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4
그날, 월미수산 ‘고객만족팀’에 근무하는 해부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월미수산 최고 VVIP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VIP가 아니었다. 중요도에 따라 V를 붙여야 한다면 V자 백만 개를 앞에 붙여도 모자를, 월미수산의 최대 주주이면서, 월미수산 이사진의 멤버이고, 월미수산 CEO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그는 VIP 중의 VIP였다.
VIP의 비서로부터 받은 주문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팩스를 전달받은 고객만족팀 해대리가 저 멀리서 달려와 급히 전해준 상품 주문서에는 아래와 같이 상세 주문사항이 적혀 있었다.
[특별상품 주문서]
VIP고객에게 드릴 선물 두개를, VIP의 VIP 고객에게 드릴 월미수산 최고의 선물 다섯 개를 특별히 엄선해서 준비할 것.
VIP의 특별 요구사항
1. 선물 다섯 개는 고객만족팀에서 책임지고 엄선할 것
2. 모든 선물은 고급스럽고 영롱한 금빛 자개상자에 담아 준비할 것
3. 2025년 6월 9일 오후 1시 ‘카페 월미도’ 앞에서 VIP 비서팀이 대기할 예정임
4. 모든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질 없이 준비하기 바람
이상 끝
VIP 비서팀 수석 비서관 별주부
해부장은 주문서를 보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만족팀’ 전 직원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사무실에 있는 ‘고객만족팀’ 다섯 명이 해부장 앞으로 급히 모여들었다. 해부장은 직원을 향해 이야기했다.
“자, 다들 알겠지만, 우리 고객만족팀은 VIP의 만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팀이다. 이런 우리에게 VIP의 상품 주문서가 도착했다. 그것도 ‘특별’ 상품주문서다. 내가 읽어줄 테니 다들 주의해서 듣도록."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은 집중해서 해부장을 바라봤다.
"VIP고객에게 드릴 선물 두 개를 응? 다음에 쉼표(,)가 있네. 그러면 이 앞의 문장은 모두 취소하고, 다음 문장부터 진짜니까. 다시 읽어주겠다.”
해부장은 목을 가다듬더니 다시 읽어 내려갔다.
“VIP의 VIP 고객에게 드릴 월미수산 최고의 선물 다섯 개를 특별히 엄선해서 준비할 것.”
이 말을 들은 고객만족팀의 전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VIP의 VIP 고객이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해부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본 후, 직원들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지금 시간이 11시인데, 오후 1시 ‘카페 월미도’ 앞에서 VIP 비서팀이 대기할 예정이라잖아? 시간이 두 시간도 안 남았다. 거기 해사원은 우리 월미수산 상품 카탈로그(catalog) 해차장에게 가져다주고, 해대리는 금빛 자개상자를 만드는 전선생에게 빨리 전화해서 상자 확보하고, 거기 해과장은 카페 월미도에 전화해서 VIP 비서진이 혹시라도 일찍 도착한다면 연락 달라고 미리 이야기해 놔. 해차장은 카탈로그(catalog)를 뒤져서 VIP 선물 다섯 개가 뭐가 좋을지 빨리 고민해서 리스트 만들어봐. 자자. 이제 각자 맡은 일을 하고 해차장은 내 자리로 와서 최종 선물 리스트를 나와 함께 체크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해부장 앞에 모여있던 고객만족팀 직원들은 각자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서 부리나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해부장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특별상품 주문서]를 다시 바라봤다.
***
잠시 후,
해차장이 카탈로그를 뒤져서 엄선한 선물 리스트가 적힌 서류를 가지고 해부장 앞으로 갔다.
“여기 VIP의 VIP 분을 위해서 엄선한 선물 리스트입니다.”
초조하게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손톱을 깨물고 있던 해부장은, 해차장이 가지고 온 서류를 낚아챈 후 찬찬히 바라봤다.
“오, 선물 리스트 좋은데? 잘했어. 이대로 발주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발주하고 나서 카페 월미도 앞에서 선물이 잘 전달되는지 해차장이 직접 눈으로 체크해, 아니다. 이건 중요한 일이니 내가 직접 내 눈으로 상품 전달 확인하겠다.”
“부장님께서 직접이요? 저희들이 가서 확인해도 되는데요?”
“아냐. 내가 카페 월미도에 가서 배달되는 거 확인하고 퇴근할 테니까. 다들 이따가 11시 50분에 퇴근해. 주말 잘 보내고. 아! 맞다. 하나 중요한 것을 이야기해 줄 테니 숙지하도록.”
직원들이 모두 해부장을 바라봤다.
“VIP님의 수석 비서관 별주부 전무님은 비즈니스 문서를 만들 때 쉼표(,)를 자주 사용한다. 다들 알겠지만 VIP 비서실에서 만드는 모든 비즈니스 문서에서 쉼표(,)를 쓰면 그 앞 문장은 모두 없던 내용이 되는 거니, 다들 특히!!! 주의해서 읽도록.”
“네, 알겠습니다."
“내가 지금 오바하는 거 같지? 나중에 너희들이 혹시 실수해서 문서에 있는 쩜(.)과 콤마(,)를 혼동해서 별주부 전무님께 지적당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너희들의 제사날이 될 거다.”
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해부장을 바라보면서 웅성거렸다. 해차장이 해부장을 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쉼표(,)를 특히 주의도록 하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부장님.”
“이 곳 월미수산 비즈니스 문서에서 쉼표(,)는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자, 그러면 나는 지금 먼저 나가볼게. 다들 퇴근 준비 하도록, 오늘 다들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부장님.”
직원들이 모두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본 해부장은 옷을 챙겨 입은 후, 사무실의 문을 나갔다.
[같은 시간]
한 꼬마 여자아이가 월미아쿠아리움에서 해마들이 있는 수족관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수족관 안의 해마들은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더니 갑자기 구석으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흩어지고 잠시 후 다시 모여서 입을 뻐끔거렸다.
잠시 후, 작은 조개가 입을 벌리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같은 돌맹이를 뱉어냈다. 해마 한마리가 조개의 입에서 튀어나온 돌을 잽싸게 입으로 물었다.
해마는 입에 돌맹이를 문 채 빠르게 헤엄쳐 오더니, 입에 물고있던 돌맹이를 수족관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해마에게 전달했다.
잠시 후, 돌맹이를 전달받은 해마 한 마리가 부르르 떨더니 수족관과 연결된 플라스틱 배수관 방향으로 빠르게 헤엄쳐갔다. 그리고는 수족관 천장에 있는 배수관들 사이로 비밀스럽게 쏘옥 ~ 올라갔다.
아이의 머리 위에 있는 배수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배수관을 바라보자,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기 월미아쿠아리움 곧 문을 닫는다고 하니, 우리 이제 나갈까?”
***
잠 시 후
월미 아쿠아리움 천장의 배수관들이 모이는 커다란 방에는 파이프의 지름이 사람 키보다 커보이는 PVC 관 열 개 정도가 있었다.
저 멀리서 소리가 나더니 한 PVC 관에서 양복을 입고 멀끔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옷에 뭍은 먼지를 털면서 옆에 있는 PVC 관을 통해 나온 붉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를 보면서 말했다.
“오, 말부장, 오래간만인데? 새로운 팀은 잘 적응했고?”
“우리 팀? 그럼, 우리 팀 직원들 모두 착하고 일 잘하지. 그나저나 해부장, 이 시간에 벌써 퇴근하는 거야? 웬일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예전 같지 않은데?”
“오늘 일이 있어서 카페 월미도에 갈 일이 있어.”
“그래? 그러면 나랑 같이 카페 월미도에서 차나 한잔 마실까? 나도 거기서 누구 만나기로 했거든.”
“좋아. 가자.”
해부장과 말부장은 카페 월미도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카페 월미도 야외 테리스에서 커다란 기둥으로 가려져서 밖은 물론 카페 안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앉았다. 해부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우리 애들이 보낸 주문서는 잘 받으셨죠? 네네, 1시에 그러면 차질 없이 카페 월미도 앞으로 배달되는 거죠? 네네,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전무님이 얼마나 꼼꼼하신데요. 네네, 형님, 조만간 만나서 소주 한잔 하시죠. 네, 들어가세요.”
잠시 뒤, 편한 복장의 지은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서 치킨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해부장과 말부장이 앉아있는 야외 테라스의 구석진 자리 옆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저 멀리 월미바다열차가 바다 방향으로 천천히, 어린아이 걸음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은은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여기 월미도 직장인들이 왜 저 느린 열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해부장과 말부장은 지은의 혼짓말을 들었는지 흘깃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는 척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반짝거리는 검은색 제네시스 G90 여러대와 하얀색의 [월미수산] 화물차 하나가 카페 앞에 주차를 하더니 금빛 상자 여러 개를 승용차의 트렁크로 옮긴 후,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은의 옆으로 주황색과 흰색의 하와이안 티셔츠 남자와 흰 땡땡이 무늬가 있는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앉았다. 흰 땡땡이 무늬가 있는 검은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는 오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씩씩대면서 직장상사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둘은 앞에 있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시원하게 원샷하더니 저 멀리 보이는 조개찜 집 방향으로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남자 둘의 뒷모습을 지은이, 그리고 그 뒤를 씁쓸한 표정의 말부장과 해부장이 말없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