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역사-확장판 20] 군부 독재의 불필요한 연장
... 잠시 미묘한 정적이 흐른 뒤, 허삼수가 단도직입적으로 정승화 연행 의사를 표명했다. 그가 당시 현장에서 밝혔던 연행 이유는 김재규로부터 돈을 많이 받았으니 이와 관련해 총장의 직접적인 증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증언은 공관이 아닌 '녹음' 준비가 된 별도의 장소(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방첩부대장을 역임했던 정승화는 녹음 준비가 된 장소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는 '고문'을 하면서 억지로 증언을 받아내겠다는 뜻이었다. 정승화가 최규하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냐고 묻자 허삼수는 "재가가 있었다"라고 답했다. (정승화 연행과 관련한 대통령의 사전 재가는 없었다.)
... 장태완의 강경한 태도에 전두환 측의 대응도 빨라졌다. 느긋하게 있다가는 장태완의 전차 부대가 밀고 들어와 포문을 열 것이라는 위기감이 증폭됐다. (실제로 장태완의 명을 받은 수경사 소속 전차 부대가 30 경비단 쪽으로 쳐들어왔지만 전두환 측의 김진영 대령이 맨몸으로 막아 돌려세웠다.) 더욱이 이때 육군본부는 전두환 측의 행위를 하극상에 의한 '군사 반란'으로 규정했고 전투준비태세 경보인 '진돗개 1'을 발령했다. 다급해진 전두환은 박희도 1 공수여단장에게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무력으로 점령할 것을 명했다. 동원할 수 있는 부대들 중 1 공수여단의 기동력과 접근성이 가장 좋았다. 이와 함께 노태우 9 사단장은 전방부대 병력을 빼내 서울 중앙청으로 출동시켰다. 전방부대 병력 이동은 한미연합사령관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지만 완전히 무시됐다. 전두환 측은 육군본부, 국방부, 중앙청 등 핵심 기관들을 신속히 장악하는 것만이 승리이자 '생존'의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