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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식 Jun 29. 2024

한국 현대사의 중대 변곡점...'5.16 쿠데타'

[정변의 역사-확장판 18] 군정 장기집권의 서막

5.16 쿠데타 직후 서울 시청 앞에 진주한 군 수뇌부. 박정희(가운데) 소장과 차지철(오른쪽) 대위, 그리고 박종규(왼쪽) 소령.

#. 아래 내용은 6월에 출간된 '정변의 역사-확장판' 하이라이트 부분.


"은인자중 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今朝)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혁명공약 발표 中


... 4.19 혁명 직후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했던 민주당 정권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은커녕, 끊임없는 권력 투쟁과 내부 분열 등에 시달리며 쇠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민심 이반은 가속화됐다.


...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정군운동 주도 세력들은 보다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계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민주당 장면 정권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였다. 이들은 1960년 9월 서울 명동에 위치한 요정인 '충무장'에 모여 쿠데타를 결의(충무장 결의)했고, 이후 각자의 직책과 인맥을 총동원해 쿠데타 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정군파의 쿠데타 계획 핵심은 장면 정권의 '비둘기 작전'을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비둘기 작전은 장면 정권이 물리력을 동원해 드높아진 사회 운동의 열기를 제압하기 위해 수립한 작전을 말한다. 정군파는 비둘기 작전이 시행되면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서울 요충지들을 점령한 후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 군부 내에서 쿠데타 움직임이 가속화될 즈음, 1961년 정치권 등에서는 이른바 '3, 4월 위기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부 내 정보기관과 주한미군은 사전에 정군파의 쿠데타 모의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정희의 존재는 장면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 우여곡절 끝에 운명의 날이 밝았다. 총 3600명이 동원된 쿠데타 군은 당일 새벽에 작전을 개시했다. 선봉에 선 것은 김윤근이 지휘하는 해병 제1여단이었다. 뒤이어 박치옥 대령이 지휘하는 공수부대가 출동해 해병대와 합류, 서울 중심부로 진입하는 통로인 한강대교로 진격했다. 제6군단 4개 포병대는 육군본부를 향해 진격했다. 한강대교에 도착한 해병대와 공수부대는 그곳을 방어하고 있던 헌병 제7중대와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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