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8
"자기는 꿈이 뭐야?"
월요일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올피를 보면서 문선생이 물었다. 올피는 이곳 월미도에서 좀 떨어진 서울 종각에 있는 인간들의 회사인 한 은행에서 과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은행에서는 당연히 올피선생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고 출근시간이 다소 타이트한 관계로 올피는 항상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응? 내 꿈? 자기랑 알콩달콩 재미있게 잘 사는 거지."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뭔가 살아 있는 동안에 꼭 하고 싶은 거? 생각해보니 이건 꿈이 아니라 버킷리스트가 뭔지 물어봐야 하는 건가?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 돈 벌어서 뭐 하고 싶냐는 거지."
"아.이해했어. 음..."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면서 올피는 잠시 생각하더니 문선생에게 가볍게 뽀뽀하면서 말했다.
"로또 당첨되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은행 때려치고, 근사한 요트 하나 사서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고 싶다."
"오. 생각만 해도 좋은데? 자기가 요트 운전하고, 바람이 없으면 내가 헤엄쳐서 밀면 되겠는데?"
"그렇지? 짜잔~"
올피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눈에 익숙한 종이 한 장을 문선생에게 보여줬다.
"그게 뭐야?"
"뭐긴, 우리의 꿈을 위한 로또지. 이게 당첨되면 당장 사표 던지고 요트 사러 갈 거라고. 오늘 오후 사무실에서 번호 맞춰볼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하하."
"어? 그러면 나한테 만원만 줘."
"만원? 왜?"
"어제 좋은 꿈 꿨거든, 만원에 자기에게 팔 테니 내 꿈 사. 그리고 로또 당첨되기를 기도하자."
"아이고 됐습니다."
"아니야. 간절하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대. 내가 그러면 자기 지갑에서 만원 뺀다."
문선생은 출근준비를 하는 올피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뺀 뒤, 만원짜리 한 장을 빼서 자신의 지갑으로 넣으며 말했다.
"자, 제 꿈을 우리 자기에게 만원에 팔았습니다. 우리 자기의 소원아 이루어져라 ~ 얍!!!"
"하하.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어. 그러면 나 갔다 올게. 자기도 출근 잘하고 이따 봐."
올피는 문선생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한 후, 은행 본사가 위치한 종각의 한 건물로 출근을 서둘렀다.
***
“야, 올피과장. 이번 달에도 지난달 전화했던 같은 고객들에게 계속 전화해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팔라고!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상무님. 아무리 실적이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지난달 전화 걸어서 자금이 필요 없다고 대답한 고객에게, 이번 달에 또 콜센터에서 전화 걸어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마케팅을 하라고요? 회사의 대 고객 마케팅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이번 달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실적이 얼만지 알아? 목표 대비 50%도 못 했다고, 올피과장이 실적 책임질 거야? 당장 콜센터에서 전화해서 지난달 전화했던 고객에게 금리 낮춰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팔 수 있게 세팅해!”
“상무님, 아무리 실적이 중요해도 원칙은 지키면서 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 고객이라 해도, 이렇게 매달, 심지어 한 달에 두 번 이상 전화했다가 고객이 마케팅 금지를 걸거나 카드를 탈회하면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손해입니다. 상무님께서 오신 후, 카드론 실적 때문에 무리하게 전화영업을 지시하신 이후로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카드를 해지한 줄 아십니까? 소탐대실입니다.”
“올피과장. 이럴 거면 그 업무에서 손 떼!!”
***
올피는 은행에서 리스크 및 포트폴리오 분석, 상품개발, 금융상품 마케팅을 담당했다. 그동안 진행했던 수많은 업무들 중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업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그리고 리볼빙 세일즈를 늘리기 위한 각종 금융 마케팅과 세일즈 관련 업무들이 가장 하기 싫은 업무였다.
올피가 생각하기에는 고금리의 카드론과 리볼빙을 판다는 것은 고객을 ‘재테크 실패’라는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많은 돈이 없는 저신용 고객들에게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그리고 리볼빙이 마치 선진금융기법인 것 마냥 포장해서 마케팅을 하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편리하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흙수저 재테크에서 편리함과 성공은 반비례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올피가 보기에 가장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 신용이 우량한 고객들을 특별할인금리로 유혹해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그리고 리볼빙을 일단 한번 사용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은행에서 정상적인 신용대출을 사용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카드론이나 리볼빙을 사용한 적이 없었던 고객들을 분석해서, 그들에게 특별금리라는 이름으로 낮은 금리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그리고 리볼빙을 제안하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은행 신용대출 상품보다 높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리볼빙 금리 이어야 하나, 아래와 같은 멘트로 고객을 잘 꼬셔서 일단 한 번만 이용하게 만드는 것을 은행은 선진금융으로 포장했다.
“고객님, 이번에 특별 이벤트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금리를 5%로 낮춰드립니다. 5%면 거의 고객님께서 알고 계시는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이자와 비슷할 텐데요, 그동안 고객님께서 당행의 카드를 잘 사용해 주셔서 이번 한 달 동안 특별금리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렸습니다. 이번 달 특별히 커피쿠폰 이벤트도 있어서, 카드론을 한 번만 사용하셔도 2만 원 HELLBUCKS 커피쿠폰이 나간답니다.”
“고객님, 이번 달 카드 결제금액이 OOO만 원인데, 이번에 리볼빙서비스를 이용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리볼빙 10%만 걸어놓으시면 이번 달 전체 결제금액에서 10%만 내시면 되거든요. 부담이 확실하게 덜하시겠죠? 그동안 고객님께서 당행의 카드를 잘 사용해 주셔서 이번 한 달 동안 특별금리로 리볼빙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렸습니다. 이번 달 특별히 커피쿠폰 이벤트도 있어서, 리볼빙 등록만 하셔도 2만 원 HELLBUCKS 커피쿠폰이 나간답니다.”
신용카드사의 은밀한 유혹에 넘어간 고객들 중, 상당수가 마약과도 같은 편리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그리고 리볼빙의 유혹에 빠져서 평생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을 본 올피는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피가 얼마 전 김상무와 설전을 벌인 것이었다.
***
김상무는 입이 험한 사람이었다. 당시 올피의 팀은 카드론을 설계하고 신용카드 세일즈를 하는 영업원을 관리하는 팀이었고, 약 2,000명에 달하는 영업사원들이 올피 팀의 관리하에 있었다. 2000명에 달하는 대출 판매사들은 약 10개의 영업팀으로 분리되어 관리 중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김상무는 10개 영업팀의 팀장들과 전화를 크게 해 놓고 콘퍼런스콜을 진행하였다. 어찌나 콘퍼런스 전화기를 크게 해 놨는지, 아침마다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김상무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 중에서 올피가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은 '눈깔을 뽑아버린다'라는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팀의 실적이 왜 그 모양이야. 내가 그냥 눈깔을 뽑아서 콱 밟아 터트리기 전에 실적 당장 만들어와!!"
매일 아침마다 사무실은 영업팀장들의 뽑힌 눈깔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김상무가 눈깔을 뽑아버리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콘퍼런스콜의 10개 팀은 조용했다. 그러면 김상무는 다시 이야기를 했다.
"야, 이 개새끼야, 알겠어 모르겠어? 왜 대답을 안 해, 눈깔을 콱 뽑혀봐야 정신 차리겠어?"
***
그날 오후였다.
김상무는 전화기를 크게 켜놓고 10명의 영업팀장들과 콘퍼런스콜을 하고 있었고, 실적이 이따구면 영업 팀장들의 눈깔을 뽑아서 발로 밟아 터트려 버리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중이었다.
"너희들 정말 나한테 눈깔을 뽑혀볼래? 이것들이 정말……." 그 순간이었다.
사무실의 한 구석에서 사람들이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김상무가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지랄들이야, 너네 다 눈깔 뽑혀볼래? 정신상태가 빠졌어 이것들이."
"상무님, 올피과장 로또 1등이 됐답니다. 이번 회차 누적상금이 무려 100억이라고 합니다. 방금 번호 맞춰보고 알았답니다."
순간 콘퍼런스콜에 들어온 10명의 팀장들은 말이 없었다. 김상무도 아무 말 없이 컨퍼런스 콜을 종료했다.
***
그 날, 올피과장은 은행 인사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은행의 정문을 나오면서 문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
"자기 덕분에 우리 꿈이 이루어졌어. 고마워. 사랑해!"
"응? 무슨 말이야?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다니? 나 지금 콜센터 청팀장이 스트레스로 쓰러져서 바빠. 아니 이태까지 스트레스 없이 회사생활 잘 해온 양반인데 오늘 왜 이러는 거지?
"그 튼튼한 청팀장이 스트레스로 쓰러졌다고?"
"응. 암튼, 새로 온 지은선생이 아직 아쿠아리움 업무가 서투니까 내가 좀 많이 봐줘야 하거든. 이따가 퇴근하고 봐."
"그래, 그러면 이따가 집에서 봐. 사랑해"
"자꾸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 보니, 뭔가 수상한데? 사실대로 말해."
"아냐, 이따가 집에서 말할께."
"그래 그럼, 이따봐,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