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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도 Nov 23. 2023

“책과 함께 커피가 있어 더 좋다”

거제 장승포 독립서점 '책방익힘'

겨울 문턱에서 고향의 집 같은 아늑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난다. 어릴 적 아랫목에서 책 한 권이면 충분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책 읽는 독서환경이 좋아지고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책 읽는 독자가 줄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다. 우리 동네에만 가 보아도 도서관도 있고 동네책방도 있고 작은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을 수 있다. 마을마다 작은 동네책방만 있어도 생기가 넘친다. 이웃 어르신이 오가며 살피고 정을 나누는 곳이 이 지구상에 또 얼마나 있을까? 동네책방에서 삶이 스며든다는 것은 공간이 지닌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함을 찾아 우리는 책방의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서점이 없는 마을은 영혼이 없는 마을이다” 소설가 닐 게이먼의 말이다.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혼이 있는 삶은 우리의 감정과 사유가 아름답다. 동네의 작은 서점만 들어선다면 삶의 익숙한 책과 연결되는 시점을 찾아가는 곳,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거제의 장승포 독립서점 ‘책방익힘’의 김수현 책방지기도 그런 삶을 꿈꿨다. 책방은 장목면 시방리에서 4년을 정리하고 장승포 골목으로 2022년 5월 1일 이전했다. 장목면은 거리가 멀어 거제사람이 올 수 없었고 “또 만나요” 말이 그저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했다고. 거제의 원도심 장승포로 옮겨 오면서 사람들을 매일 만나고 인사하고 친근했던 시간이 현재는 거짓말처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익숙했던 바다 시야가 없어지고 차분하면서도 부산스럽지 않은 골목길에 독립책방이 있다. 한 달간 오래된 고깃집의 건물을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이 낡은 벽지를 뜯고 페인팅했다. 책상과 가구, 책 등은 수현 씨가 고향집에서 읽고 쓰던 것들로 채웠다. 책방의 입구, 책방을 대표하는 노란 자전거가 있다. 실내는 아늑하고 따뜻했다. 재즈음악과 커피 향, 책과 사람이 어우러져 구석구석 빈티지한 풍경을 자아냈다.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아래 정성스럽게 써놓은 책의 꼬리표와 개성적인 독립출판물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담겼고 손길이 닿았다. 작은 공간에 엽서, 기록장, 기념품 굿즈도 판매하고 있었다.

“독립출판물은 작품 하나하나가 자기들만의 강한 색깔과 느낌을 갖고 있으며 독립책방 또한 각자의 개성을 보이고 있지요. 우리 책방은 일반서적과 독립출판물을 함께 취급하는 책방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인디음악을 하듯이 ‘마이너’하고 ‘차기적인’ 방식으로 쓰인 독립출판물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책방의 손님으로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커피를 맡고 있는 바리스타 김태원 씨다.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익힘’의 힘이 되고 응원하고 있다는 자체에 부러워할 정도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요즘 어렵다는 책방을 어떤 마음으로 열게 되었을까?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수현 씨는 어릴 적부터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다락방에서 책만 읽고 싶은 소소한 소망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등만 만져보는 것만이라도 촉감도 좋았고 느낌도 좋았다고. 집 근처에 책방을 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거제에 둥지를 틀었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어요. 암 수술을 한 후 모든 걸 멈추고 엄마와 전국일주 여행을 다녔죠. 통영, 거제, 제주도를 다니다가 엄마가 거제도 바다가 너무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살아라~ 살아라~’ 파도에 들리는 메아리가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들었죠.”

수현 씨의 책방이름에도 특별함을 담았다. ‘익힘’이란 의미는 열매나 곡식을 가을볕에 적당히 익히면 맛있게 익어가듯이, 이 공간의 책과 커피랑 모여든 이들과 맛있게 익어가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사람도 책도 다 같이 아름답게 익어간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 노력에 달려있다. 자신이 고른 책이 누군가에게 ‘자기만의 문장을 만나고 스며드는 것’ 그런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이 책방지기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병률, 장혜령, 오은, 정지돈, 백가연 등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참석한 북토크부터 백은선, 김소연, 유희경, 송승언, 윤해서 등의 작가 낭독회 행사, ‘동네책방에서 문학하기’, ‘시 읽고 부르기’, 비정기적으로 운영하는 독서모임과 커피수업까지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하는 김수현 책방지기의 꾸준한 열정이 돋보였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어 행사는 늘 인기가 많았다.

추천 책은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다. 책에는 저자가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고통’, ‘주변과 중심’, ‘권력’, ‘앎’, ‘삶과 죽음’ 등 다섯 가지 주제의 글이 실렸다.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상할 때 혹은 고통으로 인한 죽음 직전에도 책을 읽으면 위로받는다”라고. 독서로 “기분이 전환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무언가 훅 들어온 문장처럼 삶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물음을 던질 수 있다며 추천이유를 설명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인생,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라 말했다. 수현 씨가 하루를 마감할 때 습관처럼 하는 인사말 “수고했다. 책방아~” 그 한마디에 부지런히 살아가는 책방지기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거제의 잔잔하면서도 이질적인 바다처럼 오늘도 책방익힘은 적당히 익혀질 때까지 누군가의 삶에 맛있게 익어내고 있었다.

늘 일상은 똑같지만 수현씨는 오늘도 책방을 열고 끌리는 책을 읽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커피를 세팅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온전히 책방을 지키는 일이 평범하지만 누군가의 쉼이 되어주기에 우리는 동네책방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이 글은 경남일보 11.23자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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