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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식 Jun 29. 2024

대한제국 황제, 의문사하다...'고종 암살설'

[정변의 역사-확장판 17] 국권 피탈과 급서 전말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의 국장.

#. 아래 내용은 6월에 출간된 '정변의 역사-확장판' 하이라이트 부분.


... 고종은 을사늑약에 대해 "짐을 협박하여 조약을 조인했다"라고 주장하며 무효를 선언했다. 국제 사회에 친서를 보내 조약의 불법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인 헐버트를 통해 "보호 조약은 병기로 위협하여 늑정(勒定)했기에 전혀 무효하다"라는 내용의 급전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 영국인 베델이 경영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원수에게 보내는 서한도 발표했다. 나아가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3인을 밀사로 파견, 끝까지 을사늑약 무효를 도모했다. 


... 그런데 이 즈음 고종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등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국 베이징으로의 '망명'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이 해외로 망명하면 독립운동의 강력한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민비의 사촌동생인 민영달이 5만 원의 거금을 내놓았는데, 이회영은 이 자금으로 베이징에 고종이 거처할 행궁을 마련하려 했다.  


...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백성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무엇보다 평소 고종이 매우 건강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급서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궁내부 사무관이었던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가 본인의 저서인 '이왕궁비사'에서 밝힌 내용은 당시 고종의 죽음과 관련된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너무 뜻밖이어서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혹시 창덕궁(순종) 쪽이 아닌가 반문했다. 그렇게 물은 이유는 왕 전하께서 평소 병약하셨기 때문이며 덕수궁(고종) 전하께서는 매우 건강하셨기 때문이다." 고종은 승하하기 얼마 전까지도 운동을 하고 수라를 잘 들었다고 한다. 백성들 사이에서 고종의 죽음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다. 바로 '고종 암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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