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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Oct 10. 2024

Giant Pacific and wolfi

[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6

오래전 그날은 전 세계의 모든 문어 대표들이 북유럽의 노르웨이 앞바다에 모여서 세미나를 하는 날이었다.


세미나의 주제는 ‘문어들의 지적 능력’에 관한 세미나였는데, 메인 발표자는 태평양에서 온 태평양대왕문어(Giant Pacific Octopus) 문선생이었다. 그녀는 유유히 헤엄쳐서 오더니 연단에 서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가 발표하는 논문의 제목은 “An Empirical Study on the AI Utilization Capabilities of Giant Pacific Octopus (태평양대왕문어의 AI활용 능력에 대한 실증적 연구)”였다.      


태평양 대왕문어인 문선생을 보고 그곳에 모인 모든 문어들은 가까이 가지 못하고 저 멀리서 그녀가 발표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다리와 다리폭은 10m가 넘었고 그녀의 머리 끝부터 다리 끝까지의 길이는 30m, 심지어 그녀의 몸무게는 거의 1톤으로 다른 평범한 태평양 대왕문어에 비해서 최소 10배, 아니 거의 100배 이상 컸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던 바다의 괴물 크라켄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녀 역시 아버지인 크라켄과 같은 무서운 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들 벌벌떨며 다가오지 못한 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문선생은 멀리서 자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문어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같은 종족은 안 잡아먹어요. 그렇게 멀리서 보시면 잘 안 보이실 텐데 이쪽으로 가까이 와서 질문해 주세요.”     


그러나 모든 문어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선생은 생각했다.     

 

‘나의 이 거대한 몸 때문에 이곳 문어들 세계에서도 이들과도 어울릴 수 없는 것일까? 지금과 같이 인간들 틈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혼자 사는 게 오히려 나에게 더 맞는 것일까?’     


좌절감과 회의감을 느낀 문선생은 발표를 빨리 마치고 세미나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에게는 여기보다는 인간 세계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아.’     


그 순간이었다.      


***     


“문선생님, 혹시 AI 중에서 어느 기법을 사용하셨는지 그리고 실증연구조사 샘플은 얼마나, 어떻게 확보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낮은 중저음의 멋진 남자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문선생에게 연구 논문에 대해서 질문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질문이 반가웠던 문선생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AI 기법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사용했고, 분석에 사용된 샘플은 태평양에 거주하는 대왕문어 약 100명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실시하였습니다.”


“적절한 기법과 샘플 수를 사용하셨군요. 최종 결과는 그래서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마음을 뒤흔드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반한 그녀는, 얼굴이 발개진 채 질문한 남자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멋진 중저음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문선생은 두리번거리면서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어디 계시는지요? 제가 눈이 좀 안 좋아서요.”

“아! 제가 좀 작아서 안 보이시는가 봅니다. 지금 올라갑니다. 여깁니다.”     



거대한 문선생의 눈앞으로 파란 ‘옥토푸스 올피(Octopus wolfi)’가 헤엄치면서 올라갔다. 옥토푸스 올피는 성체 크기가 3cm 밖에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어였다. 그러나 문선생의 눈에는 지금 이순간 그 어떤 문어보다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문어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눈앞에서 귀엽게 헤엄치고 있는 옥토푸스 올피를 보자 문선생의 얼굴이 발개졌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옥토푸스 올피가 다시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기 노르웨이 해는 추운 지역이라서 따뜻한 태평양에서 오신 문선생님은 지금 좀 추우실 겁니다. 제가 담요 하나를 가져다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 참, 제 이름은 올피입니다. 앞으로 올피 선생으로 불러주세요.”     


옥토푸스 올피는 담요를 가지러 다시 멀리 헤엄쳐서 갔다. 잠시 후, 올피는 자신보다 더 큰 담요를 낑낑대면서 들고와 문선생에게 덮어줬다. 물론 문선생의 거대한 몸은 올피가 전해준 담요를 덮었다고 헤서 따듯해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선생은 자신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드디어 운명의 상대를 만났구나.'


***     


문선생과 올피선생은 그후로도 자주 만나서 학술적인 이야기를 했고 결국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둘의 체력적인 차이를 인간으로 변신해 해결하기로 협의했다. 인간으로 밖에 변신할 수 없는 거대한 태평양대왕문어인 문선생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어인 옥토푸스 올피는 인간을 포함해서, 강아지와 같은 작은 동물로도 변신이 가능했다. 둘은 긴 회의 끝에 월미도의 한 아파트에서 정착해서 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아기를 원했던 문선생과는 달리, 올피는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문어는 수컷의 경우 보통 교미 이후 몇 달 내로 죽게 되고, 암컷의 경우 알이 부화할 때까지 그 옆을 지키고 있다가 알이 부회되면 새끼들을 바다로 내보내주고 눈을 감기 때문이었다. 물론 심해에 사는 대왕문어는 알이 부화되는 데 수 년이 걸리기 때문에 다른 문어들보다 오래 살 수는 있지만, 새끼를 낳음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이 세상 모든 문어들의 숙명이었다.      


***     


말 없이 밥을 먹는 문 선생을 보면서 올피가 말했다.     


“내가 죽는 건 괜찮아. 그러나 나는 자기가 오래오래 살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했으면 좋겠어. 단지 그것 뿐이야.”     


올피는 식탁에서 일어나서 말 없이 밥을 먹는 문선생의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자신을 안아주는 올피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 먼저 씻을께.”     


잠시 후, 샤워를 하던 문선생이 있는 화장실에서 거대한 빨판이 달린 붉은 문어발 하나가 나오더니 식탁에 앉아 있는 올피를 휘감았다. 그리고는 올피를 번쩍 들더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면서 문선생이 말했다.       


“그래, 우리 둘이 행복하면 되지. 우리끼리 알콩달콩 잘 살자.”    

 

***     


약 4시간 전,      


월미아쿠아라움의 한 수족관에 수시로 색상을 바꾸는 화려한 모습의 갑오징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밝은 색을 내는 갑오징어를 향해 나머지 갑오징어들이 모여들었다.   

   

“부장님은 퇴근 안 하세요?”

“어, 나는 잠시 보고서를 쓸 게 좀 남아 있어서. 먼저 퇴근들 해, 내 눈치 보지 말고.”

“부장님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히 괜찮지,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퇴근하는데 상사 눈치를 보나?”

“어....”

“진짜 괜찮다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퇴근들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너무 늦게까지 계시지 말고 부장님도 빨리 마치시고 퇴근하세요.”

“그래그래. 들어가. 다들 주말 잘 보내고.”

“네, 부장님 그러면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인사팀의 갑오징어 팀원들은 모두 허리를 굽혀 아직 책상에 있는 갑부장에게 인사를 한 후, 우르르 구석으로 헤엄치더니 플라스틱 배수관을 통해서 수족관을 빠져나갔다.        



***     


우당탕탕탕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천장의 배수관들이 모이는 커다란 방에 있는 PVC 관을 통해서 약 9명의 직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들의 목에는 [월미수산 인사팀] 이라고 적힌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막내로 보이는 갑사원이 월미바다열차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갑차장을 향해 말했다.      


“저희만 이렇게 먼저 퇴근해도 되는 걸까요?”

“아.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되, 아무래도 요새 우리 월미수산 콜센터에 문제가 좀 있어서 부장님께서 고민이 많으시거든. 지금은 부장님만의 시간을 가지고 최종 결정을 하셔야 할 때니까.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월미수산 콜센터에 문제가요? 어떤 문제이길래...”     


***     


[월미수산] 인사팀 갑부장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얼마 전 오픈한 ‘월미수산 콜센터’에서 최근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퍼런 청상아리들로 구성된 ‘월미수산 콜센터’는 [월미수산]에서 가장 큰 골치덩어리 팀이었다. 모든 콜센터의 생명은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곳 청상아리들은 자신들의 힘과 무섭게 생긴 외모를 이용해서 전화로 문의를 하는 고객들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콜센터 팀장인 청팀장은 인사팀에서 아무리 주의를 줘도 효과가 없었다. 인사팀이 직접 ‘월미수산 콜센터’에 가서 청팀장에게 주의를 해도 청팀장은 그 앞에서만 네네 하면서 고개를 숙였지, 정작 갑부장 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위협 아닌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주 갑부장이 콜센터를 찾아가 주의를 주자, 청팀장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하면 될 거 아닙니까? 안그래요 갑부장님? 그나저나 오늘 인사팀에서 저희 콜센터에 갑질 하러 오신 거는 아니시죠? 요새 갑질하면 우리 [월미수산] 노조에서도 가만있지 않는 거 아시죠? 제가 노조 간부라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쇼. 그나저나 다음 주 인턴사원 한 명 보내주신다고 하셨죠? 과연 누구를 보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잘 지켜보겠습니다. ”


이러한 골치덩어리 콜센터에 과연 인턴사원 중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두고 갑부장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갑부장은 인턴들의 이력서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물망에 오른 인턴들은 아래의 6명 이었다.


①고인턴 (고등어)

②노인턴 (노랑가오리)

③가인턴 (가물치)

④참인턴 (참치)

⑤혹인턴 (혹등고래)     


고부장은 인턴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가만보자, 고인턴은 아마 콜센터 근처를 가기도 전에 심장마비 걸릴게 확실하고, 노인턴은 꼬리에 독이 있지만 아직은 그 독이 약해서 청상아리들이 겁내지 않을 거 같고, 가인턴은 가물치의 무대뽀 정신으로 담수가 아닌 청상어 수조에서도 잘 버틸 거 같긴 하지만 웬지 미심쩍단 말이지. 태평양 바다에서 매일 헤엄치던 참인턴은 답답한 콜센터에서 일하라고 하면 바로 도망가 버릴게 확실하고. 혹인턴은 콜센터의 청상아리들이 매일 뚱뚱하다고 놀려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게 뻔하고, 어휴...누구 하나 만만한 놈이 없네.'


    


그 순간 갑부장의 눈에 마지막 장의 인턴 사원 이력서가 눈에 들어왔다. 갑부장은 마지막  이력서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친구가 있었구나. 내가 왜 이 친구를 까맣게 잊고 있었지? 이 친구라면 콜센터의 청상아리들을 확실하게 휘어잡을 수 있겠는데?“     


갑부장의 손에 들린 이력서에는 세상 순진하게 생긴 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어리버리한 표정의 남자의 이름이 적힌 곳에는 ‘범사원 (Killer whale)’이라고 적혀 있었다.


⑥범인턴 (범고래-Killer 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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