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3
방 안으로 들어온 지은은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월미도가 이렇게 풍경이 좋은 곳이었나? 이태까지 왜 몰랐지?'
같이 따라 들어온 종업원이 지은의 캐리어를 구석에 갖다 놓으면서 말했다.
“이 방은 저희 월미호텔에서 두 번째로 뷰가 좋은 방입니다."
“두 번째로 좋은 뷰요? 여기보다 더 뷰가 좋은 방은 대체 어떤 게 보이길래..."
“음. 여기보다는 조금 더 인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방의 뷰를 더 좋아합니다. 저렇게 시원하게 야자수까지 보이는 방은 이 방이 유일하거든요. 다른 방은 파도가 너무 커서 저는 별로더라고요. 그 거대한 나자레의 파도 속에서 서핑하는 게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구요."
"나자레가 어디에요? 서핑하는 게 보인다구요?"
"아.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편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
종업원이 방에서 나가자 지은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점심을 먹기 위해서 호텔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은의 눈에 저 멀리 보이는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 월미도’였다.
‘멀리 가기 귀찮으니까 저기서 간단하게 커피랑 샌드위치로 대충 때워야겠다.’
안으로 들어간 지은은 아메리카노와 치킨샌드위치를 주문한 후, 테라스로 가지고 나와서 먹기 시작했다. 저 멀리 월미 은하레일이 바다 방향으로 천천히, 어린아이 걸음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은은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열차가 저렇게 느려 터져서 어디를 간다는 거지? 여기 직장인들이 저 느린 걸 왜 타고 다니는지 대체 이해가 안 되네.”
***
잠시 후, 오후 1시가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12시 58분 정도였다.
샌드위치를 거의 다 먹어가는 지은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 세 대를 응시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카페테라스 앞에 반짝거리는 검은색 제네시스 G90 세 대가 연이어 주차를 하더니, 차문이 열리고 열 명정도 되는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은 차량 앞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고, 그중 두 명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더니 카운터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열 잔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친 후 한 명이 귀에 걸린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에 손을 대더니 크게 이야기했다.
“네, 수석 보좌관님. 저희 지금 월미도입니다.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네, 그러면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네, 말씀하신 선물은 차질 없이 준비했습니다. 네, 네, 여기서 정확하게 1시에 월미수산으로부터 VIP 님의 선물을 챙긴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면 잠시 후 뵙겠습니다.”
‘수석 보좌관? VIP? 대체 얼마나 높은 사람이길래...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에, 젊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혹시 다단계인가?’
지은은 커피를 마시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들을 바라봤다.
잠시 후, [월미수산]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봉고트럭이 다가오더니 검은색 승용차 앞에 주차했다.
트럭의 문이 열리더니 수산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파란 고무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러자 제네시스 옆에 서서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들이 작업복을 입은 남자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는 봉고트럭 화물칸에서 금빛 상자 여러 개를 꺼내 자신들이 타고 온 승용차 트렁크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금빛 상자들이었는데, 남자들은 두 손으로 소중하게 하나씩 상자를 들어 검은 제네시스 트렁크에 조심조심 놓고 있었다.
“주문하신 아이스아메리카노 열 잔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카페 안에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모두 챙기더니 바깥으로 나가 승용차에 앉아있는 남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커피를 모두 나눠준 남자는 맨 뒤에 있는 승용차를 타더니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지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얼마나 귀중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길래 저렇게 신주단지 모시듯이 가져가는 거지? 수석 비서관? VIP? 어디 뭐 대기업 회장님이나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보니 쟤네들 다단계가 확실하구먼. 아직 젊은 애들이... 쯧쯧...’
남자들이 탄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월미수산] 봉고트럭도 시동을 걸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은은 멀어지는 트럭 뒤의 [월미수산] 로고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월미수산이 굉장히 큰 회사였구나. 아무리 망해가지만 아쿠아리움도 하나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손님도 하나 없는데 매달 운영비 적자가 얼마겠어..’
치킨 샌드위치를 다 먹은 지은은,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으음...이 집 커피향 좋은데?'
***
잠시 후,
지은이 앉아 있는 의자 옆에, 남자 두 명이 앉아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하는지, 듣고 싶지 않았지만 지은은 남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대화를 반 강제로 듣게 되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 근처에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들인 듯 보였다. 한 명은 주황색과 흰색의 화려한 줄무늬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와이셔츠 중간에 특이하게도 흰 물방울무늬 두 개가 있었다. 지은은 남자가 입고 있는 흰 물방울무늬가 있는 검은 와이셔츠를 바라봤다. 그들의 목에는 ‘월미수산’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가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말했다.
“야, 김대리. 너는 주말에도 회사 근처에 있고 싶냐? 징글징글하지도 않냐? 주말에도 회사 근처에서 방황하는 놈은 우리 회사 임직원 중에서 너밖에 없을 거다.”
“회사 근처가 어때서? 여기 월미도는 카페도 많고 좋은데?”
“아이고. 네가 아직 회사를 덜 다녔구나. 좀만 더 있으면 너도 나처럼 주말만 되면 회사 근처를 바라보지도 않게 될 거다.”
“요새 뭐 스트레스받는 일 있나 봐?”
“아휴, 얼마 전에 우리 팀으로 새로 온 말부장이 완젼 미친 상 또라이더라고. 그동안 말로만 또라이라는 걸 들었는데, 오늘 아주 말부장이 지랄 발광을 했다.”
“아, 나도 들었다. 생 트집 잡는 걸로 아주 유명하던데.”
“말도 마라. 보고서를 제출하면 내용을 보는 게 아니라 오타만 봐요. 아까는 나를 급하게 부르더니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 했길래?”
“보고서 마지막에는 콤마(,)가 아니라 쩜(.)이 들어가야 한다면서 ‘네가 그러고도 대리냐?’고 소리치고 보고서를 사무실 바닥에 집어던지더라니까. 와.. 씨. 나 피가 거꾸로 돋아서 사표 던지고 올 뻔했다.”
“와. 미친.. 그 새끼 진짜 또라이네. 보고서의 쩜(.) 하나 때문에 말부장이 지랄한 거야? 야.. 너 진짜 고생한다. 월미수산 3년 차인데 이제 좀 살만해지니 개 쌍 또라이 상사 만나 너 진짜 고생한다. 아이고..."
"오늘 금요일이니 오전근무잖아. 내가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한다고 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일 못하는 사람이 빨리 퇴근한다고 중얼거리더라고. 와..씨. 내가 그거 듣고 멱살 잡을 뻔 했다. 말부장 오기 전에 있던 아부장은 11시 30분만 되도 불금이니 퇴근하라고 말하고 자기가 먼저 퇴근했는데... 아휴...말부장은 실력도 없는 주제에 회사에 오래 남아있는 게 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니까. 그래놓고 지는 11시 40분에 일이 있다면서 나가버리고. 와...진짜. 내가 12시 정각에 퇴근하면서 진짜 와...이씨...."
"아이고...내가 술 한잔 사줄게. 가자.”
“지금? 아직 낮인데?”
“퇴근했는데 뭐 어때? 나의 소중한 친구가 미친 또라이 말부장에게 보고서의 쩜(.) 하나로 깨진 것을 기념하면서 내가 조개찜에 소주 쏜다. 가자.”
“좋아. 콜, 가자.”
둘은 앞에 있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시원하게 원샷하더니 저 멀리 보이는 조개찜 집 방향으로 사라졌다. 카페에서 나가서 조개찜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하와이안 티셔츠의 남자와 흰 땡땡이 무늬가 있는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지은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낯이 익은 장면인데... 어디서 봤지?'
잠시 생각하던 지은은 방금 전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에서 나오면서 봤던 흰동가리와 샛별돔, 그리고 말미잘이 있던 작은 어항 속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
[방금 전]
곰소장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데 붉은 말미잘하나와 흰동가리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그 물고기) 그리고 온몸이 까맣고 몸에 두 개의 흰 점이 있는 샛별돔 한 마리가 있는 작고 평범한 어항이 지은의 눈에 들어왔다.
지은은 가던 길을 멈추고 어항을 바라봤다. 검은 샛별돔은 원래 말미잘과 공생관계라서 잘 지내는데, 이상하게도 커다랗고 붉은 말미잘은 샛별돔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어항을 유심히 바라보니 곰소장이 지은을 보면서 한마디를 하였다.
"말부장이 온 지 얼마 안돼서 저렇게 샛별돔을 못살게 구는군. 재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런 거 같아. 뭐, 곧 사이좋아지겠지. 신경 쓰지 말고 나가자고."
"말부장이요?
"아, 저기 보이는 붉은 말미잘을 미쓰문하고 내가 그냥 부르는 별명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되."
"아. 네."
지은은 곰소장을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지은이 곰소장을 따라 나가는 동안 말부장이라고 불리는 붉은 말미잘은 계속해서 샛별돔을 공격하고 못살게 굴고 있었다.
****
잠시 생각한 지은은 고개를 도리도리 지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에이 아니겠지. 내가 오늘 일이 없으니 이상한 상상을 하는군.....'
그 순간 지은의 앞으로 레깅스를 입은 날씬한 여성이 귀여운 강아지와 조깅을 하면서 지나갔다. 지은은 여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와...여자인 내가 봐도 몸매 죽이는데, 남자들에게 인기 정말 많겠네.."
조깅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멈추더니 지은이가 앉아 있는 테라스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면서 말했다.
“어머, 지은샘 여기 밥 먹으러 온 거야?”
몸에 딱 붙는 분홍색 레깅스를 입고,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예쁜 여자가 아는 척을 하자 지은은 당황했다. 지은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누구... 세요? 저를 아세요?”
같은 시각, 월미호텔 1층에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색과 하얀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비키니와 수영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커다란 서핑보드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리셉션 앞에 나란히 섰다. 교어남 호텔 매니저는 이들과 친분이 있는지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황제님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여기 월미도는 꽤 멀군요. 저희가 오래 전에 예약한 '나자레 해변' 룸은 준비 되었나요?"
"그럼요, 저희가 준비 다 해놓고 황제님들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어남 매니저가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종업원 두 명이 다가오더니, 황제라고 하는 남녀가 가지고 온 커다란 서핑보드를 각각 하나씩 들고 월미호텔 1층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나자레' 룸으로 안내했다. 교어남 매니저가 종업원 뒤를 따라가는 남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재미있게 즐기다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자레 해변은 서핑하기 아주 좋은 날씨 입니다."
종업원은 황제라고 부른 남녀를 1층 0001 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문 앞에서 종업은 남자에게 키를 주면서 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남자가 종업원에게서 받은 키를 문에 대자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처얼썩!!!!!!!!!!!!!!!!!!!!!!!!!!
문을 열자 지구상에서 가장 큰 파도가 치는 포르투갈 나자레의 해변이 펼쳐졌다. 거대한 나자레 해변의 파도로 인해서 월미호텔 1층 0001호 앞에 서 있는 종업원의 바로 앞까지 물이 넘실거렸다. 남녀 둘은 종업원이 들고 있던 서핑보드를 받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은 남녀를 향해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나자레 해변의 집채만한 파도 위에서 두 명의 남녀가 멋진 포즈로 서핑을 타고 있었다. 파도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나자레 해변 여기저기 '서핑 금지' 푯말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