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라마여"...'간디 암살'

[암살의 역사 16] 비폭력 불복종 민족주의자의 죽음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jpg 마하트마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뉴델리에서 열린 저녁 기도회에서 힌두교 극단주의 단체에 소속된 나투람 고드세에게 암살을 당했다.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간디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간디는 힘을 내 손을 흔들었고 미소도 지었다. 그런 다음 군중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얼마나 갔을까. 별안간 카키색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고드세였다. 그는 정중히 인사를 한 후 간디의 발을 만지려 몸을 숙였다. 간디도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고드세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움과 동시에 품속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에서 국부 또는 위대한 영혼으로 불리고 있다. 영국의 식민 통치에 맞서 민족독립운동을 앞장서 주도했고 독립 후에는 민족 간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간디가 존경받는 이유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보여줬던 그의 투쟁 방식 때문이다. '비폭력 불복종'으로 통칭되는 투쟁 방식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었다. 말 그대로 폭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끝까지 평화적인 모습으로 투쟁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선 이 투쟁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 영국은 폭력적으로 진압을 하는데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폭력 투쟁에 대한 욕구가 분출할 때마다 간디는 영국인들을 다치게 하지 말고 차라리 맞아 죽으라고 역설했다. 비폭력 투쟁만이 정당성을 가지며 독립운동을 궁극적인 승리로 이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투쟁 방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인도 독립운동에 전 세계인들의 우호적인 관심과 지지가 쏟아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속적인 비폭력 불복종 투쟁에 힘입어, 인도는 당초 간디가 의도한 대로 궁극적인 승리, 민족독립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종교 갈등으로 인도가 둘로 쪼개졌다. 간디는 크게 좌절했지만 끝까지 민족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독립운동에선 결실을 봤지만 민족화합 노력에선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나아가 힌두교 극단주의 단체에 소속된 한 청년에게 불의의 암살을 당했다. 민족의 독립과 화합에 헌신했지만 같은 민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점에서 국내의 '김구' 사례와 비견된다. 비극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곤 하나,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과 화합의 유산이 전 세계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역사적 인물들은 간디를 롤모델로 삼아 불의에 맞섰다. 그리고 역사의 진보를 이뤄냈다. 간디는 일종의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다만 오늘날 일각에서 간디의 부정적인 사생활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근거로 간디에 대한 총체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일부 부정적인 측면으로 전체를 일반화하면 안 된다. 해당 부분에 대해 지적은 하되, 간디가 숭고한 방식으로 대의에 헌신해 후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은 존경해야 마땅하다. '비폭력 불복종 민족주의자', 간디의 민족독립운동과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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