의 아빠가 유명한 정치인이고, 김민지는 학교 총장의 조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지은은 두 손으로 눈을 비빈 후, 다시 공고란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바탕글 글씨체로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의 단짝친구 선자는 원하던 '(주) 바이오휴먼 영장류 임상센터'로 배정받은 상황이었다.

                            



[임상 장소 배정 최종 공지]


학기: 본과 3학년

과목: 임상로테이션

기간: 2025년 7월 ~ 8월 (2개월)


최종 리스트는 아래와 같음. (총 21명, 가나다순)


[아쿠아리움]

- 강하나(21098701), 강남 코엑스 아쿠아리움

- 김민지(21098703), 잠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 박지은(21098709), 인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주) 바이오휴먼 영장류 임상센터]

- 이성진(21098713), 오송 바이오휴먼 임상1센터

- 양호성(21098719), 오송 바이오휴먼 임상2센터

- 최선자(21098720), 오송 바이오휴먼 임상3센터


[과천 서울대공원]

-..............................................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

-..............................................


[돈사]

-..............................................


[축사]

-..............................................


[양계장]

-..............................................


<참고-1> 각자 지망한 1 지망 ~ 3 지망을 최대한 선정하였으며, 1~3지망하지 않은 곳으로 배정되어 이의가 있는 학생은 2025년 6월 5일까지 담당 조교에게 문의 바람


<참고-2> 돈사와 축사로 임상 로테이션이 확정된 학생들은 사전에 [독광돈사] / [독광축사]와 연락해서 세부 일정을 조율하기 바람. 임상로테이션이 진행되는 돈사와 축사는 ㈜독광정육 자회사임. (담당자 독광정육 콜렉션팀 강련은 대리. 연락처는 아래 명함 참조)


<참고-3> 양계장으로 임상 로테이션이 확정된 학생들은 사전에 [원곡 양계장]과 연락해서 세부 일정을 조율하기 바람. 임상로테이션이 진행되는 양계장은 ㈜원곡쌩닭 자회사임. (담당자 원곡쌩닭 이준 계장. 연락처는 아래 명함 참조)




공고문을 본 지은은 바로 학과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학사 일정을 지원하는 조교인 이진 선배가 앉아 있었다. 이진 선배는 지은을 보더니 흠칫 놀랐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하였다.      


"어, 지은이 왔구나"

“선배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뭐가?”

“다음학기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에서 제가 배정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이요.”


“그거 후배님이 3 지망으로 지원한 거잖아. 뭐 3지망이지만 그래도 아쿠아리움이 된 거니까, 어쨌거나 원하는 곳으로 배정된 건데 왜 그러는 거지?”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이 제가 원하는 곳이라구요?”


“아니, 자기가 신청해 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야. 다 끝난 건데.”     


자리에서 일어선 이진 선배는 뒤에 있는 캐비닛을 뒤적거리더니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 장소 신청서 한 장을 빼냈다. 그리고는 지은에게 보여주면서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지은이 네가 3지망으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을 쓴 거잖아. 아예 지망하지 않은 곳으로 된 학생들이 더 많아. 축사나 돈사. 양계장으로 배정받지 않는 것만해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돈사나 축사. 양계장으로 배정받은 애들은 지금 난리가 났는데 너는 그래도 원하는 아쿠아리움으로 배정된 거니, 행복한 줄 알아.”


“뭐라고요? 행복한 줄 알라고요?”


화가 잔뜩 난 지은은 선배 이진을 바라봤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강남과 잠실 아쿠아리움으로 배정된 강하나와 김민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진 선배가 그 둘을 향해서 목을 까딱하니, 둘은 실실 웃으면서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진 선배가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이 맘에 안 든다면, 독광정육의 축사나 돈사, 아니면 원곡쌩닭의 양계장으로 바꿔줄 수 있으니, 변경을 원하면 지금 이야기 해.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이라도 보내달라는 애들이 넘쳐나니까.“


화가 난 지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 장소 신청서]


학과/학년: 수의대 본과 3학년

이름: 김지은

학번: 21098709  


본인은 이번 2학기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을 아래와 같이 신청합니다.


1 지망-강남 코엑스 아쿠아리움

2 지망-잠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3 지망-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상기 신청한 내용인 1지망 ~ 3지망으로 배정되는 경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확인합니다.


2025년 6월 1일


이름: 김지은

사인: 김지은






1주일 후,      


지은은 캐리어에 짐을 싣고 인천행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 내려서 2번 버스를 타고 약 10분을 달려 월미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지은은 구글 지도를 보면서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철컹철컹 철컹철컹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월미 바다열차가 레일 위에서 해안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커다란 관람차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지은은 월미 바다열차와 그 뒤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대관람차를 보면서 생각했다.


‘여기도 뭐가 많이 생기긴 했네.’



저 멀리 바닷가에서 바로 이어지는 낡은 회색 공장과 같은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은은 잠시 멈춰 선 후,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리고는 다시 캐리어를 끌고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매표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장사 안 하나?”     


쿵쿵쿵     


지은은 굳게 잠긴 정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그 순간 십 년 이상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어 보이는 녹슨 철문에서 쇳소리가 나더니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문 사이로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지은을 본 남자는 놀랐는지 입을 벌리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문 틈 사이로 내민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똥그란 두 눈에 나름 멀끔하게 생겨서 크게 벌린 입만 다물면 괜찮아 보일 것도 같았다. 그는 지은을 향해 이야기했다.      

 

“실례지만 누... 구?”

“어... 저는 S대학교 수의대에서 산업동물 임상 로테이션으로 온 김지은입니다.”     


낡은 유리정문 사이로 입믈 벌린 채 고개를 빼꼼 내민 남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면서 자신에게 인사하는 지은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문을 열더니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지은은 케리어를 끌면서 남자를 따라갔다.


손님이라고는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둡고 텅 빈 복도를 걸어가는 지은의 머리 위로, 천장에 물이 새는지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캐리어를 끌고 남자를 따라가던 지은은 걸음을 멈추고는 머리와 몸에 떨어진 물을 털어내면서 천장을 바라봤다. 시커멓고 낡은 배수관들 사이로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고, 작은 물방울은 점점 커지더니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손님이 없으니 수리를 할 형편도 안 되는 건가?’     


지은은 다시 크게 한숨을 쉰 후 다시 남자 뒤로 캐리어를 끌고 따라갔다. 이윽고 남자는 ‘총무실’이라고 쓰인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먼 길 오셨는데 차 한잔 드릴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미스문, 여기 쌍화차 두 잔 갖다 줘.”     


지은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커다란 책상뒤에 앉은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낡은 검은색 전화의 수화기를 들더니 미스문이라는 여성분에게 쌍화차를 달라고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지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안 통하는 분이군.’     


잠시 후,


미스문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진한 쌍화차 냄새를 풍기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 80년대 영화에서나 보았던 양갈래로 딴 주황색 머리에 촌스런 빨간 리본, 진한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을 바른 큰 입술의 그녀는 언뜻 보았을 때 도저히 '미스'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외모였다. 미스문의 손목에는 동물용 청진기가 걸려 있었다.   

 

‘오 마이갓, 거저 줘도 안 가질 것 같은 저 붉은 장미무늬 분홍 원피스는 또 뭐야. 손목의 저건.....설마... 저분이 이곳 월미 아쿠아리움 수의사인가? 에이 아니겠지.’   



지은이 곁눈질로 미스문을 쓱 쳐다보자, 미스문 역시 지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당황한 지은은 고개를 돌려서 미스문이 가지고 온 쌍화차를 들었다.


작은 사기그릇에 담긴 쌍화차 두 잔에는 검은색의 쌍화차와 각종 견과류, 대추들이 듬뿍 올라가 있었고, 한가운데는 작고 둥그런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 있었다.     



“드셔 바. 계란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야. 우리 미스문이 쌍화차를 찐하게 잘 다리거든.”     


‘쌍화차를 달인다고? 내가 잘못 들었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쌍화차를 달여먹어. 보나 마나 1회용 쌍화차 티백이겠지. 그리고 미스문이 이렇게 쌍화차를 타서 주는 걸 보면 수의사가 아니라, 여기서 잔심부름을 하는 직원분임이 틀림없어.’


작은 수저로 쌍화차에서 계란 노른자를 떠서 입에 넣어 우물거리던 남자는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아 참, 내 소개가 늦었나? 나는 여기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의 곰소장이야.”

“네? 공소장님이요?”


“공이 아니라 곰, 곰소장이라고 불러줘. 우선 쌍화차 식기 전에 드셔.”

“곰... 소장님이요?”


“응 난 곰씨거든. 자네 혹시 계란노른자 안 먹나?”

“네? 곰씨요? 우리나라에 곰씨가 있었군요. 아.. 쌍화차에 있는 계란 노른자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러면 오늘 잡솨봐. 맛있어. 계란만 떠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쌍화차에 풀어서 먹어도 돼. 원곡쌩닭집에서 매일 공수받는 초란이라서 신선하고 몸에 좋은 성분도 많거든.”

"초란이요?"

"응. 자네 수의학과니까 잘 알지 않나?"

"아, 닭이 산란을 시작하고 1~2주 정도에 낳는 달걀을 초란이라고 하는데, 노화 억제, 성인병 예방, 피부 탄력 유지 작용 등의 효능이 있고 세포막을 유지하며 면역기능을 유지하는데 관여한다고...."

"수의학과 학생이라 그런지 역시 잘 아는군. 말만 하지 말고 얼른 잡솨바."


잠시 쌍화차를 바라본 지은은 숟가락을 들어서 쌍화차 한가운데에 동동 띄어진 작은 계란 노른자를 퍼서, 입에 넣은 후 우물거렸다. 생각지도 않은 고소한 계란노른자와 쌉싸름한 쌍화차의 조화로운 맛에 놀란 지은은 눈을 크게 뜨고 미스문을 바라봤다. 미스문은 쌍화차 위에 띄어진 계한 노른자를 맛있게 먹는 지은을 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어때 맛있지? 우리 미스문이 쌍화차는 진짜 기가 멕히게 달인다니까. 거기에 매일 아침마다 배달되는 원곡쌩닭집의 신선한 초란이니 말해 뭐하겠어.”     


고소한 초란 노른자와 쌉싸름한 쌍화차가 입 안에서 부드럼게 휘감기는 맛에 놀란 지은은 곰소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