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시체가 산과 같았다..고려 무신들의 '문신 숙청'

[숙청의 역사 3] 문신들의 씨를 말린 무신정변 전말

by 최경식
'경남 거제 둔덕기성'. 무신정변 때 의종이 유폐됐던 곳.

#. 아래 내용은 2023년 4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의 서두 부분.


"이에 승선 이세통, 내시 이당주, 어사 잡단 김기신, 사천감 김자기, 태사령 허자단 등 모든 호종한 문관 및 대소신료, 환시가 모두 해(害)를 만나매, 쌓인 시체가 산과 같았다. 처음에 정중부, 이의방 등이 약속하기를 우리들은 오른 소매를 빼고 복두(頭)를 벗을 것이니, 그렇지 않은 자는 다 죽여라라고 하였으므로 무인으로서 복두를 벗지 않은 자 또한 많이 피살되었다. 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그 뜻을 위로하고자 제장(諸將)에게 칼을 하사하니, 무신들이 더욱 교만해져서 횡포하였다." -고려사절요 中


10세기 이후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근간으로 하는 고려 사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정변이 발생했다. 당시 정3품 상장군인 정중부와 견룡행수 이의방, 이고 등을 중심으로 한 무신들이 조정의 문무 요직을 장악하고 경제력마저 독점하고 있던 문신들을 왕 앞에서 대거 척살했다. 그동안 중앙정치 무대에서 소외되고 문신들의 등쌀에 온갖 수모를 당했던 무신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정변을 단행한 것이다. 무신들의 정변과 숙청 작업은 매우 가혹하게 진행돼 "문신과 환관의 씨가 말랐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피바람을 일으키며 권력을 잡은 무신들은 이후 100년 간 집권했다. 이른바 '무신집권기'였다. 정제되지 못하고 거칠었던 무신들은 힘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했고 왕권을 유린했으며 상호 간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이기 일쑤였다. 이에 무신집권기 내내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최고 권력자는 계속 바뀜에 따라, 고려는 혼란의 도가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신정변과 문신숙청은 고려 사회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다. 우선 그동안 이어졌던 문과 기풍과 지식 수준이 크게 후퇴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비록 최씨 무신정권 때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무신정변 이전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또한 문벌귀족에서 무신으로 집권 세력이 '완전히' 교체됐다. 그동안 고려 계급사회의 하층부에 있던 무신이 상층부의 문벌귀족을 끌어내리고 집권한 것인데, 이는 집권 세력의 연결성이 전혀 없는 교체였다. 국내 역사를 살펴보면 훈구파-사림파 등 집권 세력의 교체가 이뤄져도 어느 정도의 연결성은 항상 존재했었다. 하지만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끝으로 이때를 계기로 고려의 군사력도 쇠퇴했다. 수많은 반란과 지방에 대한 통제력 약화 등으로 집중화된 군사력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문신들의 씨를 말리며 고려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무신정변 및 문신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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