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 10
수요일 오전이었다.
문선생과 같이 점심을 먹고 곰소장님의 사무실에서 같이 쌍화차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찢어질듯한 사이렌 소리에 이어서, 더 익숙한 방송 멘트가 월미수산 내에 울려 퍼졌다.
월미수산 직원 여러분! 여기는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 현재 시각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전역에 훈련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제1013회 월미수산 정기 민방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월미수산 직원분들께서는 즉시 가까운 대피시설로 안전하게 대피하시고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의 안내에 따라 행동하시길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와 공습경보에 놀란 지은은 쌍화차를 마시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곰소장을 보면서 말했다.
"소장님, 이건 뭔가요? 훈련 공습경보요?"
"아, 이거 민방위 훈련 같은 거야. 우리 월미수산 아쿠아리움도 월 1회 정기 대피 훈련을 하거든."
"정기 대피 훈련이요?"
지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곰소장은 숟가락으로 쌍화차의 견과류를 떠서 입으로 넣은 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지은샘이 회사 안 다녀봐서 그런가 본데, 대한민국 웬만한 대기업들은 정기적으로 이렇게 대피훈련 같은 거를 해야 해. 이 업무만 담당하는 팀을 만들라고 관련 법규에도 나와 있어."
"아... 그렇구나. 저는 몰랐어요."
"우리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가 있는 [월미수산 민방위 관리부] 펭부장이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
"팽부장님이요?"
"왜 놀라는 거지? 팽현숙 이라는 좀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코미디언도 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주변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성이었네요."
"아이고, 오늘은 쌍화차 속의 대추와 호두가 실하고 맛있네."
곰소장은 다시 쌍화차의 견과류를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문선생이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지은샘, 놀라지 말고, 곧 애들이 올 거야."
"애들이요? 애들 누구요? 오늘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쿠아리움 방문하나봐요?"
우당탕탕탕
우당탕탕탕
멀리서 우당탕 거리면서 아이들이 복도를 뛰는 것 같은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갑자기 곰소장의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수많은 펭귄들이 우르르 곰소장의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펭귄을 보고는 깜짝 놀란 지은이 문선생을 보면서 소리쳤다.
"헉... 훔볼트 펭귄들이 탈출했어요."
"탈출한 거 아냐."
"네? 그러면요?"
"훔볼트 펭귄들도 우리 월미수산 민방위 훈련에 참가를 하거든."
"네? 펭귄들이 민방위 훈련에요?"
어리둥절해진 지은은 곰소장의 방에 꽉 들어찬 펭귄들 사이에서 놀란 눈으로 곰소장과 문 선생을 바라봤다. 곰소장과 문선생은 이런 일이 매우 익숙한 듯, 훔볼트 펭귄들이 가득 찬 방에서 여유롭게 쌍화차를 마시고 있었다.
펭귄들 틈에 낀 지은이 창문 밖을 바라보자 아쿠아리움 건물 밖 커다란 주차장 공터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지은은 창문을 바라보면서 곰소장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요? 방금 전까지 안 보였는데."
"우리 월미수산 직원들이야. 다들 민방위 훈련에 참가해야지."
"정말요? 사람들이 꽤 되는데요? 모두 월미수산 직원들이라고요?"
"왜 이래. 우리 월미수산 꽤 큰 회사야. 총 직원들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고."
"500명이요? 와.. 월미수산이 생각보다 엄청 큰 회사였구나,"
생각보다 많은 월미수산 직원들의 수에 놀란 지은이 손에 들고 있던 쌍화차를 한 모금 마시자, 지은의 다리에 붙어있던 훔볼트 펭귄이 지은의 다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놀란 지은이 펭귄을 바라보자 문선생이 한마디를 했다.
"넌 쌍화차 먹으면 안 돼. 펭귄 체질에 한약은 안 맞는다."
놀랍게도 마치 문선생의 말을 알아들은 듯, 펭귄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문선생은 펭귄을 보면서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대신 이따가 간식으로 시원한 오징어 싸만코 아이스크림 하나씩 다 줄게."
파다다다닥
파다다다닥
문선생이 말을 마치자마자, 곰소장의 방에 있는 수많은 훔볼트 펭귄들이 앞발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놀란 지은은 문선생을 보면서 말했다.
"오징어 싸만코요?"
"훔볼트 펭귄의 주식인 오징어를 얼린 걸, 이곳 월미 아쿠아리움에서는 오징어 싸만코라고 부르거든."
"아..."
지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훔볼트 펭귄들과 곰소장, 문 선생을 바라봤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추가적인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월미수산 직원 여러분! 여기는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 현재 시각,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의 훈련경보를 해제합니다. 월미수산 직원분들께서는 정상 업무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오늘 훈련과 교육 참여에 감사드리며, 질서 있게 사무실로 복귀하셔서 정상 업무에 임해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마치자마자, 곰소장의 방에 몰려든 수많은 훔볼트 펭귄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놀란 지은은 펭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곰소장의 방에 빽빽하게 모여있던 펭귄들은 자신들이 있던 커다란 수조로 돌아가 자유롭게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지은이 놀란 눈으로 훔볼트 펭귄들을 보는 사이, 월미 아쿠아리움의 주차장에 있던 수많은 월미수산 직원들은 거대한 파이프가 있는 커다란 공간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월미 아쿠아리움 천장의 파이프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당탕탕탕
우당탕탕탕
크어어어억
쉬이이이익
놀란 지은이 고개를 들어 파이프를 바라보자, 곰소장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파이프가 낡아서 소리가 좀 크지? 오늘같이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은 이상하게 더 요란하게 난단 말이지, 지은선생도 곧 익숙해질 거야."
"아.. 네. 일겠습니다."
지은은 쌍화차를 마시면서 천장의 낡은 파이프들을 바라봤다. 흔들거리는 파이프의 낡은 이음새 사이에 모인 물방울이 지은의 머리 위로 똑! 하고 떨어졌다.
***
약 30분 전,
아아아~~~ 아아아~~~ 마이크테스트 하나둘하나둘 ~
월미 수산 민방위 훈련팀의 부장인 펭 부장은 월미수산 사내 방송실에서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펭 부장의 옆에 서 있는 펭사원이 펭 부장을 보면서 쌍 따봉을 날리면서 말했다.
"와우, 오늘 부장님 목소리 좋습니다."
"그래? 내가 오늘 아침에 날달걀 하나를 먹고 왔거든. 역시 효과가 있구먼, 우리 애들은 다 준비됐지?"
"그럼요, 우리 민방위 훈련팀의 모든 사원들은 훈련이 시작되면 곰소장 방으로 뛰어가서 대피하는 연습을 할 예정입니다."
"아주 좋아. 평소 이렇게 대비를 해야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잘 대피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역시 우리 펭부장님 말씀은 언제나 옰습니다. 부장님, 방송시작 10초 전입니다. 카운트 다운 시작합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펭사원은 사내 방송실에 걸린 카운트다운용 시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10 이 보였고,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0 이 되자, 사내 방송실 밖에서 보고 있던 월미수산 홍보팀의 가물치 인턴이 손으로 큐싸인을 날렸다. 큐사인을 본 펭 부장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월미수산 직원 여러분! 여기는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 현재 시각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전역에 훈련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펭 부장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나오자마자, 민방위 훈련팀의 모든 훔볼트 펭귄들이 일제히 곰소장 사무실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월미수산 고객만족팀의 해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자, 뭣들 하는 거야. 민방위 훈련 하니까 다들 하던 일 멈추고 지침대로 주차장으로 나가자. 야, 해대리, 평소 일 안 하던 놈들이 꼭 이럴 때 바쁜 척해요. 접어라, 야야. 해대리!!!"
"아니, 부장님 저 진짜 바쁘다니까요."
"알아 알아, 그래도 월미수산 임직원들이 꼭 따라야 하는 민방위 지침이니 어쩔 수 없잖아? 자자, 뭐 하는 거야? 다들 업무 접고 빨리 책상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나가라고."
고객만족팀의 해마 열 마리가 나란히 줄을 서더니, 수족관과 연결된 플라스틱 배수관 방향으로 일렬로 헤엄쳤다. 그들은 수족관 천장에 있는 배수관들 사이로 한 마리씩 나란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월미 아쿠아리움의 모든 수조들이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수족관 사이로 마지막 훔볼트 펭귄 한 마리가 우다다다다 뛰어가더니 곰소장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곰소장의 방은 이미 도착한 훔볼프 펭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그 날 오후, 월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기 10분을 남긴 상황이었다. 귀여운 펭권 모습의 펭부장은 자신에게 배정된 오징어 싸만코 아이스크림 비닐봉지를 자연스럽게 뜯으면서 펭사원을 보며 말했다.
“아직 퇴근 10분 전이지만, 인간들 다 퇴장하지 않았을까? 그냥 우리 아까 받은 오징어싸만코 먹자.”
“탁월하신 생각이지 말입니다.”
오징어 싸만코의 비닐봉지를 벗기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은 펭부장이 말했다.
"역시 용궁제과의 오징어싸만코 아이스크림 바닐라맛은 정말 맛있단 말이지. 바닐라 향이 참 좋아. 팥하고 바닐라가 참 궁합이 잘 맞는거 같아."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쵸코맛, 바닐라맛, 박하맛, 호두맛 중에서 바닐라맛이 가장 맛있지 말입니다. 역시 용궁제과는 아이스크림을 제일 잘.....엇!!!!!!!!!! 부장님, 인간들이 아직 퇴장 안 했나 봅니다."
"뭐라고? 야야. 이거 놓고 냉동 오징어 집어. 비상상황이닷."
"네네. 펭부장님."
저 멀리서 아직 퇴장하지 않은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펭부장과 펭사원이 있는 수조로 다가오고 있었다. 팽사원은 한 입 베어먹은 오징어 싸만코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냉동 오징어를 하나 집어들고 펭부장에게 건넸다.
펭부장과 펭사원은 각자 냉동 오징어를 하나씩 입에 물고 아이를 향해 팔을 파닥파닥 거렸다.
"엄마, 펭권들이 오징어 먹고 있어요."
"맞아. 훔볼트펭권들의 주식은 오징어거든."
"엄마엄마. 저기 펭귄 우리 안에 먹다가 만 아이스크림봉지가 있어요."
"어머, 여기 사육사가 붕어싸만코 먹다가 흘렸나보다. 펭권들은 팥과 아이스크림 안 먹거든. 우리 나가면서 관리실에 이야기 해주고 갈까?"
"응!!! 다음에 보자 애들아!!"
아이가 펭권을 향해 손을 흔들자 오징어를 입에 문 두 펭권이 팔을 파닥거렸다. 잠시 후, 아이와 엄마가 사라지자 펭부장이 입에 물고 있던 냉동 오징어를 퉤! 하는 소리와 함께 수족관 바닥에 뱉고는 떨어져있던 오징어싸만코를 손에 들고 먹으며 말했다.
"퇴근시간 얼마 안남았는데, 오징어싸만코 빨리 먹고 퇴근 준비하자."
"부장님 말씀은 언제나 옳지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저기 바닥의 냉동오징어 좀 치워라. 생물이 아니라서 군냄새 난다."
"알겠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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