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15] 발키리 작전 전말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마침내 작업을 끝낸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는 회의실을 쭉 살펴본 뒤 히틀러 바로 옆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그런 다음 폭탄이 든 가방을 자연스럽게 놔뒀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잠시 회의장에 머물렀다가 전화 핑계를 대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뒤 얼마간 육군대장의 동부전선 관련 브리핑이 있었다. 히틀러는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턱을 괸 채로 브리핑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
20세기 가장 역동적이고 강대한 세력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라고 말하겠다. 이 세력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좌절과 증오의 늪에 빠져있는 독일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머금고 급성장했다. 특히 세력의 맨 꼭대기에 있었던 히틀러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연설과 선동 능력을 발휘하며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영도해 주길 바랐던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열광했다. 나치 독일은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사상인 '국수주의'를 비롯해 권위주의와 반공주의 등 이른바 '파시즘'을 표방했고,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를 내세웠다. 이러한 이념 하에서 히틀러와 나치당, 독일 국민들은 한데 뭉쳤으며 다른 국가와 민족들에 대한 노골적인 호전성을 드러냈다. 그 결과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당대 최고의 에이스 명장들과 '전격전'이라는 놀라운 전술 개념으로 무장한 독일군은 한때 '무적'으로 여겨졌다. 세계 최강의 육군국인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굴복시켰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영국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소련도 독일군과 충돌하는 것을 극히 꺼렸다. 한마디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미래의 물결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독일군은 '독소 전쟁'에 발목이 잡혔고 미국이 연합군으로 참전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의 존재였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등으로 구성된 반 히틀러 세력은 전쟁 이전부터 히틀러와 나치당의 야욕과 전쟁 위험성을 알았다. 이에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수립했다. 전세가 독일군에게 명백히 불리하게 돌아갈 때엔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승산이 없는 전쟁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히틀러를 죽이고 연합군과 종전 협상을 타결해야, 독일 국민들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독일인 대다수가 히틀러와 나치당의 전쟁 범죄에 가담할 때, 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했던 '마지막 양심'들이었다. 그러나 히틀러 암살 계획인 '발키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히틀러는 천운이 따라줘 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만약 이때 히틀러 암살이 성공했다면 독일은 추가적인 전쟁 희생을 막고 조기 종전을 하는 등 연착륙이 가능했을 수 있다.
역사적 대결 구도를 살펴보면 대개 '선과 악'이 존재했다. 전자가 역사의 진보 또는 문명의 수호를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가치들을 추구했다면 후자는 역사의 퇴보를 초래하는 부정적인 가치들을 추구했다. 다만 미세한 예외들도 있었다. '악'으로 보이는 세력 내부에서도 가끔씩 부분적인 '선'이 존재했다. 본편에서 다루는 주인공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나마 이런 용감한 세력으로 말미암아 암울한 역사의 한 단면에서도 실낱같은 희망과 감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나치 독일군이 주도한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암살 미수'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