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5
“어머, 지은샘 여기 밥 먹으러 온 거야?”
강아지와 함께 조깅을 하던 분홍 레깅스의 젊은 여성은, 지은이 앉아 있는 카페 월미도의 테라스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당황한 지은은 자신을 보면서 아는 척을 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누구... 세요? 저를 아세요?”
여성의 옆에서 같이 뛰어가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지은의 옆으로 다가왔다. 여성은 웃으면서 지은의 옆으로 오더니 허리를 숙여 강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맞아, 아까 내가 이야기했지? 오늘부터 우리 월미 아쿠아리움에서 두 달간 수의대 로테이션 근무를 하게 된 김지은 선생이야.”
“맞아. 내 대학교 후배야. 정말 귀엽고 예쁘지?”
쭈그리고 앉아서 강아지의 얼굴을 쓰다듬던 여성은 일어서서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지은샘, 나 문선생이야. 아무리 화장을 지워서 맨 얼굴이라고 해도 나를 못 알아보다니, 섭섭한데?”
“네? 문 선생님이요? 월미아쿠아리움의? 그리고 지금 화장을 지우신 거라고요? 화장을 하신 게 아니라?”
“뭐래. 나 지금 맨얼굴이야. 운동할 때는 회사에서 처럼 진하게 화장하면 안 되지.”
“지금이 맨얼굴이라고요? 회사에서는 화장을 하시는 거고? 머리는요? 아쿠아리움에서는 주황색 머리였잖아요?”
“그거 가발이야.”
“네? 회사에 주황색 머리 가발을 쓰고 출근하신다고요?
“응, 우리 월미 아쿠아리움 식구들이 그 주황색 머리색과 붉은 장미 가운을 좋아하니까 내가 맞춰주는 거지.“
“맞춰준다구요?”
“회사생활 별거 없어. 매일 좁은 [월미수산] 사무실에 앉아서 얼굴 맞대고 일하는 회사 직장 동료들끼리 업무시간이라도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게, 지겨운 회사생활을 잘 버티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거든.”
“회사 생활이요?”
“당연하지. 나는 지금 월미수산 소속의 회사원이니까. 곰소장도 마찬가지고. 지은샘도 우리 아쿠아리움에서 2개월간 업무를 하니까 [월미수산] 회사원이 된 거 아니겠어? 나는 지은샘의 회사 선배 문선생이고.”
“어... 그렇죠.”
문 선생의 대답을 들은 지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아지를 바라봤다. 지은과 문 선생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강아지가 크게 멍! 하고 짖었다.
***
지은은 카페월미도의 야외 테라스에서 자기가 문 선생이라고 말하는 여성과 나란히 앉았다. 지은의 옆으로 강아지가 다가오더니 얌전히 바닥에 앉았다. 아직까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멋진 여성이 월미 아쿠아리움의 문선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지은은 눈이 똥그래진 채 여성과 지은의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강아지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강아지는 문 선생을 바라보는 지은을 바라본 후 멍! 하고 크게 짖었다.
“우리 지은선생이 왜 그렇게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는 건지 궁금하다는데?”
“어.... 사무실에서 뵐 때와는 너무 달라서요.”
“우리 여성들은 화장을 할 때와 안 할 때가 다르지?”
“그.. 그렇죠.”
“나도 같은 거야. 화장할 때와 안 할 때가 다른 거라고 생각해 줘. 자기가 아마 앞으로 2개월간 우리 [월미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하면 내가 왜 그렇게 화장하고 다니는지 알게 될 거야.”
“아.. 네.... 그런데 저희 학교 선배님 이신데 아까 몰라뵈서 죄송했습니다.”
“괜찮아.”
“그나저나 아까 쌍화차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계란 노른자가 쌍화차와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어요. 죄송한데 어디 브랜드 쌍화차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사 먹어 보게요.”
“당연히 맛있지. 내가 우리 아쿠아리움 식구들을 위해서 정성 들여 달이는 건데. 그거 안 파는 거야.”
“네? 시판용 쌍화차가 아니라 선배님이 직접 달이신 쌍화차라고요?”
“응, 나 한의사 자격증도 있거든. 나만의 특별 비법으로 만든 건데 나중에 알려줄게.”
“네에? 한의사 자격증이요?”
“응. 여기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의 식구들이 워낙 건강해서 시간이 많이 남더라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한의학도 공부했지. 아 참. 나 일반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증도 있어. 우리 아쿠아리움 애들이 유리벽에 부딪혀서 뼈가 자주 부러지거든. 그래서 하나 취득했지.”
“네? 한의사랑 전문의 자격증은 하루 이틀에 따는 게 아닌데, 선배님 연세가....?”
“에이. 지은샘 왜 이래. 여자 나이는 물어보는 거 아니지.
“우리 자기도 여자 나이 물어보는 거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자기요? 강아지 이름이 혹시?”
“아. 맞아. 우리 애 이름은 ‘자기’야.”
“우와. 강아지 이름이 ‘자기’라니.....특이한 이름인데 왠지 부르기 정감도 가고. 그나저나 강아지가 하는 소리를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당연하지, 지은샘도 우리 [월미 아쿠아리움]에서 오래 일하면 나처럼 다 이해하게 될걸?”
강아지가 짖자 문 선생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머, 우리 자기 밥 줘야 하는 시간이다. 나 지금 집으로 가야겠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봐.”
“선배님 댁이 이 근처예요?”
“응, 저기 아파트 보이지? 나 저기 살아.”
“아.”
“나는 저 작은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매일 출퇴근하는 게 너무 싫거든. 월미도가 은근히 넓어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직주근접! 들어봤지?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직주근접이 너무 중요하니까. 우리 자기랑 협의해서 이곳 월미도에 있는 집을 계약했지. 덕분에 이렇게 퇴근하자마자 우리 자기랑 산책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구나.”
“나 진짜 가야 할 거 같아. 우리 자기가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난리네. 월요일에 봐.”
“네, 들어가세요 선배님, 안녕 자기야!”
강아지는 지은의 다리로 와서 몸을 비빈 후, 문 선생과 함께 아파트 방향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강아지 이름이 ‘자기’라니, 진짜 너무 잘 지었는데? 아닌가? 남자친구가 알면 좀 그러려나?’
지은은 자리에서 남아 있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두툼한 커피잔이라서 그런지 커피의 따뜻한 온도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
잠시 후,
월미 아쿠아리움 인근의 한 아파트로 들어간 문 선생과 강아지는 베란다 앞에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서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는 103동 104호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 선생은 거실의 창문 쪽으로 쪼르르 뛰어가서 커튼을 쳤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치니 집안이 컴컴해졌다.
멍!
그 순간, 강아지는 스멀스멀 젊은 남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강아지는 잘생긴 훈남으로 변하더니 커튼을 치고 있는 문 선생의 뒤에서 백허그했다. 단단한 체구의 남자의 키는 문 선생보다는 조금 작아 보였다. 남자가 문 선생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 밥 먹자. 배고프다.”
문 선생이 커튼을 다시 걷자, 밝은 햇살이 거실과 부엌까지 환하게 들어왔다. 문 선생이 뒤로 돌아서 남성을 꼭 껴안자 남자가 문선생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좋아.”
문선생이 입고 있는 분홍색 레깅스가 순식간에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주방복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문선생의 변한 옷을 본 남자가 말했다.
“자기는 옷을 정말 잘 입는 거 같아.”
“우리 자기 기다려. 내가 맛있는 청국장 끓여줄게.”
잠시 후, 문 선생과 젊은 남성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청국장을 가운데에 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남자가 문선생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우리 자기는 청국장을 정말 맛있게 잘 끓이는 거 같아.”
***
밥을 거의 다 먹어가는데 문 선생이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남자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자기야 우리 그때 말 한 거 있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밥을 먹던 남자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우리 그때 다 협의한 내용이잖아. 난 싫어.”
“그래도..”
“자꾸 그 이야기하면 나 영원히 자기 옆에서 강아지로 살 거야.”
남자의 말을 들은 문 선생은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