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7
청상아리들이 모여서 근무하는 이곳 [월미수산] 콜센터에는 크게 두 가지 업무가 있다. 고객이 먼저 월미수산으로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Inbound’ 업무와 월미수산이 고객에게 전화를 먼저 하는 ‘Outboud’ 업무가 바로 그것이었다.
고객이 궁금해서 먼저 월미수산으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Inbound 와, 월미수산의 매출액 증대를 위해서 회사에서 먼저 고객에게 전화해서 물건을 판매하는 Outbound 업무는 차원이 다른 업무였다.
특히, Outboud 업무는 월미수산의 품질 좋은 해산물과 건어물을 팔기 위해서 전국에 있는 고객에게 전화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 고객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다.
혹시나 까칠한 고객에게 된통 걸리는 날은 그 상담원의 마음과 감정은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아마도 그래서 인사팀에서 이곳 콜센터 직원들을 까칠한 청상아리로 채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은 통화하는 소중한 월미수산의 고객들에게 항상 까칠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
갑오징어 갑부장이 월미수산 콜센터로 범사원을 보내기로 결정한,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이었다. 콜센터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청팀장이 막 출근해서 비서가 타주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있었다.
청팀장의 자리 뒤에는 작년 월미수산 노조 파업당시 찍은 사진이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파업 당시 청팀장은 월미수산 노조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파업을 하는 사람들 맨 앞 가운데에,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시위를 하는 청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띠리링
‘아이씨. 누가 재수 없게 월요일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번호를 보니 콜센터의 막내인 청사원이었다. 포악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청상아리들과는 달리, 콜센터의 파견직 사원인 막내 청상아리 청사원은 심약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심약한 청사원을 청팀장은 늘 못마땅해했다. 얼마 전 월미도에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열린 콜센터 전체 회식 때에도 자신의 앞에서 열심히 돼지갈비를 굽는 청사원을 보면서 청팀장은 한마디를 했다.
“그리 심약해서 우리 콜센터 업무 잘할 수 있겠어? 자네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게 어때?”
“아.. 저 팀장님,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잘하긴 개뿔. 얼마 전 우리 월미수산의 우수고객인 개복치 사장에게도 물건하나 못 판 주제에. 자네는 아웃바운드 업무는 젬병이야. 세상에, 그 순딩한 개복치 사장에게 조차 물건을 못 판다면, 자네 그런 정신으로 어디서 뭘 할 수 있겠나?”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아휴... 그래 용써 봐라.. 용써 봐. 이것이 딱 보니, 백상아리 백선생 전화를 받으면 오줌을 질질 싸게 생겼네. 너 그래서야 우리 월미노조 가입할 수 있는 정사원 되겠어? 응? 아니, 파견직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노력하겠습니다.”
“개뿔,, 노력은 아무나 한다고 되니? 응? 기본이 있어야 노력을 해서 뭔가 되는 거야. 너같이 기본이 없는데 응? 응?”
월미수산 콜센터 직원들 모두 청팀장의 인격 모독성 발언을 듣고 얼굴이 벌게진 청사원을 보았지만, 다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
청팀장은 입맛을 쯧 다시면서 청사원의 전화를 받았다.
“아침부터 뭔데? 뭐 지진이라도 발생했어? 해일이라도 와? 왜 아침부터 일하는 척이야?”
“안녕하세요, 저 청사원입니다. 팀장님.”
“됐고, 너 청사원인 거 내가 다 알고 있으니. 결론만 이야기해,”
청사원이 어제 오후에 한 고객에게 상품 판매를 위해서 건 전화가 문제였다. 이 고객은 전화를 받고 다짜고짜 화를 내고는 누가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는지 월미수산 본사의 콜센터 책임자를 바꿔달라고 난리 쳤다. 청사원 위에 직속상관인 청대리와 청과장도 고객과 여러 번 통화를 하였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저... 고객님께서 저희 월미수산 콜센터 책임자인 팀장님과 통화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 이 콜에 청과장님도 같이 연결되어 계십니다.”
”뭐? 아니 자네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길래 그지 같은 고객이 나랑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를 연결해? 너, 내가 네 친구니? 응? 내가 니 친구야? “
”말씀 중 죄송합니다. 팀장님, 저 청과장입니다."
청팀장과 청사원의 통화를 컨퍼런스콜로 듣고 있던 청과장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와 청차장이 먼저 전화를 해 봤는데. 고객님께서 콜센터 책임자 연결하라고 막무가내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팀장님께 이렇게 지원을 요청드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내가 니들 시다비리니? 시다비리야? 응? 야, 청과장, 청차장, 들리니?”
”네 팀장님, 저희 듣고 있습니다.”
”내가 우리 [월미수산] 노조 부위원장 출신이 아니었으면 너희들 다 나한테 물려 죽었어. 이 새끼들아. 일도 못하는 것들이 아침부터 고객민원을 만들어? 이런 등신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팀장님,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고객님과 통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 참.. 이 새끼들,.. 아침부터 가지가지하네. 너희들 내가 고객하고 통화하는 거 잘 들어. 특히 거기 병신 같은 비정규직 청사원 내 말 듣고 있어?”
”네. 듣고... 있습니다.”
”내가 고객과 통화하는 거 잘 듣고 잘 배워 이 새끼야. 민원 들어온 고객을 처리하는 방법을 내가 잘 가르쳐 줄테니 보고 그대로 외워 이 멍청한 청상아리 새끼야. 그래, 나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지랄하는 민원 고객이 누군데?”
”네, 월미도에서 철물점 운영하시는 백상아리 백사장님입니다.”
”뭐? 누구라고?”
”월미도에서 철물점 운영하시는 백상아리 백사장님이 지금 당장 콜센터 최고 책임자 안 바꿔주면 이곳으로 쳐들어오겠다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지금 바로 백사장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들 모두 청팀장님께서 백사장님과 통화하시는 거 잘 듣고 콜센터 업무 잘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팀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지금 백사장님 전화 연결합니다.”
“............”
“청팀장님?"
"............"
"청팀장님? 전화 끊어졌나?”
“어........ 그... 그래.”
“아. 네, 전화가 끊어진 줄 알았습니다. 백사장님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
머릿속이 하야진 청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백 선생이라면 해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던가..... 아니야. 우리 월미도 속담에 ’ 백상아리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 정신 차리자 청팀장, 여기서 약한 모습을 우리 팀원들에게 보여줬다가는 이제까지 쌓아온 내 카리스마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정신 차리자.’
청팀장은 두 지느러미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 청사원에게 호통치던 크고 당당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긴장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백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방금 전화 통화 요청하셨던 [월미수산] 콜센터 총괄 책임자인 청팀장입니다. 혹시 어떤...”
“야. 개나리, 소나리 같은 자식아. 당장 통화 연결하라고 했는데 나를 5분이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백사장님, 바로 전화드리려 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야.. 이 개나리야. 내가 전화 바로 연결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전화를 줘? 뭐? 그동안 잘 지냈냐냐니 무슨 해파리 뼉따구 씹어먹는 소리야! 우리가 태어나서 통화한 게 오늘이 처음인데, 너 나 본적 있어? 너 나 알아?"
"아..저...아하....하..하...백사장님의 철물점을 제가 자주 갔는데...기억이 안 나시나 봅니다.아...하하."
"야.. 소나리야. 우리 월미 철물점은 법인 상대로만 영업해, 너 같은 개인 고객은 취급 안한다고. 이 새끼가 아까부터 해파리 뼉다꾸 씹는 소리하고있네?"
".............."
"너 듣고 있냐? 이 새끼 이거...전화 끊은 건가? 와 이런 쓰레기 같은 청상아리 놈들 같으니라고.”
“듣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백사장님, 혹시 어떤 부분이 불편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야, 이 개나리야. 너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너 나에게 왜 전화했어? 너 뭐야?”
청팀장은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생각했다.
‘자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니... 자기에게 왜 전화를 했냐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이 전화는 백사장이 우리 월미수산 콜센터 대표번호로 건 전화가 아니던가? 아니야, 내가 백상아리 선생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돼.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청팀장. 이 자식아. 우리 [월미수산] 콜센터의 고객대응원칙을 생각하자. 돌아라 나의 머리야!!’
청팀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후,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답했다.
“백사장님께서 예전에 저희 월미수산 회원으로 가입하시면서 전화번호 기입하셨고 전화를 거는 거에 동의를 해 주셨습니다. 월미수산 콜센터 청사원과 통화하시면서 총괄 책임자 바꿔 달라고 요청하시지 않으셨는지요? 필요하시면 동의하신 서류 사본과 통화하신 녹취록을 전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야, 이 개나리야 내가 언제 동의했어? 내 허락 없이 왜 전화했어. 개나리야. 니 상관 바꿔!”
“네? 제 상관이요?”
청팀장은 자신의 상관인 귀이사를 생각했다. 귀상어인 귀이사의 포악함은 지금 통화를 하고 있는 백상아리 백사장과 거의 막상막하이기에, 청팀장은 상관을 바꾸라는 그 말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통화를 우리 콜센터 애들이 같이 듣고 있지 않는가? 이 무슨 개망신인가..이제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때, 청팀장 옆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쓱 다가왔다. 그리고는 청팀장의 전화를 뺏더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백사장님, 전화 바꿨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곳 월미수산 콜센터의 인턴으로 부임한 범사원이라고 합니다.”
“네? 범사원 님이 왜 거기에?”
백상아리 백사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게 다 콜센터 인턴인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윗사람 관리를 잘못했습니다. 대신 사과드립니다. 모든 게 다 저와 저희 월미수산 콜센터의 잘못입니다. 앞으로 더욱더 주의하겠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신다면 제가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네? 범인턴님이 저를 직접 찾아오신다고요?”
백사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같이 전화를 듣고 있는 콜센터의 모든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네, 직접 찾아뵙고 이곳 [월미수산] 콜센터팀의 인턴인 제가 직접! 사과 드려야지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그럼 아무 문제없는 건가요?”
“아이고 문제라니요 범사원 님, 살펴 들어가십시오.”
“네, 그럼 전화 끊습니다.”
콜센터의 모든 직원들이 범사원이 백사장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그만 얼음이 되어 버렸다. 오로지 콜센터의 파견직 사원인 막내 청상아리인 청사원만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청팀장은 벌떡 일어나더니 범사원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범사원의 그 보이지 않는 기에 눌린 청팀장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저 멀리 보이는 비정규직 하청직원인 청사원을 향해 범사원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 형. 여기서 근무하는구나. 이따가 밥이나 같이 먹어요. 아참 청팀장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곳 월미수산 콜센터에서 일을 하게 된 인턴 범사원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네.. 그... 그러세요... 앞으로 편하게.... 지내세요.... 범인턴님.”
청팀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헤엄쳐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모습을 지켜본 콜센터의 모든 청상아리 직원들은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콜센터 업무를 하고 있는 청상어들의 뒤로 오늘 막 이곳으로 발령받은 인턴 범사원이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