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의 총성과 음모론...'케네디 암살'

[암살의 역사 17] 시대의 아이콘의 비극적 최후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png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기 직전 부인 재클린 여사,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와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대통령 경호 담당 재무부 비밀 검찰국이나 FBI도 사전에 대통령의 신변을 보호할 예방책들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세한 허점이 존재했다. '리 하비 오스월드'라는 청년이 댈러스 중심가에 있는 교과서 보관소 건물 6층 창문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해당 건물의 직원이기도 했던 그는 케네디가 사정권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낮 12시 30분경, 마침내 케네디가 탄 차가 오스월드의 눈에 띄었다. 그는 곧바로 첫 번째 총탄을 발사했다."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무엇일까. 과거 '미국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나게 하는 사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꼽힌 주요 사건들은 '존 F 케네디 암살'과 '9.11 테러'였다. 어느 시점의 활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렬한 매개체로 작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럴 만도 했다. 케네디는 '댈러스'라는 지역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도중 목과 머리에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했다. 미국인들은 TV를 통해 암살 장면을 실시간 지켜봤다.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비단 암살 자체만이 충격은 아니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대통령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 아쉬움도 컸다.


케네디는 전후 고리타분했던 미국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뛰어난 외모와 언변, 개혁적 면모까지 갖춘 이 정치인은 순식간에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종의 '팬덤'까지 형성될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어린 나이와 가톨릭 신자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 대통령 케네디는 국민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며 각종 개혁 정치를 선보였다. 사회 곳곳에 내재된 인종차별적 요소들을 없애 흑인들의 민권을 증진하려 했다. 여러 사회복지 정책들을 설계, 시행했으며 평화봉사단을 만들어 가난한 국가들을 도왔다. 당시 소련의 영향을 받아 우주 개발 계획의 초석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케네디를 큰 난관에 빠뜨렸다. 주변에서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장면들도 연출되는 등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그럼에도 케네디는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전쟁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대내외적으로 양호한 정치를 선보이면서 케네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높아졌고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케네디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케네디를 향한 미국인들의 서글픈 감정은 곧 수많은 '암살 음모론'을 양산했다. 단순히 암살자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그 배후에 모종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들이 쏟아졌다. 지목된 세력은 CIA(중앙정보국)와 FBI(연방수사국), 군산복합체, 마피아 등이다. 음모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으며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케네디에 대한 잔상들은 시간과 세대를 초월해 미국인들 및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짙게 배어있다. 이에 음모론 역시 앞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었던 케네디. 그의 개혁정치와 위기, 암살 과정 그리고 음모론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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