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18]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가의 죽음 전말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실제로 암살자는 존재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소속인 '제임스 얼 레이'가 멤피스로 내려와 마틴 루터 킹이 투숙한 로레인 모텔 맞은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저격총이 있었다. 사건 당일인 4월 4일, 마틴 루터 킹은 모텔 306호실 앞 발코니에 홀로 서 있었다. 외부의 타격으로부터 보호를 해줄 만한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오후 6시가 되자, 별안간 총소리가 울리며 마틴 루터 킹이 쓰러졌다."
역사에서는 보통 하나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이에 반대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령 진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면 반작용으로써 보수 또는 퇴보적인 움직임도 나타난다. 역사는 2개의 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진보로 가기도 하고 퇴보로 가기도 한다. 최종 모습으로 가는 데 있어 치열한 투쟁과 진통 등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일종의 '정반합'의 모습으로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본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력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는 폐지됐고 인종차별도 법적으로 금지됐다. 역사적 진보로 인해 흑인들은 향후 속박에서 벗어나 백인들과 동등한 자유를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노예제 등은 사라졌지만 남부 백인들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린 '우월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더욱이 역사적 진보에 대한 백인들의 위기감 등으로 반작용은 이전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극단적인 비밀결사단체까지 만들어져 흑인들에 대한 물리적 테러가 도처에서 터졌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공고화하는 법까지 제정됐다. 미국은 진보가 아닌 퇴보를 하고 있었다. 앞서 링컨이 거둔 진보적 성과는 무색해졌고 흑인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은 요원해 보였다. 흑인들은 거듭된 퇴보를 막고 미국 사회를 진보로 인도할 '제2의 링컨'이 나오길 기다렸다.
상당한 시일이 걸려 나온 인물이 바로 '마틴 루터 킹'이다. 그는 기독교적인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 신앙'을 기반으로 흑인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용기와 지혜를 갖고 수많은 흑인들을 단결시켰고 결정적인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변화를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세기의 연설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도 선사했다. 마틴 루터 킹의 운동이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은 시종일관 '비폭력'이라는 요소가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백인들의 물리적 테러와 일부 흑인들의 노선 전환 요구가 빗발쳤지만 마틴 루터 킹은 끝까지 비폭력 노선을 견지했다. 폭력은 악순환만 불러일으킬 뿐, 비폭력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앞선 간디의 투쟁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한 셈이다. 오늘날 역사적 평가를 돌이켜 볼 때 그의 판단은 지극히 옳았다.
뚜렷한 성과와 변화를 일궜으나 마틴 루터 킹에 대한 공격은 끊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암살자의 총탄에 요절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마틴 루터 킹 이전과 이후의 미국 사회는 확실히 달라졌다. 법과 제도적인 측면은 물론 실생활에서도 인종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흑인들의 민권은 크게 증진됐으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다. 마틴 루터 킹이 내세웠던 가치들은 현대 미국 사회를 대표한다. 미국은 앞서 2개의 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진보로 나아갔다. 링컨이 씨를 뿌려놓은 바탕 위에서 마틴 루터 킹이 열매를 맺은 셈이었다. 이 열매들은 앞으로 미국 사회의 근간이며 진보의 물결을 대변하는 주체일 것이다.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투쟁과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