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14] 반 스탈린 투쟁과 비극적 최후 전말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암살 당일, 트로츠키와 메르카데르는 여느 때처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마친 후 트로츠키는 책상에 앉아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메르카데르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트로츠키 뒤로 몰래 다가갔다. 그의 한 손에는 뾰족한 '등산용 피켈'이 있었다. 암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음에도 트로츠키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일에만 열중했다."
'소련'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누가 떠오르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오시프 스탈린'이라고 답한다. 그가 소련의 공업화를 추진했고 무수한 사람들을 숙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뒤 냉전 시대와 6.25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만큼 스탈린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탈린의 최대 정적이었던 사람, 어쩌면 소련의 건국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공식 후계자로서 스탈린 대신 소련을 통치할 수도 있었던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혁명' 과정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며 일약 거물로 급부상했다. 명석한 두뇌와 화려한 언변, 카리스마 등으로 조직과 선동, 이론 분야 등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심지어 문외한일 줄 알았던 군사 전략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기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고 소련을 건국하는 데 있어 트로츠키의 공로가 지대했다. 이에 수많은 소련 국민들은 트로츠키를 레닌의 뒤를 이을 지도자로 여겼다. 일각에선 그를 레닌과 동등한 반열에 올리며 추앙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애당초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스탈린이었다. 트로츠키는 다방면으로 뛰어났지만 상대방이 불쾌감을 가질 만큼 교만한 게 문제였다. 다가가기 어려웠기에 주변에서 뒷받침을 해줄 만한 탄탄한 세력이 형성되지 못했다. 반면 스탈린은 내면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철저히 감춘 채 겸손함과 성실함 등으로 측근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그는 레닌이 죽은 후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내며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지지 기반이 취약했던 트로츠키는 중요한 국면마다 스탈린에게 밀리면서 빠르게 무너졌다. 결국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추방돼 해외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됐다. 다만 정치적으로 완전히 사망한 것은 아니었다. 집필과 강연 등을 통해 '반 스탈린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비판의 핵심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관료제, 개인숭배, 공포정치 국가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즉 "혁명이 배반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스탈린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반 스탈린 연대가 결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스탈린이 끊임없이 트로츠키 암살을 획책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트로츠키는 암살 시도가 있을 때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끝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암살자는 트로츠키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친밀하게 접근했다. 그런 다음 때가 왔을 때 매우 잔인하고 무심하게 암살을 결행했다. 트로츠키 암살은 대숙청의 완결판이자 반 스탈린 세력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기형적인 스탈린 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화시켰다. 역사에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스탈린이 아닌 트로츠키가 소련의 권력을 장악했다면 어땠을까. 트로츠키가 실천적인 부분 등에 있어 스탈린과 유사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스탈린 시대와는 적지 않게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숭배 등 기형적 요소가 배제되고 마르크스적 사회주의 전통에 충실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스탈린에게 패배한 비운의 혁명가', 트로츠키의 반 스탈린 투쟁과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