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역사-확장판 14] 최초의 근대적 개혁 운동 전말
... 개화당 중심인물들의 배경은 매우 화려했다. 수장인 김옥균은 명문가인 안동 김씨 집안 출신으로, 22세에 장원 급제를 했고 호조참판(현 기획재정부 차관), 외아문현판(현 외교통상부 장관)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영효는 조선의 제25대 임금인 철종의 사위로 한성부판윤(현 서울시장) 등을 역임했다. 홍영식은 영의정이었던 홍순목의 차남으로 정변 당시 우정총국 책임자였다. 서재필은 일본 육군학교를 졸업했고 조련국(임시사관학교) 사관장으로 활동했다. ... 실학의 북학사상을 계승한 개화당이 지향하는 개혁은 '급진적'이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서양의 과학기술과 함께 근대적인 사상 제도까지도 적극적으로 도입, 조선의 정치·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변법론'(變法論)을 주창했다. ... 하지만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노골화하던 청나라는 개화당의 정책이 조선의 독립을 지향한다며 탄압하기 시작했다. 청나라와 밀착하고 있던 민씨 세력도 개화당의 개혁 정책에 눈살을 찌푸렸다.
... 축하연은 저녁 7시에 시작됐다. 얼마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약 3시간가량 지났을 무렵, 갑자기 우정총국에서 불이 났다. 사전에 개화당에게 매수된 궁녀가 사제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진다. 민씨 일족과 고위 관료들은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외부에서 미리 매복해 있던 개화당 장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이들을 덮쳤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민비의 조카이자 김옥균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민영익은 칼을 무려 33방이나 맞았다.
...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화당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모습들을 선보이며 목표로 하는 조선의 급진 개혁을 의욕적으로 밀어붙일 태세였다. 고종은 혁신정강으로 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개화당의 줄기찬 압박으로 인해 혁신정강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개화당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고작 '46시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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